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흑사병과 중세교회의 미신(迷信)

강희현 강도사(참사랑교회)

14세기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 유럽 인구 1/3(약 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공포의 흑사병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질병의 원인도 알지 못했으며, 오늘날처럼 감염자의 동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었다. 그래서, 의학적인 무지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흑사병을 신앙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물론, 질병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신자로서 당연하다. 그러나, 당시 유럽은 천주교회가 다스리던 시대로, 성경의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미신 행위에 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성행했던 미신 행위는 아래와 같다.

1) 채찍질 고행단(Flagellants)

천주교회는 고행을 강조한다. 즉, 전염병은 하나님의 심판임으로, 사람은 고난을 받아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이들은 하루에 3-4번씩 자신의 몸에 온갖 채찍질을 감행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채찍을 너무 강하게 쳐서, 채찍이 피부에 박히기도 했다. 당시, 이러한 채찍질 고행단은 약 80만 명으로 추산된다.1)

“채찍질 고행단” 그림.

2)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은 중세인들에게 언제나 좋은 핑곗거리였다. 실제로 흑사병이 만연하자,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며, 이러한 이유로 유대인과 계약, 상업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집단적 학살까지 벌이기도 했다.2)

3) 교황의 성년(聖年) 선포

교황 클레멘트 6세는 성년을 선포하여, 이때 로마를 순례하는 사람은 연옥을 거치지 않고, 즉시 낙원에 갈 수 있다고 선언했다.3) 그래서, 흑사병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약 100만 명)은 로마를 방문했고, 많은 인파가 몰린 로마는 당연히 흑사병이 급속도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4)

“유대인 집단 학살”을 보여 주는 그림

 

2. 흑사병과 종교개혁가 츠빙글리

1) “오직 성경”의 츠빙글리

1세대 종교개혁가로 독일에 루터(Luther)가 있었다면, 취리히에는 츠빙글리(Zwingli)가 있었다. 심지어, 이 둘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로, 서로 다른 국가와 배경에서 자랐지만, 결국 성경에서 같은 진리를 발견하여,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ura)이라는 같은 신학적 견해에 도달했다.5)

특히, 츠빙글리는 일찍이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를 접했고, 그래서 성경 연구를 어린 나이에 시작했다.6) 당시 천주교회는 톨로사 회의(1229)로 평신도가 성경을 읽거나 번역, 혹은 자국어 설교를 엄금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이러한 천주교회의 만행에 저항했고, 최초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여 출판했다. 따라서, 츠빙글리는 에라스무스의 영향으로 어린 나이에 성경적 진리를 섭렵했다. 그리고, 천주교회의 비성경적 전통도 일찍이 알아챘다. 그래서, 훗날 1516년 아인지델런 사제가 되었을 때, 그곳에 마리아상이 있는 성당에 치유와 이적이 나타난다는, 천주교회의 순례자들을 향해, 우상숭배(미신)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또 교황이 보내주는 생활보조금을 거부하면서까지 성경대로 설교하고자 노력했다.7) 무엇보다, 그는 신약성경 전체를 연속으로 설교하는 ‘강해 설교’(시리즈 설교)를 시작했는데, 자국어 번역 설교를 엄금한 당시 시대를 고려한다면, 거의 혁명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츠빙글리는 이처럼, 천주교회가 조장했던 비성경적 미신들, 또 성경을 거스르는 교황의 권위를 철저하게 거부했으며, 그는 오직 성경을 설교했고, 성경만을 최고의 권위로 삼았다. 그는 “오직 성경”의 사람이었다!

2) 흑사병과 츠빙글리

흑사병이 유행했던 당시, 츠빙글리는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은 그에게 몇 주간의 휴식을 권고했으며, 그는 충고를 받아들여 휴식을 위해 길을 떠났다.8) 그러나, 흑사병이 스위스를 덮쳤고, 신자들이 병으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휴식을 뿌리치고,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심슨(Simpson)이 묘사하듯이, 츠빙글리는 “이곳저곳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자신의 손으로 고통받는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복음서 말씀의 모든 환호와 위로를 전하며, 화사한 표정과 친절한 말로 낙담한 많은 이들의 마음을 회생시켰다.”9) 그래서, 이러한 열심에 대해, 어떤 이들은 그에게 “하나님의 의무를 수행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생명을 지키도록 조심하십시오.”라고 충고했으나, 그 충고를 무시했고, 결국 츠빙글리도 흑사병에 전염되고 말았다.10)

성경을 들고 있는 츠빙글리의 초상화

 

3. 츠빙글리의 역병가(Plague Song)

츠빙글리의 흑사병은 1519년 9월 말에 시작됐고, 10월경에는 죽음의 위기를 맞았으며, 11월 중순에는 병으로부터 회복됐다.11) 그리고, 투병 중 그는 역병가(Plague Song)를 기록했다. 짐 웨스트(Jim West)의 말처럼, 역병가는 “츠빙글리가 재난 속에 (고행이 아닌) 하나님께 믿음과 독실한 신뢰를 드린 사람”이었음을 잘 보여준다.12) 전문은 아래와 같다.13)

1) 투병 초기

성경과 칼을 들고 있는 츠빙글리의 동상

주 하나님이여, 곤경 속에 있는 나를 도와주소서. 죽음이 문 앞에 온 것만 같습니다.

그리스도여, 당신14)은 죽음에 대항하여 이기셨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부르짖습니다. / 이것이 당신의 뜻인지,

저를 죽이고 있는 / 이 화살을 빼 주시기를

제가 살 수 있는 한 시간의 여유도 없습니다. 저에게 안식을 주시기를!

