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감정적 좌익일 뿐...

-현실정치는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기준은 종교나 철학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요즘 한국 사회는 상당수 사람들의 대화거리로 정치 담론이 회자된다. 정치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면 무엇보다 관심을 갖는 것은 대화의 상대가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보수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진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중도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자신을 보수라거나 진보, 혹은 중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면 ‘보수’, 민주당이나 정의당을 지지하면 ‘진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 둘 가운데 좀 더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중도’라 한다.

하루는 전도를 하다 스스로 자신을 정치적 진보라고 자칭하는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은 대학에서 사학(史學)을 전공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청년과 대화를 나누던 중, 우리는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토론으로 넘어갔다. 우리의 정치 토론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느냐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철학적 개념이 무엇인가로 진행되었다. 대화하는 가운데 그 청년은 자신이 철학적으로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정의를 추구하고 공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진보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도리어 보수 정치관에 더 근접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 대화를 마치고 해어지면서 그 청년은 “제 동생도 목사님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청년은 “왜냐하면요, 제 동생은 저보다 더 빨갛기 때문이거든요”라고 웃으며 말하고 해어졌다.

실제로 오늘날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감정적 좌익이다. 감정적으로는 좌익의 선동에 동조하지만, 그 선동을 따르는 기본적 가치관은 놀랍게도 보수적인 경향이 많다.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이념화되지 않은 감정적 좌익이라는 말이다. 이들에게 전통적인 보수정치의 원리를 가르치면 충격을 받곤 한다. 또 자신이 보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단지 특정 정당이 보수라고 생각하고, 특정 정당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프레임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만일 이런 청년들에게 보수의 정신이 무엇인지 가르칠 겨를도 없이 빨갱이로 낙인을 찍으면 안 된다. 낙인을 찍음과 동시에 감정적 좌익에서 진성 좌익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놀랍게도 이것이 바로 좌익들이 원하는 전략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개념이 불명확한 용어의 남발에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보수와 진보를 운운한다. 그러나 정작 보수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 개념을 제대로 알고 말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기껏해야 보수는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진보는 사회복지와 평등과 인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 정도로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정도로 개념을 규정하고 따르는 것이 정당할까 생각해 볼 노릇이다.

이제 우리는 보수 정치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보수 정치관은 개혁파 교리를 기초로 살펴볼 것이다. 개혁파 입장에서 보수 정치관을 살펴보기 전에, 서론적으로 무엇이 보수고 무엇이 진보인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보자.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현실정치를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국 정치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현실정치는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기준은 종교나 철학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종교와 철학에 의하여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규정된 상태에서 현실정치와 정당을 보수와 진보로 진단을 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가에 의하여 규정되면 정치는 천박성을 면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한 정치가에 의해 좌우되는 전체주의로 가거나 대중선동의 수단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정치가도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돼서도 안 된다. 그들은 단지 보수인가, 진보인가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용납되면 야당과 여당은 특정한 정치가를 수단으로 국민들의 이기심을 자극하여 정치적 야욕을 채우는 정쟁(政爭)밖엔 기대할 수 없다. 정치가들은 정치 철학이나 기준도 없이 국민들의 탐욕만 자극하여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작금의 한국 정치가 이런 우려를 그대로 보여준다. 때문에 한국 정치에서 보수나 진보는 없다. 보수라 하는 정당엔 보수가 없고, 진보라고 하는 정당엔 진보가 없다. 보수라 하는 당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수구’(守舊)만 있다. 진보라고 하는 당은 ‘NL’(주사파/종북주의)와 ‘PD’(계급투쟁파)만 있다. 수구는 보수의 가면을 쓰고 정치를 하고, NL과 PD는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정치를 한다.

이런 정치적 가면에 속지 않으려면 교회와 국민들은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정당에 의해 보수와 진보가 규정되던 방식이 무너져야 한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통해서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면 안 된다. 종교와 철학이 보수와 진보를 규정하게 돼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그 규정을 통해서 현실정치의 정당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해석하는 정치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치가들이나 언론이 정치권을 보수나 진보라고 떠드는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성경과 교리에 의해 정치관을 명확하게 규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현실정치의 당파 싸움의 희생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 도리어 세속 정치가 교회의 성경적 판단에 눈치를 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성경적 정치관이 명확해지면, 선거할 때 정치가를 선출하는 투표에서 바르게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또 특정한 정당의 결정에 대해 성경적으로 단합된 입장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나의 성경과 교리를 믿는다는 교회가 정치 때문에 분열되거나 갈등하는 일도 최소화될 것이다.

(앞으로 여러 번에 걸쳐서 우리는 성경적 정치관이 무엇인지 개혁파 교리에 근거하여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가 정치를 좀 더 성경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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