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만연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폐해

신요한 전도사(새언약교회 전도사, 코닷 수습기자

<교회교육은 지금> 1편: 신학교육과 이데올로기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향유하는 시민은 사실상 본인이 따를만한 적절한 인생 멘토를 찾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 자체가 상대성에 기반한 절대주의에 두고 있어서 자신을 실존하게 하는 ‘이데올로기’가 발생하면 그 이데올로기와 부합하지 않는 모든 정신을 거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이데올로기가 절대화 되어버린 절대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자신의 존재 자체는 다양성과 희소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이념이나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쉽게 말해 아무리 자신보다 많은 지식을 통달한 교사라 할 지라도 자신의 이념에 맞지 않으면 교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 되어버린 시대가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교사는 교사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역할만을 감당하는 ‘기계적’인 상호작용만이 남을 뿐이다. 교육을 통해 얻는 지식은 자신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 단지 ‘평준화’의 수단으로 그친다. 이제는 이데아를 전달하는 교육만이 유효하다. 이러한 시대성에서는 결국 이데올리기화 된 자기의 정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가 꿈꾸는 이데아로의 도약을 의지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해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이성이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정신승리 하는 방법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늘날 교육에서의 대부분의 문제가 발생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퇴색 된 선지동산의 정체성

한국의 신학교 중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학교 중 하나가 총신대학교이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최근 총신대가 여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교육에 있어서 더욱 그러한데, 작년 11월 18일 총신대에 <2019년 총신대학교 교수 성차별, 성희롱 발언 전문>이라는 교수들의 수업 중 발언 내용과 함께 <총신대학교 성희롱 사건 및 전수조사에 대한 학생자치회의 성명>이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관련기사: 총신대 일부 학생, 교내 생명운동/반동성애 인사 악의적 폄훼) 해당 대자보는 총신대 신학 교수들이 수업 중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학생자치회는 음란한 성희롱적인 발언을 전혀 하지 않았던 이상원 교수까지 한 데 묶어 성희롱으로 몰아갔고 학교 측에서는 징계위에 회부하려는 움직임을 드러내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관련기사: 총신대 관선 이사회, 이 교수 추가 징계 의결) 학생자치회와 징계위가 문제를 삼았던 이상원 교수의 발언은 남자의 생식기관에 대한 생물학적인 근거로 동성애에 대해서 비판한 내용과 남녀의 성기관을 생물학적·의료적으로 설명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하여 논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해당 발언의 맥락을 배제하고 성희롱으로 일반화하여 단지 생식기관을 자세하게 묘사한 특정 단어를 볼모 삼아 이데올로기적으로 부당하게 판단하여 이상원 교수의 교권을 침탈하려고 했다.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매몰된 교육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데올로기를 전달하지 않은 이상원 교수의 교권은 단순히 교수로서의 역할만을 감당하는 기계적인 상호작용의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정용덕 전(前) 총신대 재단(관선)이사장이 총신대 사임 후 지난 2월 25일 대한불교 천태종이 세운 금강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신학대학교 이사장이 불교계 대학 총장에 임명된 사례는 이 땅에 개국이래 처음있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독교계에서는 선지동산의 실질적인 부분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이사장이 이방 종교의 총장으로 취임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독교 ‘신앙’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불교계가 세운 학교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하지만 총신대 이사장이었을 당시 신학대를 하나님의 종을 기르는 ‘선지동산’으로 생각하기 보다 이사장의 역할을 자신에게 제공하는 수단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떨칠 수가 없다. 신학교를 다른 일반 학교들과 같이 ‘평준화’ 시킨 것이다. (관련기사: 총신대 이사장에서 불교대학 총장으로)

