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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머니- 젠더(gender)이론 창시와 성전환수술 판도라를 열다

기사승인 2020.02.06  07: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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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라비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공저) 저자, 칼럼니스트

존 머니, 젠더(gender)이론의 기반을 만들고, 성전환수술 판도라를 열다

여기 한 소녀가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 병원의 존 머니 박사 진료실을 뛰쳐나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보니 소녀 아니면 소년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는 누구이며 왜 존 머니에게서 도망쳤을까? 그렇다면 존 머니는 누구인가. 존 머니(1921~2006)박사, 그는 1960년 대 후반부터 3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성 전문가로 군림해 온 인물이다. 그의 지론은 한마디로 “타고난 성은 중요하지 않다. 성은 바꿀 수 있다”이다. 1965년 존스홉킨스 병원이 사상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시작했을 당시 머니의 집요한 설득으로 의사들이 수술을 거행하였다. 존스홉킨스 병원에 <성 정체성 클리닉>이란 이름으로 운영하였으며,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용어를 창시한 사람이 존 머니다. 머니는 인간의 성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죽는 날까지 바꾸지 않았다. 생물학적 성(sex)결정이 아니라, 사회적인 학습과 환경으로 결정된다는 젠더(gender)이론의 기반을 만들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머니의 이론은, 68혁명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의 중심 이론이 되는데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68혁명의 역사적 배경은 1968년 3월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발발한 신좌파운동이다. 기존 좌파들과 달리 권위에 도전하고 성차별, 인종차별 등 문화적 사상운동으로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68혁명은 페미니즘운동을 함께 일으키며 급진적 페미니즘, 즉 래디컬 페미니즘의 전성기를 열게 된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성적자유, 성적 혁명 등에 주목하며 여성학의 중심 이론이 되었다. 머니의 성적 금기를 깨뜨리는 실험적 행위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성 문제 전문연구원 겸 임상심리학자로 명성을 얻으며 승승장구하였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젠더 이론의 창시자이기도 한 머니의 주장은 1970년 출판된 케이트 밀레트의 『성 정치학』의 토대가 되었다. 케이트 밀레트는 『성 정치학』에서 “모든 문명은 억압적인 가부장제였다”를 주장하며 가부장제 개념을 페미니즘 이론으로 끌어들인 인물로 그녀 자신은 양성애자였다. 케이트 밀레트는 『성 정치학』에서 머니의 이론을 인용하며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의 기대와 편견에 의하여 탄생 한다” 고 주장하였다.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적인 성, 젠더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머니의 이론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성학에서는 젠더 개념의 원조 격으로 시몬느 보부아르가 1949년에 발표한 『제2의 성』의 명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히 ‘젠더’ 용어의 창시자는 존 머니이다. 의학적으로 성전환수술을 통해 성 정체성, 성 지향성은 부모의 양육방식과 사회적 환경에 좌우된다는 것을 임상시험을 통해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머니의 성 연구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젠더 이데올로기 확립에 직접적 영향력을 미쳤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게일 루빈도 1975년 발표한 논문 <여성 거래>에서도 섹스/젠더 체계를 주장하였다. 머니의 인간의 성 정체성 결정은 타고난 성별이 아니라 후천적 학습과 환경이라는 주장은, 68혁명 신좌파운동 이후 당시 학계를 비롯한 지식인층 입맛과, 급진적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여성학, 사회과학에 중요하게 인용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존스홉킨스 병원의 신임을 받으며 <성 정체성 클리닉>을 운영하는 머니는 시대의 영웅에 필적하는 권위를 인정받았다. 머니의 이론은 1960년대 말 신좌파운동의 연장선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만나 성 중립(젠더 뉴트럴 Gender Neutral)이론을 형성하며 오늘 날 래디컬 페미니즘의 이론의 중요한 기반을 만들게 된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핵심 분파인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섹스/젠더의 경계를 해체,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이성애, 동성애, 성 전환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존 머니는 학문적 도전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독선적이고 지적으로 오만한 인물이었다. 1921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스물다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의학 사상 최초로 존스홉킨스 병원의 성전환 수술 클리닉을 개설하여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1965년 6월 1일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성전환 수술이 최초로 실시되었고 약 두 달 후 1965년 8월 22일 캐나다 위니펙에서 남아 일란성쌍둥이가 태어났다. 바로 머니의 실험 대상이 된 쌍둥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책이, 존 머니가 쌍둥이를 대상으로 인간 모르모트 실험을 자행한 의학계의 충격적 실화를 엮은 책이다.

