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니우스의 '범(汎) 교사'의 모델

신요한 전도사(새언약교회 전도사, 코닷 수습기자)

- <교회교육은 지금> 1편: 신학교육과 이데올로기

- <교회교육은 지금> 2편: 무너진 한국 교육의 실태

 

포스트모더니즘 분석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성을 띄기 때문에 이념과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념과 사상, 즉 이데아가 각자의 실존을 보장한다. 더 이상 모더니즘으로는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인간은 각자가 신봉할만한 이데아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따르는 사상을 포교하고 표현하는 ‘예술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육체계의 ‘기계성’은 그 대안으로 적절하지 않다. 현대 교육에는 예술성이 적용되어야 유효하다. 그런데 예술성은 두 가지 측면이 함께 공존해야만 가능한데 그것은 개념적 언어(conceptual language: 지성, 음성, 텍스트 등)와 상징적 언어(symbolic language: 덕성, 감성, 이미지 등)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이 공존해야만 예술성이 발휘되어 이데아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데아가 전달되면 이데올로기 실현을 위한 ‘의지’가 발현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운동성’을 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실존적 도약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영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효과적인 교육은 지성과 덕성이 결합하여 영성으로 시너지를 발휘하는 교육이다. 곧 지성, 덕성, 영성을 단 번에 전달할 수 있는 교육인 것이다.

 

교육학의 아버지 코메니우스

종교개혁 사상이 폭발적으로 대륙의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던 17세기에 현대교육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Johann Amos Comenius)는 이미 이를 간파하였다. 코메니우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질을 간파할 수 있는 이유는 코메니우스의 사상적 기반인 종교개혁 정신이 포스트모더니즘과 많은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전인을 자극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때문에 종교개혁의 정신 즉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자유’와 ‘법치’의 개념이 발현되어 이제는 개인을 넘어 국가를 다스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형성되었고, 나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경제발전의 기본 원칙인 자유시장경제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종교개혁 정신, 즉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가 진리라는 점을 입증한다. 이것이야 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지향하는 바대로 지성, 덕성, 영성 즉 전인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 참된 교육의 모델이다.

이처럼 종교개혁 정신과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서 공유하는 속성이 많으므로 우리는 당시의 인물이었던 코메니우스로부터 오늘날에 필요한 교사의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코메니우스가 그의 대표적인 저서 ⌜범(汎) 교육론(Pampaedia)⌟에서 제시한 '범(汎) 교사'(판-디다스칼로스 [παν-διδάσκαλος])의 모델은 한 마디로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 즉 자연사물과 인간을 이해하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자"를 뜻한다. 그리고 이 '범 교사'는 시대와 세대의 다양성 때문에 마땅히 인간의 삶의 '평생'을 가르쳐야 한다. 여기에서 '범'(汎)으로 번역되는 '판'(pan [παν])은 사전적으로 전체, 보편성, 우주 등을 뜻하지만 코메니우스는 만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만물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범 교사의 교육이 바로 '범 교육' 즉 '팜패디아'(Pampaedia)이다. 팜패디아란 '판'(παν)과 어린이 교육을 뜻하는 '파이데이아'(παιδεία)의 합성어로 "전 인류를 위한 전체적인 교육 혹은 돌봄"을 뜻한다. 즉 전 인류를 어린 아이와 같이 교육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오늘날에 '평생교육'이라고 불리는 교육 체계가 바로 팜패디아에서 기인한 것이다. 성인교육의 필요성이 20세기 중반을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21세기에 들어와서야 평생교육이 보편화 된 것을 볼 때, 이미 400여 년 전에 평생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하고 그 교육학 이론을 체계화 한 코메니우스의 통찰에서 탁월함을 볼 수 있다.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Johann Amos Comenius)

오늘날 세상의 '범 교사'

