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호 목사(울산시민교회 부목사)

제17회 대한민국 교육박람회가 삼성역 코엑스에서 1월 16일~18일까지 진행되었다.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교육박람회에 참석한 이유는 사회교육 정도와 미래교육이 추구하는 중심적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정중지와(井中之蛙)'의 식견이 좁은 개구리가 혹시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또한, 현 기독교교육의 미래와 조짐이 오버랩되면서 걱정을 해야 할지, 안심 해야 할지 다녀와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박람회에는 코람데오닷컴 객원기자 이재욱 목사와 동행하였다. 먼저, 입장하는 순간 단숨에 이목을 사로잡는 엄청난 '기술력'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뉴스와 미디어로 발전하는 기술들을 들어왔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체감하는 바가 확연히 달랐다. 첫 방문에는 정신을 못 차리고 홀려서 다닌다는 이 목사의 조언에 급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멋과 교양을 겸비한 시제품과 기술의 결과물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가장 압도하는 기술력은 코딩과 3D프린터였다. 코딩은 한마디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작업이다. 2018년 필수교육으로 초등학교때부터 정규과정, 정보과목으로 배우게 되어있다. 종이로봇, 종이블럭, 레고와 같은 종류들을 행동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3D프린터기는 원하는 사물의 설계도를 제작하고 제한된 규격안에서 어떤 형태든지 만들어주는 기술이었다. 과학기술자들이 실험실에서나 만지며 연구할 수 있었던 분야가 이제는 많이 내려와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들어섰고 논리력,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증진시키는 쾌거를 보이고 있다.

기술력에 왜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기술력은 기업의 생명이다. 심장부와 같은 기술이 완성체가 되어 위풍당당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비록 차갑고 딱딱하게 태어난 모습이었이지만 분명 생명력이 전해졌다. 반드시 이루려는 기업의 전투적인 모습, 그리고 그 기술력이 가져다준 학습의 효과는 대단했다. 재미를 넘어서는 성장 도구가 되었고,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인간의 두뇌계발은 물론 스스로 위기를 탈출해 내는 능력까지 이끌어낸 결과였다.

복음은 기독교의 생명이다. 복음에 대한 감탄은 어떠한가? 과연 사람들은 도심 속에 있는 교회를 보며 얼마만큼 놀라워하는가? 교회의 십자가는 우뚝 치솟아 있지만 안타깝게도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성도들은 전투력까지 상실하였다. 교회는 복음과 자생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삶이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과 자립심이 교회 안에서 길러져야 할 것이다.

드디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밖으로 출품되듯 나갈 때 세상은 감동과 감탄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력은 전달 되어질 것이다. 박람회에서 얻은 또 하나의 배움은 '소통'이다. 그들도 소통을 꿈꾸고 그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연구한다.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려 상당히 낮은 자세를 취한다. 경청은 마음먹으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 놀라게 한 사실은 '실현'이라는 점이다. 한 부스에는 요상한 글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부스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고, 얼핏 보면 쓰레기 더미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살펴본 결과, '디자인 씽킹을 통해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드는 공간'이었다. 함께 문제점을 읽어내고 컨셉을 잡고 생각과 디자인을 진화시키는 프로젝트였다. 그 공간은 실제 학교에 시공되어 사진으로 남겨져 있었다. 요즘, 누가 아이들의 말을 듣고 엄청난 예산을 소비하여 실현 시켜줄 수 있을까? 학교가 움직인다. 꿈같은 일을 현실로 일구어내며 공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도록 돕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어린 주인공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짐작해본다.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적극적 공감을 통한 '소통'일 것이다. 이제 소통이나 경청은 듣는 자세나 표현의 자유로움으로 제한할 수 없을 것 같다. 실현하여 상대방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소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교회도 소통하고 경청한다. 심방과 상담은 오래전부터 일구어져 왔으며 이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영향력들은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다만, 단순한 소통과 경청은 이제 ’힘을 잃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들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감동을 전할 것인지, 진화시킬 비장의 카드가 준비되어야 한다. 겨우 마음을 터놓고 힘들게 입을 연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작은 것에서부터 생각해 보겠다는 일은 꽤나 멋진 일이지 않은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서로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낸다면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이다. 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관심과 사랑을 곁들여 성도를 보호하고 지켜내며 성장시키는 과업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간'에 관한 내용이다. 미래 교육은 공간 활용을 전망했다. 더 이상 익숙한 칠판과 책걸상, 또는 사물함과 게시판으로 교실을 채우지 않는다. 경계가 없는 혁신 공간모델, 탁 트인 장소에서 배우는 학습환경, 죽은 공간을 살리는 창출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박람회에 한 예로 소개된 교육공간은 6명이 마주 보는 육각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토론할 주제나 물건을 언제든 교체할 수 있었고, 직관하여 공감하거나 느끼는 차이를 바로 공유가 가능토록 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벽에 공구가 걸려있었는데, 자기가 구상한 것을 만들어보는 공간 같아 보였다. 연구와 실험이 동시에 가능해 보이는 구조였다. 이 교육공간의 핵심은 소규모 공동체 형성과 자기 개발력의 속도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과의 허용범위 거리를 허물거나 경계를 전진시키려 했다. 서로 반응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속도를 단축시켰다. 더불어 실험과 결과에 기다림을 줄여 자기발전에 속력을 낼 수 있었으며 성공과 실패를 이전보다 더 반복할 여건까지 제공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넉넉함으로부터 오는 성공은 바로 이 교육공간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교회라는 공간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 넉넉함으로부터 전해지는 승리의 교육공간으로 다음세대와 성도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과 헌신, 재정투자의 할애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삶의 대부분은 최첨단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 있다. 옛것이 나쁘고 불편하다는 것은 아니며 무조건 최신식의 교회를 지향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환경을 가꾸고 공간을 재구성해보는 일도 논의가 되면 좋겠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다음 세대 교육과 공간을 교회가 개방하고 마련해준다면 더 없는 전도의 기회가 될 것이며, 교회의 문턱을 한층 더 낮추는 발판이 될 것이다.

‘교육이 미래다'라는 말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이해와 설득력이 있다. 우리도 '교회가 미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도 그들이(세상교육) 했던 갖은 노력, 실패와 성공이 거듭되어야하며, 그들도 시행착오를 통해 잃고 얻은 것이 많았듯이, 우리 교회들에도 교육을 위한 동일한 수고가 필요하다. 동시에 은혜를 사모하며 간구해야 한다. 강력해져 가는 세상의 툴 앞에서 검토와 연구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그 결과물을 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미래다', '기독교교육이 미래다'라고 말하여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걱정 대신 희망을 품고 교회가 움직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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