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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교회는 추세(Trend)가 아닌 전통(Tradition)을 추구한다

기사승인 2020.03.25  0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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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져 가는 예배의 가치를 바라보며

노승주 전도사(리폼드미니스트리 대표)

최근 ‘문화선교연구원(www.cricum.org)’을 통해 <‘디너 처치’란 무엇인가?>라는 시드니 몰링 대학의 선교학 교수 마이크 프로스트(Mike Frost)의 칼럼이 소개되어 기독교인들에게 소소한 이슈가 되었다.1) 이 칼럼은 최근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식사와 예배를 접목한 새로운 예배 형식을 소개하고 있다.

이 칼럼에선 브루클린의 ‘성 리디아즈 교회’, 시카고의 ‘루트&브랜치 교회’, 밀턴 케이스의 ‘벽이 없는 교회’, 칼룬드라의 ‘벨스 디너 처치’, 벨파스트의 ‘트라이브 교회’를 비롯해 시애틀에서 시작된 ‘디너 처치 공동체’를 소개하는데, 과연 그들이 추구하고 중요시 여기는 교회의 역할과 방향성은 무엇일까? 위 교회들의 예배 형식은 각기 조금씩 다른 모습이지만 그들의 소개를 따를 때, “기독교의 성찬 규례를 따라 음식과 함께, 그리고 식탁 주위에 둘러 앉아 간단히 짧은 성경구절이나 묵상, 독서, 이야기를 나누며 기도한다”는 예배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위 칼럼에 등장하는 시애틀의 ‘디너 처치 공동체’는 자신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1) 디너 처치는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 모두의 흥미를 일으키는 관습입니다.

2) 이것은 간단하며, 큰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3)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4) 이것은 고대 시대의 교부들이 신자들에게 훈련시키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5) 이것은 음식, 음악, 그리고 말씀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위 칼럼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은 과연 위와 같은 모임의 형식이 과연 교회의 공예배로 자리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경각심이다. 과연 교회의 예배가 단순히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의 흥미를 일으키는 요소인지, 그리고 간단성과 비용의 절감이 우선인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실천하신 성찬과 일치하는 모습인지, 기독교 역사에 있어 전통적으로 실천되어온 것인지, 음식과 음악, 말씀이 예배의 참된 요소인지에 대해 필자는 단 하나도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히는 바이다.

한국교회 내부에서는 지난 시간 ‘구역 모임(혹은 가정교회)’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일어났었다. 그중 구역 모임에 대한 가장 큰 논점은 이러한 모임과 형식이 과연 장로교 정치 체제와 부합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개혁파 신학을 고수하는 장로교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참된 교회의 표지를 바른 말씀 선포와 바른 성례, 바른 권징의 시행으로 규정해왔는데 회중교회의 형태와 흡사한 구역 모임의 모습은 목회자와 당회의 기능을 평신도에게 위임하며 성례와 권징의 참 의미와 기능을 실추할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구역 모임에 대해서는 한국교회 내에선 목회적인 차원에서의 다양한 견해가 나뉘고 있지만, 우리가 분명히 구분할 것은, ‘디너 처치’는 소그룹의 형태로 모이는 구역 모임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역 모임은 공예배의 정체성을 띄고 있지 않고 공예배 이외의 성도 간의 교제, 권면과 상담 등과 같은 목회적인 차원에서의 교육을 목적으로 한 모임의 정체성을 띠고 있지만, 대부분의 디너 처치의 경우 공예배를 문화적인 차원과 선교적인 차원이라는 명목으로 정통 예배 모범에서 벗어난 형태로 행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필자는 공예배 이외의 성도의 모임과 삶의 영역, 그리고 가정에서의 예배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요, 중요시 여기는 바이다. 그러나 공예배 이외의 모임보다도 더욱 엄숙하고 주의를 기울여 우리에게 지켜져야 할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6항에서 명시하는 바와 같이 바로 공예배이다.2)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전통적인 예배 모범에서 벗어난 예배의 절차와 형식은 공예배로 바로 설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공예배의 가치와 태도를 훼손시킬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모임이 ‘교회’라는 명칭으로 불려질 수 있을 것인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1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 용납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제정하셨고, 하나님 자신이 계시한 뜻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람들의 상상과 고안이나 또는 사탄이 제안하는 것을 따라서, 어떤 가시적인 표현으로 예배할 수 없고 성경에 규정되어 있지 않는 어떤 다른 방법을 따라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R.C. 스프로울(R.C. Sproul, 1939-2017)은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진심을 가지고 열심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심지어 바알 제사장과 선지자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말하며, 기독교 신앙에 있어 ‘예배’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열심이 아닌,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하나님 자신의 참된 본성과 성품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위 신앙고백서를 해설했다.3)

필자는 ‘디너 처치’라는 하나의 현상을 통하여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의 예배의 모습이 과연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하나님께서 친히 받으시는 합당한 형식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청중을 향해서 초점을 두고, 교회 전통과 형식이 아닌 사회의 시선, 문화적인 수용, 감정적 만족, 파급적인 복음 전파, 흥미와 합리성 등을 향하고 있는 지를 회고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참된 예배의 초점은 인간의 기쁨과 만족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인정하신 방법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예배 모임’과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일 때, 우리는 그 가운데 거룩한 경배가 담겨져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존 머레이(John Murray, 1898-1975)가 말했듯, “경배가 있는 곳에는 경외, 즉 경건한 두려움”이 있다.4) 경배는 분명한 예배의 요소로서 위치해야 할 것이고, “개혁파의 원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받으실 만한 방식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제정되며, 그의 계시된 뜻에 의해 제한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을 성경에 규정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예배해서는 안되며, 명령되지 않은 것은 금지된다는 것”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5)

기독교의 참된 신앙은 새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의 신앙은 우리의 가치판단을 통하여 ‘합당함’의 기준을 정하는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의 참된 신앙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계시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자 역사적으로 교회가 함께 고백해온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을 통해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되찾는 신앙이다. 즉, 새것이 아닌 옛것을 통해 오늘의 우리 신앙을 다시 점검하고 돌이키는 신앙이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혁의 참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새것을 추구하는 신앙은 죄인의 본성상 언제나 계시의 말씀에 근거한 옛것, 즉 전통(Tradition)이 아닌 새것, 인본주의적인 추세(Trend)를 따라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추구해야 할 참된 신앙의 방향성은 시대의 추세(Trend)가 아닌,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옛것, 계시의 말씀을 기반으로 한 전통(Tradition)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배는 어제나 오늘이나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어떠한 시대와 상황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한들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들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지키는 싸움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 중심이 되지 않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방법을 벗어난 예배는 수없이 많은 노력과 화려한 형식, 그리고 많은 결실이 뒤따른다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될 수 없다. 교회의 제일 존재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예배하기 힘든 시대에도 참된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일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미주

1) https://www.cricum.org/1573?category=527585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6항: “…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 받으셔야 한다. 매일 각 가정에서, 그리고 은밀히, 각자 혼자 드려야 한다. 공적인 모임에서는 더욱 엄격하게 드려야 하며,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이나 섭리에 의하여 그것을 명하시는 때에는 부주의하거나 고의적으로 예배를 등한시하거나 저버려서는 안 된다”.

3) R.C. Sproul, Truths we confess, Vol.2 Salvation and the Christian life, 이상웅·김찬영 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2,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9~22장)』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438.

4) John Murray, Systematic theology, 박문재 역, 『존 머레이 조직신학』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8), 165.

5) Ibid, 166.

노승주 rminist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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