존 머니 박사의 쌍둥이를 성전환수술 대상으로 삼은 논픽션.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서평.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존 콜라핀토 ㅣ지음)

신생아는 남녀 차이가 분명하지 않으며 학습과 양육에 의해 성별을 바꿔 키워도 문제없다?

이 책의 원제는 ‘As Nature Made Him’으로 국내 번역은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로 출판되었다. 저자 존 콜라핀토는 기자이며 작가로 이 책은 논픽션이다. 2000년 존 머니를 둘러싼 의학계의 추악함과 쌍둥이의 비극을 폭로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자 존 콜라핀토는 존 머니 박사에 의해 남아에서 여아로 성전환 수술을 한 데이비드 라이머를 인터뷰하였다. 데이비드 라이머가 서른한 살이 되었을 때 저자가 캐나다 위니펙에 거주하는 12개월 간 인터뷰한 내용을 출판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브루스에서 브렌다로 그리고 데이비드로 개명한 한 인간의 고통에 가득 찬 일대기를 따라가 보자.

데이비드 라이머의 부모가 지어준 원래 이름은 브루스였으나, 성전환 수술 후 머니의 권유로 브렌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후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성별에 대한 진실을 알고 다시 본래의 성별인 남자로 돌아간 후 데이비드로 개명하였던 것이다. 데이비드 라이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1965년 8월 22일, 남아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브루스, 브라이언이었다. 브루스가 생후 8개월에 포경수술을 받다 의료사고로 생식기를 잃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브루스의 부모는 텔레비전 유명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성전환수술 클리닉> 설립으로 명성이 최고조에 달한 존 머니 박사를 보게 된다. 고민 끝에 브루스의 부모는 머니에게 편지로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머니는 당장 수술을 재촉하며 여자아이로 키우면 된다며 확신에 찬 자신감을 보였다. 머니로서는 유아를 상대로 성전환수술을 실시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머니는 1950년 발표한 논문에서 신생아 성 심리는 남녀 차이가 분명하지 않은 중립성을 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브루스는 생후 두 살인 1967년 7월 성전환수술을 받고 이름을 브렌다로 바꾸었다. 하지만 브렌다는 본래의 성별인 남자아이의 성향을 그대로 보이며 성장하였다. 본성보다 양육의 힘으로 얼마든지 여자로 키울 수 있다고 장담하는 머니의 주장과는 달랐던 것이다. 머니는 쌍둥이 케이스를 성공적인 성전환수술 최대 업적으로 삼아 각종 강연회, 저서, 논문으로 발표하며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언론들은 머니의 연구결과는 다윈의 진화론에 필적하는 업적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브렌다는 거세 수술 후 1년에 한 번, 길게는 18개월에 한 번 꼴로 머니를 만나 상담을 받았다. 브렌다는 여섯 살에 접어들고 있었다. 브렌다는 심리검사에서도 남자아이의 성향을 그대로 보이며 그림을 그려도 남자아이를 그렸다. 머니는 그런 브렌다에게 집요하게 성별을 여자아이로 몰아가며 어린아이에게 남녀 생식기 차이 혹은 쌍둥이 형제에게 서로 옷을 벗고 생식기를 관찰하게 하였으며, 삽입과 성관계 흉내 놀이를 시켰다. 머니는 쌍둥이의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책, 논문, 강연회 자료로 사용하였다. 브렌다 형제는 머니의 실험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브렌다가 여덟 살이 되자 2단계 성전환 수술인 인공 질을 만드는 수술을 시도하려 하자 브렌다는 극구 저항한다. 머니는 브렌다의 부모까지 실험 대상으로 삼아 엄마를 집에서 알몸으로 돌아다니게 하는 여성친화적 환경을 만들기를 강요하며 브렌다에게 압박과 회유를 하였다. 쌍둥이 형제는 심각한 정서장애와 학습부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브렌다의 가정은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브렌다가 열한 살이 되자 더욱 남성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이때 브렌다는 머니 박사를 만날 때면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며 머니를 속이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머니는 계속해서 질 수술과 호르몬 투약을 강요하였다. 결국 브렌다는 열두 살부터 에스트로겐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복용하는 척 속임수를 쓰다 결국 에스트로겐을 삼키기 시작하였으나 질 수술만은 필사적으로 거부하였다. 브렌다가 중학생이 되어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머니를 대면한 날, 브렌다는 머니의 진료실에서 도망을 쳐 호텔로 돌아와 버렸다. 사춘기를 통과 중인 브렌다의 학교생활은 엉망이었다. 브렌다는 완연한 남성성을 띄며 서서 소변을 보는 등 남성과 다름없었다. 브렌다가 열네 살이 되자 영국 BBC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인터뷰를 요청하여 응하게 된다. 저자 존 콜라핀토의 표현을 빌리면 ‘TV계의 사냥개 BBC’ 추적 프로그램 팀이 머니의 실험에 이의제기를 하였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머니는 브렌다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일체 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브렌다는 이제 열다섯 살이 되었다. 브렌다의 부친은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다. 