코메니우스는 '범'(pan)을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연결된 만물을 뜻할 때 사용했지만 세속에서는 하나님이 배제되기 때문에 세속에서 '범'이 성립되려면 하나님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것이 이데올로기다. 즉 만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만물과 연관지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을 분리하는 이신론의 작업은 13세기 둔스 스코투스에서 처음 발견된다. 이것을 '일의(一意)적 존재론'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과 피조물의 존재 방식이 '같다'는 사조(思潮)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처럼 피조물의 존재도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피조물의 존재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면 피조물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다양성을 주창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에서 다양성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곳에는 '평준화'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데올로기가 자신을 평준화로부터 자유케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이데올로기를 전달할 '교사'가 필요하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오늘날에는 세속적인 '범 교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김제동, 설민석, 법륜스님 등을 꼽을 수가 있는데 이들의 강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 인기가 상당하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영성(이데올로기)을 신봉하기 때문에 지성과 덕성의 공존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강연을 들어보면 얼마나 친숙하고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 매료되는 순간 다양성이 상실되고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이 점을 대부분의 대중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인간만이 범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영화, 음악, 드라마 등 예술이나 매채, 인공지능(AI)이 범 교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대중에게 세속적인 팜패디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신학교와 교회, 그리고 그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교육은 어떠한가?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진정한 '범'(汎)이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 그의 말씀을 전(全) 세대에게 예술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2편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한국교회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의 폐해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교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목회자와 평신도 사역자와 같이 가르치는 일을 섬기는 교사들이 지성과 덕성 중 한 쪽에만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즉 ‘범 교사’를 찾기 어렵다. 팜패디아도 마찬가지다. 공예배 시간에 전 세대가 아우러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스타강사로 불리는 방송인 김제동(상)과 설민석 강사(하). 그들은 한국사회의 '범 교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국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서 고민하는 참석자에게 조언하는 법륜스님. 위 영상에서 법륜스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도 용서하는 예수님이 내가 교회 안가고 절에 있다고 해서 나를 지옥에 보낼까, 안보낼까? 자기가 절에 다닌다고 해서 천국에 못간다고 생각 안해도 된다. 기독교를 알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다. (유튜브 채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 캡쳐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jcziiH7HcU)

성경적 '범 교사'

범 교사는 코메니우스의 정의처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더불어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자연계에 대한 지식도 풍성해야 한다. 교회교육에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기독교인도 대부분 이미 '일의적 존재론'에 익숙해져서 하나님이 배제 된 만물에 대한 지식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또는 신학교) 교사들이 자연계와 공유하지 않는 정보를 전달하는 이유는 교사가 갖고 있는 자연계의 지식이 일반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자연계의 지식을 풍성히 갖고 있어도 '일의적 존재론'에 매몰되어 하나님 말씀 또는 그를 믿는 신앙과 상치된다는 모더니즘(합리주의)의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유산을 통해 하나님과 피조계가 분리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므로 교회(또는 신학교) 교사들은 이에 대하여 의심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세속 이데올로기는 종교개혁과 달리 그 신빙성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보다 세속의 이데올로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는 이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필자는 기독교가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를 고수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정신을 고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설득력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도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과 관계 없이 배우는 '일의적 존재론'적인 교육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지성과 덕성 두 가지의 측면을 함께 겸비하는 영적인 교육만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세속 사람들과는 달리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진리를 타협하지 않을 때라야만 그것이 가능하다. 세상 만물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즉 진정한 '범'(汎)이 무엇인지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늘 상기해야 한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잠식된 일반교육에 범 교사의 모델이 적용된다면 기독교 진리는 더욱 빛을 발휘한다. 일반교육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그동안 쌓아 왔던 '일의적 존재론'적인 지식에서 말씀과 성령의 도움으로 탈피해야 한다. 이는 지식의 토대를 점검하고 그 지식이 성경적 세계관과 상응하는지 점검하는 '신학적 작업'을 의미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단순히 평준화를 위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전달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도구로서 그의 지식이 기부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코메니우스의 제언처럼 인간의 전인을 자극시키는 교육을 위해서는 종교개혁의 정신, ‘5대 솔라’의 신앙적, 신학적 기반을 회복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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