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과연 바이러스의 온상인가?

신요한 전도사 (새언약교회 전도사, 코닷 수습기자)

역사에 기록될 대한민국 최초의 종교 규제 정부

한국정부가 21일에 종교·실내체육·유흥시설 운영을 보름동안 중단하기로 발표하면서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서 전국의 특정 업종·업소에 대해서 한시적 운영 중단을 요구한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특히 대한민국 역사에서 어떤 국가적 재난이나 혼란 가운데서도 교회를 규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러나 촛불들의 힘으로 태어난 지금의 촛불정부(?)는 그들이 "군사독재체제"라고 비난하는 유신체제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종교규제 조치를 시행한 더욱 독재적인 조치를 취했다. 매일 수 백명 이상이 모여 땀 흘리며 온갖 비말을 내뿜으며 2M 이내, 심지어 상호 신체접촉이 불가피한 실내체육·유흥시설과,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데도 매일 방역에 힘쓰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식사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 주일예배를 자발적으로 중단하는 추세의 교회를 동치로 두고 판단한 매우 비합리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비밀리에 교회에 침투하며 전도하는 신천지의 특성상 신천지 신도가 우한폐렴(코로나19)에 감염이 되면 전국이 지역감염의 위기에 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신천지 신도들의 명단을 확보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의 한 보고서에서 "신천지 신도들이 한국 정부와 사회로부터 상당한 비난과 괴롭힘(harassment)에 직면해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USCIRF는 정부의 조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USCIRF는 신천지 교회가 한국의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부 정부 조치들은 합법적인 공중보건 우려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다른 조치들은 이번 사태에서 교회의 역할을 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울시는 서울의 신천지 교회들을 폐쇄했고 일부 주류 개신교 단체들은 신천지 교회가 고의적으로 질병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결국 기독교 교회가 코로나19 지역감염 사태의 책임을 신천지에게 떠넘기고 폐쇄를 요구하며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오히려 타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 비록 신천지의 부당한 행태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교회가 신천지를 향한 비난에 몰두할수록 외부인들에게는 신천지와 교회를 한 데 묶어 비난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을 제공하는 셈이다. 신천지 신도들의 명단이 정부에게 제공된 것처럼 교회도 그렇게 해야 하고, 신천지의 집합 장소를 폐쇄한 것처럼 교회도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의 명분을 제공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보존하는 교회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할 때 우리는 막스 베버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를 온전히 작동하게 하는 원리로 "자본주의 정신"을 꼽았다. 이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즉 종교개혁 정신과 칼빈주의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교회에서 말씀을 통해 배우는 윤리적 덕성이 자본주의를 온전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자국의 혼란스러운 정국에 실망하는 반면에 미국에서 발견했던 탁월한 민주주의의 비밀은 "시민의식"이었다. 탁월한 시민의식이 탁월한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시민의식을 탁월하게 고양시키는 것이 바로 "신앙"이었다. 그래서 토크빌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자유는 도덕성 없이 세워질 수 없고, 도덕성은 신앙 없이 세워질 수 없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한반도에 정착시킨 우남 이승만 박사는 "정치는 항상 교회의 본의에서 딸려나오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잡힌다"라고 했다. 또한 우남은 "썩은 백성 위에 맑은 정부가 어찌 일을 할 수 있으리오"라고 했다. 바른 정치가 세워지기 위해서 하는 일은 국민을 개화시켜야만 가능한데 이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종교, 정확하게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 교회가 사라진다면 국가의 근본이 사라지게 된다. 

 

민주사회에서 교회는 "공공기관"이다

위와 같이 교회가 민주사회를 보존하는 필수적인 역할의 범위와 정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국가는 교회를 함부로 조치할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교회는 탁월한 시민윤리를 고양시키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따라서 위정자들도 시민윤리를 감독하는 종교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물론 일부 종교인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로 인해 사회의 존경을 스스로 저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과 같은 정부의 규제조치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런 범죄를 저지른 종교인들은 대한민국 전체 종교인들 중에서 소수에 불과하여 예외로 여겨질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보존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기관들이 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비롯한 많은 공공기관들이 그러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어떤 재난에도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또한 국민들 곁에서 사회를 보호하는 경찰과 소방관들, 그리고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진들과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군인들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의 영혼과 윤리를 감독하는 곳이 바로 종교이다. 이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업무를 보면서 사회를 보존시킬 수 있는 이유는 "시민윤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무신론이 객관적 윤리를 감독할 수 없다는 것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래서 대부분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가지론자"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는 것에 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은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 중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신론자는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종교의 윤리적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 윤리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자유시장경제에 밀접하게 참여하는 시민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흔히 이것은 종교가 없는 시민들도 종교인이 조언할 때는 숙연해지면서 겸허한 자세로 듣게 되는 모습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는 사회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한 기관이 된다. 그러므로 공공기관들이 국가 재난 상황에도 운영이 되어야 한다면 종교기관도 운영되어야 한다. 이를 인정한다면 국가적 재난에서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교회가 "예배"가 필요하다고 할 때 정부는 이를 존중해야 마땅하다. 말씀이 민주사회를 보존하는 올바른 시민의식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는 공공의 시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기관을 마치 사설기관과 같은 규제대상으로 평준화하는 것이며 이는 고양된 시민의식보다 정부의 공권력에 귀속시킨 시민의식을 추구하는 은밀한 우민화 정책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부의 방침에 "기꺼이" 순응하면서 주일 공예배를 지키는 교회들을 향해 비판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동안의 주일예배에 자신의 영혼에게 말씀의 양식을 먹임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참예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교회를 집중해서 비판하는 언론들

거대한 괴물로 변해가는 정부

최근에 구로구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의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그러나 누구도 전국의 콜센터가 "문제"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기업체는 운영되고 있다. 분당제생병원에서도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전국 병원이 폐쇄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병원은 사회보존을 위해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간에도 집단감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가족 자체가 문제라고 하지 않았다. 정부도 전국의 콜센터와 병원, 그리고 가족도 규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와 여론은 예배하는 교회를 향해서 만큼은 "예배강행", "코로나의 온상"이라며 그 어떤 집단감염 기관에도 하지 않았던 비판을 가한다. 민주사회에서의 종교의 위치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비난하는 그들도 민주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지키는 최소한의 시민윤리가 바로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집단감염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주사회를 보존하기 위해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공공기관처럼, 민주사회를 고양시키는 데에 종교기관의 운영은 꼭 필요하다. 특히 민주사회의 "시민적 덕성"의 원천이 바로 "기독교"라는 사실을 토크빌은 발견했다. 그러므로 개교회가 지역사회의 시민윤리를 고양시키는 원리로 예배가 필요하다면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심리학자 칼 융을 계승한 정신분석가 제임스 홀리스는 공산주의 미명 하에 대학살과 독재 등 잔혹함만을 낳은 마르크시즘을 "인간의 영적 토대가 지닌 가치를 부정하는 바람에 거대한 괴물로 변해 끝내 붕괴하는 결과를 맞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며 이를 부정하면 괴물로 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영성이다. 한국정부의 조치는 이를 도외시 하는 마르크시즘과 같은 인상을 띈다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같은 기조를 한국교회가 묵인한다면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괴물로 성장한 정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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