▲ 권경호 박사 부평교회 담임목사 Potchefstroom 철학박사
인간론에 있어 이분론(二分論, diachotomy)인가, 삼분론(三分論, trichotomy)인가 하는 문제는 아주 오랜 논쟁이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문제이다. 이것은 비단 신학에서 뿐 아니라 서양철학에 있어서 지속되는 주안점인 “육체-영혼”, “마음-육체”, “마음-물질”에 있어서도 아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보수적이며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교회들은 대개 이분론을 지지하여 왔다. 특히 한국의 보수 교회는 루이 벌코프(Louis Berkhof)의 조직 신학과 이를 이어 받은 신학자인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이분론을 지지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보통 영혼과 육체, 혹은 영, 혼, 육체처럼 이분론이나 삼분론을 따르는 입장을 이원론(dualism), 유물론(materialism)처럼 모든 것은 육체의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아주 드물게는 사람이 영혼으로만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일심론(Monism)이라고 부른다. 이분론이든 삼분론이든 간에 이것들은 모두 인간론적 이원론(Anthropological Dualism)이다. 이것을 이원론이라 부르는 이유는 영혼과 육체, 혹은 영, 혼, 육체를 구별된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고 인간은 두 가지가 각기 독립된 존재로서 조합되어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벌코프는 그의 조직 신학에서 영혼과 육체는 연합된(Unity) 존재라고 말하기는 하나 실제 내용으로 보면 영혼과 육체를 별개의 존재로 보고 있다. 인간론적 이원론의 기본적 사상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삼분론은 영과 혼)이라는 분리되어 있는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인간 형태에 있어서 두 가지 종류의 본질로 조립되어 있는 것처럼 간주된다. 이 조합에서 불멸하는 영혼은 최고의 가치를 가지며 영혼은 가치가 없는 육체와 육체적 삶을 지배한다. 이분론과 삼분론의 핵심은 그리스어 “템네인(temnein)”에서 유래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자른다(to cut)”는 의미이다. 이 말은 인간의 존재를 잘라서 둘 혹은 세부분으로 나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의 중점은 육체에서 분리된 기능을 가진 영혼의 생존문제이다. 과연 인간은 그렇게 구성되어 있으며 죽을 때 분리되며 인간이 분리될 때 인간 의식은 계속 존재할 수 있는가? 계속되는 질문은 철학자 플라톤의 말과 같이 인간 육체는 영혼의 집이거나 영혼은 육체라는 배의 선장이며 마차의 마부인가 하는 점이다. 

서양 철학에 있어서 철학적 이원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Plato)으로부터 유래한다. 쿠퍼(Cooper)는 이런 이분론은 초기 기독교의 라틴 교부들로부터 유래하였으며 최종 이론은 어거스틴(Agustine)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이분론이건 삼분론이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면상 일일이 성경이나 참고문헌을 소개하고 주를 ㅈ달지 못하지만(이 부분은 아래 웹페이지에서 논문을 참고하라.) 성경은 결코 사람이 육체가 영혼과 육체 두 부분(parts)으로 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혼과 육체는 엄연히 다르지만 이것은 “부분”(part)이 아니라 “면“(aspect)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에 대하여 ”영(spirit)”, ”혼(soul)“, ”육(flesh)“, ”몸(body)“, ”마음(heart)“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모두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제유법)이며, 사람을 여러 가지 다른 각도로 나타내거나 다양하게 나타내는 표현일 뿐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5:23-24의 영과 혼과 육은 전 인간의 성화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성경은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이 모든 것이 일체적 존재(unitary)로 표현한다. 사람은 결코 여러 부분으로 ”조합된composite)“ 존재가 아니라 ”전체적 존재(total being)”인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의 정상적인 상태는 “심신일체(psychosomatic unity)”의 존재이며 전인적(whole)dl 다. 그러므로 인간은 부활 시에 영혼과 육체의 일체적이고 완성(completeness)된 존재로 회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가 영혼보다 저급하거나 무가치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인간 존재를 이분론이나 삼분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holistic, whole being. 혹은 통전적)”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본질적 연합을 이루며 따라서 “육 body”은 성경에서 “인격적 전인적 삶”을 나타내며 “영혼 soul”이란 단어 역시 “전인적 인간 존재 whole human being”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로부터 중세 교회를 통하여 종교 개혁 시대에도 영향을 끼친 플라톤적 인간론적 이원론은 아직도 한국의 보수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혼은 소중하며 육신은 무가치한 것이고 진정한 인간은 영혼이라 여기고 있는 신자들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오해하여 종교적 생활은 소wnd히 여기지만 이 세상의 삶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니 이 세상 삶은 죄된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영적인 것은 “하늘의 것(heavenly)”과 “거룩한 것(Sacred)”으로 이 세상의 삶은 “세속적(secular)”이고 “세상적(worldly)”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분론과 삼분론의 관점은 성경적이라 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다. 개혁주의는 인간 존재에 대하여 전인적(holistic)이고 전체적(totality)이고 통합된(unitary) 사람으로서 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전인적 관점은 당연히 교회 생활에 있어서 “성-속”, “육체-영혼”의 구별이 아닌 전인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권경호 박사의 학위(Ph. D)논문 “The Anthropological Dualism in Korean Church Education(영문)”의 결론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이 논문은 “한국 연구재단 외 국 박사 학위 종합시스템 (doctorinfo. nfr. re. 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논문방에서는 논문의 일부분인 6장에 관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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