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중국 현지에서 온 또 다른 편지

“세고 세어도 부족했기에 끝났다”; 弥尼,弥尼,提客勒,乌法珥新

글. 大凡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한폐렴은 중국 내 사망자가 어느덧 7백명에 달한다(2월 8일 기준, 누적 사망자는 722명, 누적 확진자는 3만4546명으로 집계). 중국관영언론에서 발표한 수치이지만, 실제 현황은 분명 몇 배에서 몇십 배로 보여지는데 외부에서 알 방법이 없다. 하루속히 바이러스의 확산이 멈춰지고, 공포와 고립으로 인해 고통받는 대다수 중국인들이 평온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길 기도한다. 특히 우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국 도시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폐렴 확진자들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분투하는 최일선의 의료진들이 더 이상 쓰러지거나 지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바이러스의 근원과 확산 요인을 분석하며, 사회적·문화적·과학적 관점과 함께 ‘동떨어진 식습관’과 ‘낙후된 문화수준’, 심지어 ‘우한의 미생물연구소’ 등도 열거된다. 시간이 지나면 바이러스의 발발과 전개에 대해 중국 정부가 유출하는 정보대로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개신교 목회자인 필자는 이 사태를 어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영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위협과 고립에 처한 중국인과 중국교회의 영적 상황과 곪고 있는 중국 지도자들의 상태를 알리는 또 다른 경종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는 당시 강대국 이집트에 의해 볼모로 잡혀 강제 노역을 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찾아 빠져나오면서 이집트가 겪은 혹독한 여러 재앙; 물, 공기, 전염병 등의 각종 재해가 열거되고 있다. 이 재앙은 ‘구속사’를 위해 하나님이 베푸신 특별한 사건이지만, 작금의 암울한 중국 상황을 살펴 보노라면 이 시대 중국에 재현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길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중국의 일상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뒤덮이기 시작했고,

얼마 전까지 정보가 차단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창궐해 돼지값은 여전히 폭등한 상태이며,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립무원에 떨고 있으며,

이제는 또 다른 재난인 조류독감이 등장했음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다음은 무엇이 될까 황망하다.

 

왜 이런 일이 연속해서 생기는 것인가?

중국의 지도자, 당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지 마라.

당신네 눈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지 마라.

당신의 옆에 선 참모들과 과학자들은 당신들이 신봉하는 ‘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시야에 갇혀 각 사건의 인과를 설명하고 이해하려 했을 것이고, 이들은 마치 이집트의 파라오 옆에서 끊임없이 상황을 합리화시키면서, 눈 앞의 상황과 역사에 드러난 하나님을 멸시하고 깎아 내리려는 참모와 술사들의 작태와 다를 바 없다.

이 모든 재해를 인재(人災) 혹은 자연이 주는 단순 재해로 치부할 수 없다는 이유는 이것이다.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의 악행이 가공할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하나님 두려워해야 함을 잊었고,

사람들을 존중해야 함을 예사로 여겼으며,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종신집권을 법제화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권력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당신의 권력이 정당히 중국인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라고 떠벌려 왔지만,

실제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 아래 투쟁과 견제를 통해 인민대회당이라는 크나큰 밀실의 권력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 권력이 15억 중국인민이 아니라, 또 9천만 공산당원도 아니고, 2천여명이 모여서 비준과 동의를 거쳐 쟁취한 권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당신네들의 권력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섬기라고 잠시 허용된 하늘의 권력임을 곳곳에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중국 영토에 대한 권력을 잠깐 맡겼을 뿐이다.

이제 이 권력이 당신들에게서 소환될 때, 그 권력은 다른 이에게 넘어갈 것이며,

당신들에겐 혹독한 책임이 전가될 것이다.

 

당신네들이 펼쳐 놓은 소름 끼치는 악행을 보라.

신장 지역의 ‘직업훈련소’라는 허울을 쓴 ‘위구르족 수감시설’은 극소수의 테러분자를 제압하려는 명분으로 수천 수만 배에 달하는 한 민족의 종교와 정신을 개조하려는 시도는 히틀러적 광기이자, 2차대전 당시 독일제국의 나치적 통제 수법에 다름 아니다.

중국의 소수민족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모두 규정될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들은 지금 실제적인 테러리스트들이다.

‘사회 질서 유지’라는 구실 아래 희생된 ‘천안문 피해자들에 대한 조직적 은폐’는 오히려 작은 것이다. 각종 사교로 규정된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한 탄압, ‘자유’와 ‘인권’이라는 전체주의에 반하는 주제를 이슈화하는 숱한 인사들에 대한 임의 동행과 구금, 고문은 갈수록 실체가 명확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당신들의 최악의 악행은 ‘신성 모독’이다.

이 수년 간 당신네들이 보기 싫어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명목 아래 폐쇄시킨 예배당을 비롯한 각종 종교시설은 수천인지 수만인지 가늠할 길도 없으며 신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 지 오래며 그 신원과 간구의 기도가 쌓인 것이 태산보다 중하다.

몇 십 년이나 동떨어진 과거의 통치이념을 각색한 ‘신시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좀 먹고 살만해졌다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어설프고 해묵은 논리를 강요하는가?