브렌다는 “즉시 남자로 돌아가겠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리고 브렌다라는 이름을 버리고 데이비드로 개명하였다.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고, 양쪽 유방절제수술, 음경 재건수술을 받으며 다시 남자가 되기 위한 투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발기 불능이었고 음경을 만드는 수술 후유증에 인공 요도가 막히고 감염되는 증상으로 첫해 열여덟 번이나 입원하기에 이른다. 데이비드는 여러 차례 자살시도를 한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가 되었다 다시 남자 몸이 되자 또 다른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데이비드(전 브렌다가)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쌍둥이 형제 브라이언은 열아홉 살에 결혼하여 두 아이 아빠가 되었다. 데이비드는 다시 음경수술을 받았고 성관계가 가능하기에 이르렀다. 데이비드는 제인이라는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데이비드의 변화에 따라 머니와 존스홉킨스 병원 측에서 쌍둥이 케이스 이야기가 사라졌다. 17년 간 성전환수술의 성과와 업적으로 내세우며 이용했던 그들이었다. 머니는 존스홉킨스의 최고 홍보요원이었다. 그동안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은 이가 수천 명에 달했다. 1979년 10월 존스홉킨스 병원의 머니 <성정체성클리닉>이 폐쇄되었다. 1986년 존스홉킨스 병원의 심리호르몬 팀이 철수하였다. 존 머니 박사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은퇴하였다. 그러나 저서를 출간하고 활발한 방송은 계속되었다. 머니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 숙적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바로 하와이대학교 생물학자 밀턴 다이아몬드 박사로 호르몬이 인간의 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그는 “성 정체성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머니와 반대 사실을 입증하려는 다이아몬드의 문제제기는 의학계 학술지 등에서 늘 퇴짜를 맞았다. 이는 의학계가 오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과 인정했을 때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두려웠으리라. 머니의 입지는 그만큼 단단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머니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에서 보조금을 계속 지원받았다. 그러나 79년 이후 쌍둥이 케이스에 대해 더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밀턴 다이아몬드는 결혼한 지 1년이 막 지난 데이비드를 만났다. 데이비드는 다이아몬드 박사로부터 머니의 쌍둥이 케이스 사례 이후 수 천 명이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며, 날마다 당신처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설득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다이아몬드는 데이비드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논문에서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은 대부분 선천적으로 결정되며 성전환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강조하였다. 1997년 데이비드는 세 차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화제가 되었고, 성전환수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존스홉킨스에서 은퇴 후 일흔여덟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오만과 당당함을 유지하며 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저서를 발표하였다. 데이비드 사례가 언론을 타고 있자 음모세력의 공작이라 간주했다. 머니는 그동안 학계에 뿌리내리고 그를 옹호하는 교수들이 포진해있어 성 문제 전문가로서 명성은 탄탄했다. 브렌다가 데이비드로 바뀐 지 20년이 지났다. 데이비드의 부모가 하는 사업도 잘 풀리고 그의 삶도 순조로운 듯 했다. 데이비드는 부모를 전혀 원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온 가족이 데이비드에 관심이 쏠려있는 동안, 쌍둥이 형제 브라이언은 삶은 엉망진창이었다. 10대부터 술과 마약, 도벽, 우울증, 자살기도가 이어졌던 것이다. 온통 데이비드만 걱정하는 부모를 보며 일란성 쌍둥이인 브라이언의 인생은 밑바닥이었다. 브라이언은 자신과 똑같은 데이비드를 늘 좋아했다. 그럼에도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가 여자인줄 알고 자랐는데 갑자기 남자라니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 존 콜라핀토가 데이비드 라이머를 인터뷰한 본 책이 2000년 2월 출판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한 인간의 기구한 운명이 미국 등지에 알려졌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오프라 윈프리 쇼> <굿모닝 아메리카> 등 TV, 라디오에 적극 출연하였다. 2004년 5월 데이비드 라이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2년 쌍둥이 형제 브라이언이 먼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브라이언의 죽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데이비드를 힘들게 했던 것은 자신의 성별을 되찾고 난 뒤의 허무감이었을까. 여기까지가 존 머니에 의한 성전환수술, 혹은 인간생체실험이라 불러도 무방한 데이비드 라이머와 그의 가족들의 불행한 이야기다.

