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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담긴 해악

기사승인 2019.12.31  07: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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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담긴 해악

피터 김(세계문화연구소장)

 

‘여성폭력방지기본법’(약칭 ‘여성폭력방지법’)은 2018년 12월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9년 12월 25일에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시행령’이 발표되었다. 도대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무엇일까?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 법이 무엇이며, 어떤 해악이 숨겨져 있는지 잘 모른다. 이 법의 의미와 해악을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는 ‘페미니즘 이데올로기’ 즉, 급진 페미니즘과 젠더이론이 교회에 깊이 침투해 있고, 그에 따른 입법화가 강력하게 시도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급진 페미니즘의 배경

이 법을 진단하기에 앞서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급진 페미니즘은 1950-60년대 냉전시대에 등장한 이론으로, 이 사상은 선거권, 정치참여 권리 등을 주장했던 앞선 세대의 건강한 페미니즘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급진 페미니즘은 “여성은 수천 년 동안 ‘피해’만 받아온 피해자다”라는 ‘피해자 프레임’으로 무장한 이론이다. 이 운동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제인 맨스브리지(Jane Mansbridge)가 “남성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헌신”이라 정의한데서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여성인권을 왜곡한 페미니즘은 21세기에 젠더학으로 발전했고, 이것이 90년대에는 ‘퀴어 이론’과 손을 잡으면서 ‘급진 페미니즘 신학’과 ‘퀴어신학’을 형성해 이제는 서구의 신학교의 주변 신학이 아닌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 관심 대상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변하는 여성관련 법안들과 문제점

지난 20-30년간 여성 관련 법안들은 인권신장이라는 명분으로 ‘여성’이라는 용어만 들어가면 객관적 평가 없이 웬만하면 입법화 할 수 있었다. 여야 가릴 것이 없이 서로 협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폭력방지법도 그런 법들 중 하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지하는 법이 왜 나쁘냐?”라 반문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은 급진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거짓의 달인으로, 이 법에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계략이 반영되어 있다.

이 법의 명칭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다. 여기서 ‘기본법’이라는 용어에 주목해야 한다. 기본법이란 어떤 분야의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을 정하고 관련정책의 체계화를 도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법은 폭력분야에서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을 정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이 법의 문제점은 과연 무엇일까?

(1) 이 법에는 ‘여성들은 근본적으로 억압받고 있다’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프레임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이 법에는 ‘여성’이라는 특정성별만을 명시하고 있어 남녀갈등을 조장한다. 사실 폭력에 대한 처벌은 남녀 상관없이 벌을 받는 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또 여성만을 위한 법을 만들어 ‘여성만 폭력의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을 확산시킴으로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문제가 있다.

(2) 이 법은 성평등과 급진 페미니즘을 교육하게 하는 법이다. 이 법의 제19조 제2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여성폭력 예방교육을 양성평등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이 외면적으로는 양성평등을 언급하지만, 사실은 성평등과 급진 페미니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국회 법사위에서 이런 명칭 때문에 논쟁이 있었지만 반대 의원들도 결국은 저들에게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3) 이 법은 급진 페미니즘 여성단체가 합법적으로 국가의 세금을 지원받는 법이다. 이 법의 제21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폭력방지 등을 위하여 활동하는 비영리법인 및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하여 그 활동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결국 이 법은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밥벌이 즉, 숙주가 된다.

 

급진 페미니즘과 교회와의 관계

혹자는 “이 법이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할 것은 이 법뿐만 아니라 급진 페미니즘과 젠더이론이 혼합된 여러 법들이 이미 존재하고 통과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런 법들로 인해 교회가 지금 곤혹을 치르고 있는데 앞으로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 예상된다. 그 흐름 중 하나가 ‘미투’(me too) 프레임이다. 교회가 회개하고 갱신해야 할 영적, 윤리적 문제도 있지만,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교회의 근간을 흔들려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의도는 더 큰 문제다.

페미니스트들의 목적은 교회의 붕괴에 있지만,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페미니즘은 큰돈이 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저들의 밥줄이다.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성희롱, 성폭행예방교육, 무늬만의 양성평등교육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대다수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다. 그래서 이 법안은 저들의 밥줄인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 및 대학교육 현장은 ‘성차별’이라는 피해자 논리와 페미니즘 교육에 의해 만신창이 되고 있다.

 

교회가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를 수용할 수 있나?

교회 속에서 ‘퀴어신학’, ‘페미니즘 신학’, ‘젠더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이들은 대부분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다. 어떻게 해야 치유될 수 있을까? 그것은 복음뿐이다. 그러려면 사악한 이데올로기를 대적해야 한다. 복음과 페미니즘은 결코 혼합될 수 없다. 이유는 그 뿌리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급진 페미니즘은 사탄에게서 기원한 독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거대한 글로벌 영적 쓰나미에 교회가 너무 무지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혹 위폐를 가리려면 진폐만을 제대로 알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나 그것은 하나만 아는 처사다. 그리스도인은 복음과 함께 세상도 알아야 한다. 둘 다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유는 사악한 영은 세상을 도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견해로 아직은 기회가 있다. 우리가 신앙의 어느 지점에서 멀어졌나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하며 더불어 하나님의 진리로 무장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공중권세 잡은 자와의 영적 전투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가운데 바로 서서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야 한다.

 

※본지에 기고되는 논문이나 나의주장, 칼럼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이 코닷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이 소극적(부정적)이든 적극적(긍정적)이든 독자에게 주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될 때 게재합니다.

 

피터 김(세계문화연구소장) webmaster@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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