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이상원 교수의 권위를 해체하려는 모함에 대한 견해

근래 총신대학교에서 일어난 대자보 사태, 권위 해체작업이 신학교 안에 들어와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킨 교수들에 대해서는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

한 사람의 그간의 학문적 업적이 사장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윤리가 그동안 쌓아온 연구 업적을 동시에 무너뜨려

 

‘금지한 모든 것을 금지하라’

김동진 목사(일산하나교회 담임, 목동TV 대표)

유럽을 휩쓴 68혁명의 모토처럼 권위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대한민국에 존재한 지 오래다. 그래서 지금은 바야흐로 해체주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의 영역에서 소위 약자에 대한 권익 신장이라는 이름으로 주류 지도층에 대한 맹목적 불신과 인격적 모욕을 가해 권위를 파괴하려는 모습을 드러냄으로 오히려 역차별적인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존의 균형을 파괴하려는 위기 속에서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고 이제는 교회마저도 점차 권위를 잃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금의 현실을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직 전세(戰勢)는 기울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대처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근래 총신대학교에서 일어난 대자보 사태는 이러한 권위 해체작업이 신학교 안에 들어와 있음을 방증하는 명백한 사건으로 보인다. 사건의 발단은 대학부 총학생회를 필두로 일련의 학생 단체들이 “총신대학교 성희롱 사건 및 전수조사에 대한 학생자치회의 성명”이라는 대자보를 11월 18일 교내에 붙이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중 특별히 “2019년 교수 성차별, 성희롱 발언 전문(全文)”에서 기독교윤리 이상원 교수를 상대로 강의의 일부를 거론하며 그의 발언이 성희롱과 성차별적 발언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게시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이상원 교수는 그에 따른 정확한 입장표명을 하며 대자보를 게시한 자들의 주장이 억측이며 일부만을 발취하여 교수를 음해하고 있음을 피력하였다.

이러한 총신대 대자보 사태를 보면서 총신대학교 2017년 학내사태 이후에 일어나는 학교의 이슈들이 탈권위적인 성격이 짙게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이번 사태에 거론된 모든 교수들의 권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킨 자들에 대해서는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생명 윤리와 반동성애에 대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이상원 교수가 거론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교수들과 함께 매도하여 권위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자보에 적힌 이상원 교수를 향한 그들의 태도는 상당히 의도적이며 매우 계획적 공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이상원 교수의 입장표명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문제시하는 대목이 차별금지법의 독소조항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특정할 수는 없지만) 주도적인 구성원들이 가진 윤리관이 개혁주의적인 윤리관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음을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그들의 편향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상원 교수의 강의와 활발한 활동이 얼마나 불쾌하게 여겨졌을지 짐작할 수 있겠다. 결국, 그들이 가진 불쾌감은 성희롱적 발언 때문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윤리관과 관련된 불쾌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신들의 감정 해소를 위해 학문적 업적 면에서 기독교 윤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자이며 교계의 윤리적 쟁점에 있어서 언제나 거론되는 권위자의 권위에 손상을 주려는 일련의 행동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 오히려 이러한 사태가 한낱 신학생들의 정의로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이며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도록 하는 주도적 원인 제공에 대해서 분명히 짚고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젊은 신학생들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정의라고 말하는 그들의 의협심은 과연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이 만약 성경적 사고에서 왔다면 기독교적 색채가 드러나야 하겠는데 오히려 비기독교 혹은 반기독교적 색채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그들이 배우는 신학인 개혁주의를 눈앞에 두고도 제대로 그 학문에 들어서지 못한 자화상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개혁주의를 배웠다면 감히 사회적 쟁의(爭議)와 같은 행위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려는 시도가 그것의 성패를 떠나 얼마나 성경적이지 못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신학적 기반 속에서 말씀의 요람이었던 신학교에 채플로 초대된 설교자들은 신학생들 앞에서 한마디를 조심해야 했고 신학생들의 진리를 향한 날 선 정의로움은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토대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이제 정의는 부르짖으나 성경적 기준은 상실한 이 땅의 신학생들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매우 우려스러울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총신 학우들의 각성을 주문해본다. 아마도 대다수 이번 사태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무분별한 행동이 어떠한 파급을 주는지도 알지 못하는 수준으로 여론의 흐름을 따라 논리적 타당성에만 부합하면 성경적 사유를 배제한 채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따라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기준을 간과한 판단의 위험성을 서둘러 깨닫고 행동하는 자세가 현재 그들에게 절실하다고 본다.

더불어 생명 윤리와 반동성애에 대해 활발히 활동하는 이상원 교수의 행보는 현재 이 땅의 기독교 윤리 위기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으로 비춰지기 충분하다. 필자가 신대원을 다니던 10년 전에도 성산 생명윤리연구소 소장으로서 기독교 윤리의 실현을 위해 사역하는 이상원 교수의 끊임없는 노력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었음을 새삼 기억한다. 이러한 수고를 두고서 왜곡된 모함으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한 태도라 볼 수 없으며, 무지에서 오는 어리석음이라 말하고 싶다.

또한, 예상컨대 앞으로도 해체주의자로 지칭할 만한 자들의 갖은 술수가 저명한 한 교수의 권위를 해체하려 할 것인데 이는 한 사람의 그간의 학문적 업적이 사장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윤리가 그동안 쌓아온 연구 업적을 동시에 무너뜨리려는 심상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계와 개교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 어느 때보다 깨어있어야 하며 성경적 가치관을 수호하려는 전방위적 태세를 갖추고 일선의 순교적 각오로 달려가는 사역자들을 돕고, 온 성도는 복음의 기치로 모여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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