얼마 있지 않아 없어질 당신의 어록을 대륙의 중국인들 모두에게 외워 들리는 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은가?

길거리와 건물에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온통 도배한 것으로도 부족한가?

왜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만이 선포되어야 할 신성한 예배 시간에 이 지구에 얼마 남지 않은 공산당과 일개 인간일 뿐인 당신을 향한 찬양이 쏟아져야 하며, 전통문화의 우월성과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을 강론하게 하는가?

그런 세뇌 따위는 당비를 내는 당신네 9천만 공산당원이나, 핵심 세력인 2천여 전인대에게만 해도 충분하다.

통일전선전술이라는 기만 작전 아래 얼마 전부터 국가의 모든 기층 세력들을 불신하며, 적대적으로 대하는 시각은 끊임 없이 권력을 탐하는 마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보여주는 지옥도임을 깨닫지 못하는가?

‘우한’이 중국의 교통 요지이지만, 제국주의적 백일몽에 사로잡힌 지도부들이 이곳을 장악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름다운 천혜의 요지인 도시를 통해 사람과 자원이 오고 가는 대신에, 바이러스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서 창궐하는 것을 보며 깨닫는 깨달음이 없는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당조의 비단길을 재현하고, 청조의 황금기로 되돌아 가려는 당신들의 ‘중국몽’은 고색창연해 보여도 사상누각임을 간파하라.

2012년 이후 중국 사회와 교회 상황은 중국공산당 스스로가 영욕의 세월로 평가하는 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로 현저히 회귀한 듯 하다.

당신은 등소평을 넘어서 모택동과 대등하려 하면서,

개혁개방과 분권으로 신중국을 부국으로 인도한 등소평을 무시하고,

문혁을 일으켜 망국적 퇴보로 이끈 모택동의 사상과 구 소련이 이미 실패를 자인한 마르크스 레닌 주의를 차용하려 하는가?

 

당신들이 저지른 실책을 돌이키라.

- 각 성, 자치구, 직할시에서 자행하는 ‘한 도시 한 교회’ 정책을 폐기처분하라.

가정교회를 발본색원하려는 모든 노력을 중지하라.

삼자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무신론자들이 좌우하려는 간섭과 참견을 버려라.

당신은 신이 아니다. 일개 인간인 당신의 말과 사상을 교회에서 가르치려 들지 말고, 당신의 정당 안에서만 가르치라.

당신들이 개입하지 않아도 중국 교회와 신자들은 충분히 저력이 있고,

양심과 상식이 있으며, 당신들보다 더 중국을 사랑하는 애국적 면모를 가진다.

심지어, 중국 안의 외국인들에게까지 종교정책을 강요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버려라.

이는 폐쇄적인 이슬람 국가들이나 취하는 정책이다.

 

인권을 존중하라.

신장 지역에 수감된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위구르족을 풀어줘라.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닐뿐더러 강제로 계몽될 이유가 없다.

당신들 대다수에 해당하는 한족과 공산당이 그들에 대한 계몽을 빙자한 민족말살, 문화말살, 종교말살정책을 취할 권리를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

기독교는 사람을 존중하고, 당신들 역시 사람이기에 존중한다.

이 존중의 이유는 신이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 안에 신적 형상과 인격이 부여되어 있기에

사람의 몸과 영혼을 강제로 구속하거나 존엄성을 짓밟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구금된 이들을 석방해야 한다.

지도자의 진정한 권력은 포용과 관용에 있지, 무력에 기반한 물리적 강제력에 있지 않다.

 

투명성과 책임감을 보이라.

중국 정치 체제에 투명성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아는 현실이다.

당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 전달에 있어 투명성과 신속성이 없으니 사람들이 ‘공포’에 전염된다.

유물론적 세계관과 과학적 합리주의를 따르는 철저한 무신론자라는 지도자가 어설프고 황당하게도 ‘바이러스가 마귀’라는 인식과 발언으로 대중을 감성으로 혹할 수 있는가?

언론에 대한 더 철저한 통제 정책을 밀어붙이는 최근 발언은 그리 놀랍지도 않아 보이고,

오히려 재앙을 겪으며 결국 망국의 길로 가는 이집트 파라오의 모습이 겹쳐진다.

지도자부터 철저한 자아비판과 책임을 지지 않으면, 권력의 종말에 일어나는 처절하고 처참한 결국은 어떤 양상일지 헤아릴 수 없다.

전중국의 담벼락과 거리에 게시된 핵심가치관을 당신네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지켜라.

당신들이 잘 지킨다면, 국민들은 지키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따라간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은 산업시대 이후 벌어진 양극화 현상과, 청나라 말기 아편이 만연된 상황을 거치며 공산주의자들에겐 경구처럼 받아들여진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권력에 대한 탐욕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권력이 아편’이란 사실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당신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다.

고대의 강대국이였던 바벨론의 지도자와 권력층이 하나님을 무시하며, 아편에 취한 것처럼 자신들이 가진 권력에 도취하여 잔치를 벌일 때에 나타났던 하늘의 메시지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세고 세어도 부족했기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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