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돼야 한다. 구별의 근거는 원리의 구별이다. 행동의 구별이 아니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원리에서 분명한 구별 됨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 사랑에 입각한 이웃 사랑이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사람들에게 일관성 있는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원리가 없는 사람은 상황과 처지, 대상에 따라서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다. 자신에겐 관대한 잣대를, 남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요즘 회자되는 '내로남불'은 이런 세태를 풍자한 유행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하나님 사랑의 동기 없이 남을 정죄하며 스스로 구별된 존재인 것처럼 위장하는 태도다. 그러나 결코 구별이 아니다. 위선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들보로 보인다. 반대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티로 보인다. 이런 태도를 율법주의라 한다. 남의 죄와 오류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함으로 현미경적으로 정죄를 가하는 태도 말이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자신 속에 있는 죽은 시체를 회칠(율법)로 감춘다고 지적하셨다(마 23:27).

총신대 총학이 이상원 교수를 향해 날 선 비판을 한 대자보는 과연 이런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성희롱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성적 지향성을 미화시키고, 더 나아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장애가 되는 스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회칠은 아닌가?

총신대 총학은 정말로 이상원 교수의 표현이 혐오스러운 것인가? 사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닌가? 성경이 의도하는 선하신 창조 섭리를 가르치는 것이 혐오스런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총신의 학생들은 지금 배움이 필요한 신분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 것을 들어야 할 때이다. 스승의 눈에 있는 티도 아닌 것을 내가 듣고 싶지 않다고 세상의 이데올로기로 뽑아내려 할 것이 아니다. 제자의 태도는 겸손해야 한다. 이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요, 성경 앞에서의 겸손이다. 겸손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게 한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자기 속에 있는 들보가 보이면 남의 눈 속에 있는 것이 티인지 아니면 눈동자인지 분별 된다.

보수 신학의 안목을 가진 선배 목회자들이 보기에, 학생들의 대자보 사건은 이상원 교수의 눈 속에 있는 티와 눈동자를 분별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티가 아닌 눈동자를 파내려 하는 의도로 비춰진다. 자신들이 원하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지지해 주지 않기 때문에 티를 뽑는다는 명분으로 눈동자를 파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니길 바란다.

총신 총학생회와 학우들은 이 문제를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아닌 성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남의 눈에 티를 뽑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내 눈 속의 들보를 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의 개혁 순서는 이렇게 진행됐다. 자신의 죄인 됨을 철저히 자각하고 통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진리를 외쳤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구별이 시작된다. 총신대 총학도 여기서 시작하길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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