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의 개념

신요한(새언약교회 전도사, 코닷 수습기자)

문화다양성 조례는 지방 교육청 포함 이미 18개가 통과되었고 문화다양성 조례 포함 인권 관련 조례가 통과된 것은 지금까지 150개가 넘는다. 특히 성평등 조례가 가장 많은 75개를 차지한다. 진보언론이나 성소수자 인권 단체에서는 보수기독교계가 인권조례들을 자꾸 저지한다는 이유로 염려하고 있지만 이미 많은 지역에서 문화다양성을 비롯한 인권조례들이 시행되고 있으므로 그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흐름이 유지된다면 기독교 시민들의 반발로 인해 문화다양성 조례가 저지된 지역도 다시 조례가 통과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만큼 교계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이 조례들의 문제점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계와 보수시민들은 문화다양성 조례를 왜 반대하는 것일까? 물론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 문화다양성 조례에는 여러 사회적 혼란을 발생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존재하는데 첫째로 독소조항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문화를 역설적으로 차별하며, 둘째로 사회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배제된 채 진행되었다는 점, 셋째로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을 맺었을 때 당시의 국제 동향과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이슬람과 동성애가 화두인 이유는 그들의 문화로 표출되는 사상이 기독교를 넘어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문화다양성’의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앞서 1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문화다양성’의 정의는 유네스코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문화다양성협약)에 따라 “집단과 사회의 문화가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집단’과 ‘사회’의 명확한 정의가 없어서 해석이 분분하다. 다양성의 전제가 되는 문화 집단의 범주에 따라 문화다양성의 개념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짚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문화다양성법)이 기초하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에서는 ‘문화다양성’의 정의는 언급되어 있지만 ‘문화’의 개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다양성협약의 전제가 되는 2001년 유네스코 문화다양성선언에서 문화에 대한 정의를 찾을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문화는 사회와 사회구성원들의 특유한 정신적ᆞ물질적ᆞ지적ᆞ감성적 특징의 총체로 간주되어야 하며 문화는 예술 및 문학뿐 아니라 생활양식, 함께 사는 방식, 가치체계, 전통과 신념을 포함한다는 것을 재확인”

문제는 문화다양성선언에서 문화가 속하는 집단의 개념을 광의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문화집단의 범위가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와 집단의 명확한 정의가 결어되어서 어디까지가 다양성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지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이것만으로는 문화다양성의 국제적인 개념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화다양성선언이 채택된 당시의 국제적 동향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채택 당시 국제적 동향

국내에서는 유네스코의 2001년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문화다양성선언)과 2005년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문화다양성협약)을 2010년 6월 23일에 비준함에 따라 같은 해 7월 1일에 발효되었다. 본래 조약은 헌법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으나 2014년 우리나라는 협약 당사국으로 국제협약이 요구하는 권리와 의무를 적극 반영하고 구체적 이행을 위하여 국회에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문화다양성법)을 제정하였다. 법 제정 당시 우리나라는 이주민이 약 140만 명에 이르렀고 세계화, 문화의 상품화에 대처하면서 문화간 공존과 사회통합, 문화적 창조력 제고를 위하여 문화다양성 협약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1편에서 자세히 다뤘듯 스크린쿼터 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문화다양성법의 전제가 되는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선언과 문화다양성협약이 채택된 사정을 살펴보자. 1990년대 초반 UR 협상 당시에 미국의 예외 없는 개방요구에 프랑스가 문화적 예외(cultural exception) 조항으로 대처하면서 자국의 문화시장이 미국 문화상품에 압도되어 미국화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문화 주권 내지 고유한 문화를 지켜내려는 노력을 해왔다. 세계 각국은 무역자유화 내지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문화적 주권의 침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다양성협약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문화다양성협약 채택 당시 최대의 쟁점은 WTO 협정 위반의 소지가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가령 문화다양성협약 제6조에 따르면 국가적 차원에서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규제조치를 허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WTO 협정이 기초하는 GATT 1994의 제III조(내국민대우)나 제XI조(수량제한 폐지), 그리고 GATS의 제XVII조(내국 민대우)나 제XVI조(시장접근)의 위반이 될 수 있다. 당시 미국이 이와 같은 이유로 협약을 반대했다. 이러한 국제적 분쟁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와 같이 세계화와 그에 수반되는 시장원리의 강력한 확대는 경제대국의 문화만 부각시킴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불평등을 초래하여 문화다원주의의 등장을 촉진하게 되었고 문화다양성협약의 채택은 이러한 사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문화다양성협약은 경제력에 의해 국가와 민족의 고유문화가 잠식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그러나 개별국가의 경제적 상황이 각기 다르므로 문화 개념에 제한적인 요소를 구체적으로 구성할 수 없었고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한 개별국가들의 각 상황에 맞추어 정책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문화의 개념을 광의적으로 열어둔 것이다. 따라서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성소수자와 이슬람 문화가 경제대국의 문화에 압도되는 현상이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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