지난 2월 20일 총신대 앞에서 열린 재단이사회 규탄 집회

유튜브 채널 FTNER(에프티너)의 운영자인 김영현 전도사가 호주 알파크루시스대학교 학장인 김경진 교수의 수업 중 발언을 녹취하여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이 작년 11월에 화제가 되었다. 해당 영상에서 김경진 교수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여기에 김영현 전도사가 반론을 제기하자 김 교수는 “서로의 입장이 다름을 인정하자”, “개인적으로 따로 이야기 하자”는 등 논박하기를 계속 피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이미 김 교수는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답지 않게 성경적인 성윤리를 역차별하는 차별금지법을 옹호하는 것에서부터 성경보다 이데올로기를 우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보다 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현상은 김 전도사와 논박하기를 피하는 그의 태도에 있다. 본인이 먼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해 수업 중에 학생들 앞에서 언급했지만 김 전도사에게는 “따로 이야기 하자”고 말한다. 공적인 발언이나 글은 모두 비판을 받을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비판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껏 나오는 반박은 대부분 “의견이 다름을 인정하자”는 식의 반박이다. 만약 진정 자신의 제자라고 생각했다면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과 짧은 시간이더라도 토론을 개진해야 자연스럽다. 학생과의 논박 과정이 도리어 자신의 입장을 학생들에게 더 강하게 호소할 수 있는 효과를 일으키고 수업의 질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하르낙과 칼 바르트, 프로이트와 칼 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탁월한 사제지간 사이에서는 서로 논박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초지일관 논박을 피하는 태도는 곧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기계적인 사제지간'일 뿐 '진정한 사제지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김 전도사에게 의견이 “다름을 인정하자”고 한다. 실제로 김 전도사의 의견과 대립하는데도 다름을 인정하자는 이중적인 발언을 하는 이 현상은 다양성만을 인정하는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상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대성을 인정하되 절대주의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듯이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과 다른 다양한 사고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상과 맞지 않으면 언젠가는 분리시키게 되어 있다. 결국 그 결과가 무엇인가? 김영현 전도사는 ‘교수 명예훼손’을 명분으로 해당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이것이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실체이다.

유튜브 채널 FTNER(에프티너)의 운영자 김영현 전도사가 공개한 김경진 교수와의 논박이 담긴 녹취록 중 일부 (출처: 유튜브 채널 <FTNER> 영상캡쳐 https://www.youtube.com/watch?v=iJgk1w9_UGg)
유튜브 채널 FTNER(에프티너)의 운영자 김영현 전도사가 공개한 김경진 교수와의 논박이 담긴 녹취록 중 일부 (출처: 유튜브 채널 <FTNER> 영상캡쳐 https://www.youtube.com/watch?v=iJgk1w9_UGg)

 

한국 교육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의 폐해

신학교 밖에서도 이런 문제는 흔히 발생한다. 그 중 하나로 최근에 벌어진 인헌고 사태를 꼽을 수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적나라하게 특정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 교육사업을 벌였고, 여기에 반발하여 인헌고 학생들은 더 이상 교사를 교사로, 제자를 제자로 인정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학생을 자신의 제자로 생각하고 제자의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책임감을 가졌다면 자신의 제자들에게 특정 이념을 강요하거나 주입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이미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교육만이 '유효한 교육'이라는 것을 알았고 정치편향 교육을 강행했다. 이데올로기가 전달이 안되면 교사는 교사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역할만을 감당하는 기계적인 상호작용만이 남는다. 결국 인헌고의 실태를 제보했던 한 학생은 왕따에 시달려 전학을 가야만 했다. 

정부도 더이상 교육을 ‘평준화’의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교육부는 작년 11월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하는 2025년 3월부터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특수목적고(특목고)인 외국어고·국제고 79개교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고 밝혔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부터 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에 진학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기조에도 불구하고 교육에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자원인 교육의 평준화가 시작되면 대한민국이 망국으로 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시 ‘전체주의’로 ‘은밀하게’ 회귀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10월 23일 인헌고 앞에서 열린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의 기자회견 (사진출처: 연합뉴스)

포스트모더니즘에 혼돈을 겪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세상에게 어떤 교육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앞서 1편에서 논의했듯이 먼저 신학교와 교회에서의 교육이 성경적으로 회복되어야 한국 교육이 회복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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