당신은 저를 죽게 만드려고 하십니까?

저는 삶의 한 가운데서 (어떤 것이라도) 긍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길 /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그릇입니다./ 만드시든지, 아니면 부수어 버리소서!

설령 당신이 이 땅에서 제 영혼을 가져가신다고 하더라도, /

당신은 제 영혼의 상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게 하실 것이며, /

혹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오점이 남겨지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2) 병세가 악화됐을 때

주 하나님이여, 위로하여 주소서 / 병환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통증과 압박이 내 영혼과 육체를 사로잡습니다.

저의 유일한 위로가 되시는 분이시여, 저를 도와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당신님을 향하여 열망하고 바라는 모든 이들을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의 유익과 손해가 어떠한 의미도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이 다가옵니다.

제 혀는 침묵하고/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합니다. 저의 육신의 감각은 거의 마비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저의 투쟁을 인도하실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미쳐 날뛰는 무법자 악마에게 저항할 힘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신만을 신실하게 의지합니다.

3) 건강이 회복됐을 때

주 하나님이여 건강을 주소서! /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더 이상 죄가 지배하지 않도록 하실 것이기에

제 입술은 당신을 찬양합니다. 앞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이전보다 더 많이 선포하렵니다.

어떠한 속임수도 없이 순수하게 항상 가능했던 것처럼

얼마나 제가 죽음의 형벌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는지 /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 그때 저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하늘의 보상에 기뻐하며, 이 세상 안에서 저항할 것입니다.

오직 당신의 도움으로 인하여, 완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병가에서는 로마서 9장에 근거하여 “저는 당신의 그릇입니다. 만드시든지, 아니면 부수어 버리소서”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를 인정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회복된 후 찬송에서 자신의 흑사병을 “죽음의 형벌”이라고 고백하는데, 이는 성경이 말하듯, 이 땅의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한 비참과 형벌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츠빙글리는 자신의 질병을 철저히 성경 범주 안에서 해석하고 있으며,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선배 츠빙글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데, 그것은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15), 성경이 말하는 곳까지 나아가고, 성경이 말하지 않는 곳에서 멈추는 것이다.

우리는 재난에 대해 두 가지 극단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먼저 재난을 특정 죄와 직결시키는 오류이다. 가령, 흑사병이 중세교회처럼, 고행의 부족, 유대인의 죄 때문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흑사병에 걸린 츠빙글리, 그리고 흑사병으로 9명의 아내와 자녀를 잃은 신실한 불링거(Bullinger)도 같은 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하게 돼버린다. 그래서, 개혁신학자 벌코프(berkof)는 “재난들을 개별화시켜서, 재난이 일어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범한 심각한 죄에 대한 특별한 형벌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16)라고 가르친다.

반면, 우리는 재난이 죄와 전혀 무관하다는 오류도 범해선 안 된다. 그래서, 벌코프는 다음의 말을 덧붙이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사건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죄와 재난의 인과 관계를 무시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못 된다. ...(중략)... (물론, 특정하게 집을 수는 없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17) 즉, 중세 최대의 재난 흑사병은 그냥 우연이 아니고, 죄와 전혀 무관하지도 않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경고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현시대의 다양한 재난 속에서, 만유의 주권자 하나님을 인정하고, 벌코프 선생의 가르침처럼, 그리고, 츠빙글리와 같이, 병자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회개하고, 병중에나, 병세가 심해질 때나, 회복될 때나, 언제나 생명의 주권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것이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미주

1) 이상규, 『교양으로 읽는 역사』, (서울: SFC, 2009), 91.

2) 최덕성, 『종교개혁전야: 십자군 전쟁에서 르네상스까지』, (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3), 159.

3) 천주교회는 사후 세계가 천국, 지옥뿐만 아니라, 연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것으로 고행을 강조하며,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자를 우롱했다.

4) 이상규, 『교양으로 읽는 역사』, 92.

5) 물론, 성찬에는 견해 차이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루터(공제설)와 츠빙글리(기념설)는 결별했고, 스위스와 독일의 종교개혁 진영은 완전히 나누어지고 말았다.

6) Jim West, Christ Our Captain: An Introduction to Huldrych Zwingli, (Quartz Hill, CA: Quartz Hill Publishing House, 2011), 13.

7) 허순길, 『교회사 산책』, (서울: 총회출판국, 2009), 165-166.

8) Samuel Simpson, Life of Ulrich Zwingli: The Swiss Patriot and Reformer, (New York: Baker & Taylor Co., 1902), 84

9) Simpson, Life of Ulrich Zwingli, 85

10) Simpson, Life of Ulrich Zwingli, 86.

11) 조용석. “츠빙글리의 역병가(Pestlied) 연구”, 『장신논단』, Vol. 46, No. 2, (2014), 119.

12) West, Christ Our Captain: An Introduction to Huldrych Zwingli, 16.

13) “역병가”라는 제목의 명명과 전문번역은 조용석, “츠빙글리의 역병가(Pestlied) 연구”, 119-121을 사용했다.

14) 이 표현은 (고)박윤선 목사님이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했던 2인칭 존칭대명사이다.

15) 계시의존사색은 박윤선 목사님께서 자주 사용하신 용어이다.

16) 루이스 벌코프, 『조직신학(합본)』, 권수경 이상원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8), 480.

17) 벌코프, 『조직신학(합본)』,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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