존스홉킨스 병원은 1979년 성전환수술을 갑작스럽게 중단하였다. 이 시기는 데이비드가 BBC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인터뷰를 했던 때였다. 당시 존 머니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존스홉킨스 병원 정신의학과장 조엘 엘크스 박사가 떠나고 폴 맥휴 박사가 부임하면서 성전환수술이 중단되었다. 폴 맥휴 박사는 존 머니와는 180도 다른 인물로 성전환수술에 대해 극도의 부정적 견해를 밝혀온 사람으로 유명하다. 폴 맥휴는 “성전환은 성도착 복합적인 인격장애의 한 증상”로 규정하였다. 수술이 아니라 상담을 통해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성전환수술이 중단된 지 38년 만인 2017년 성전환수술 등 트랜스젠더 보건서비스를 다시 재개하였다. 데이비드 라이머의 비극적 삶과 성 정체성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존 머니가 열은 성전환이라는 판도라는 닫히지 않고 있다. 국내만 해도 최대 25만 명으로 추산되는 트랜스젠더가 있다고 한다. 존스홉킨스 병원 등 구미 유명 병원은 물론이요, 최근에는 성전환수술 서비스가 국제적이라는 태국에서 수술을 받는 트랜스젠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군복무 중인 현역 군인이 휴가를 받아 태국에서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고 여군 복무를 희망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존 머니에 의해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용어를 생겨났고, 페미니즘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여 젠더 이데올로기로 진화하였다. 1960년 대 말 신좌파운동은 미국 학계와 대학교에 둥지를 틀어 정치, 문화계로 전이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과 개인의 정체성 중시와 결합하여 정치 담론을 형성하였다. 정체성정치는 미국 민주당을 잠식하였다. 여성주의, 동성애자 권리, 인종적 소수자 문제, 성적 취향이라는 개인적 정체성에만 더욱 매달리는 현상을 낳았다. 이런 담론이 국내로 한꺼번에 유입되어 현재 이르고 있다. 트랜스젠더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전환수술에 대해 청소년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하고 혐오로 몰아가는 세상에 우리는 처해 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존 콜라핀토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알마 출판사. 2014)를 읽고 서평 형식으로 썼음.

 

 

오세라비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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