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흐름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두 사회에 대한 바른 이해

노승주 전도사(리폼드미니스트리 대표)

그리스도인은 구별되고도 구별되지 않은 두 사회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그리스도인은 성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성자 하나님의 성취하심, 성령 하나님의 적용하심을 통하여 새로운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통하여 새로운 사회에 속한 자들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인하여 주어졌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고 죄악도 침투할 수 없으며 영원히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 안에서 우리가 참된 자유함을 누리는 온전한 사회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회를 통하여 우리가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이생에서의 사회를 ‘소명’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무관심해서도 안 되며 무책임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개념으로,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소명’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심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 시간과 공간 가운데 하나님의 뜻하신 바에 합당하게 살아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신 이생에서의 사회는 구원받은 자들이 누리게 되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사회와는 달리 온전함은 찾아볼 수 없고 죄악이 가득하며 하나님을 언제든지 적대적으로 바라보기를 즐기는 사회라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원론적인 결론이 아니며 성경이 말하고 있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낳은 결과이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선할 것이라는, 아니 더 나아가 악하지 않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땐 이 사회가 선을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선을 흉내 내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섭리 가운데 은혜를 베푸사 통치하시기 때문이지 사회 자체가 선한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는 당연한 듯이 언제든 하나님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부인하기 위해 힘쓰는 곳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겉으로는 공적인 이익과 정의, 공정성, 선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씀 앞에 비추어볼 때, 결국 죄인들이 모여 자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빛을 보지 않기 원하는 사회임을 잊지 않고 전제 삼아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바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죄인 된 인간들의 성향을 간과한 채 이 사회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 바른 ‘전제’를 상실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없게 된 것이야말로 타락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비참함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흐름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 가운데 거하며 살아가고, 세상이 무조건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와 가치 체계, 이념은 언제나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죄로 향하는 방향을 추구하기 쉽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깨어있어 분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2. 인간의 전적 타락, 대중매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바른 교리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을 가지지 않는다면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 바른 분별의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른 세계관을 상실하면 세상 가운데 흘러넘치는 방대한 정보와 지식의 물결에 ‘무조건적인 수용’, 혹은 ‘무분별한 차단’이라는 폐단을 낳을 수 있다.

 

“유명 방송인, 유명 언론사, 유명 출판사”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유명’이라는 단어가 뒤따르는 단어들을 수식할 때 그것이 마치 그 단체 혹은 인물의 신뢰성을 보여주는 척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굉장히 위험하고도 무분별한 가치 수용의 자세이다. 다수의 대중이 인정하고 지지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판단과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 삼지 않은 자세이다. 고로 필자는 그리스도인에겐 언제나 바른 전제가 삶을 지배할 때, 바른 신앙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유명 대중매체 또한 우린 무분별한 자세로,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 기록된 계시의 말씀,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바른 정보를 습득하는 성숙한 신앙의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대중매체, 더 넓게는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단면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것들은 굉장히 불안하고 불편한 요소로 우리 사회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물론 기독교와 대중매체, 기독교와 문화는 언제까지나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이런 점에 있어 네덜란드의 저명한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가 그리스도인들을 “문화를 보호하는 수호자”라고 부른 것과 같이 우리는 무조건적인 수용은 아니지만 바른 분별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지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수용할 줄 아는, 또한 이것을 소명으로 바라볼 줄 아는 믿음을 허락하시기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1)

최근 유명 언론사들은 이전에도 그래왔지만 현 사회의 흐름과 같이 근래에 더욱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문제들을 기사화하며 시대의 흐름에 기독교가 동떨어져 여전히 옛것을 붙잡고 있는 고리타분한 종교인 것처럼 비추는 경향이 다분하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기독교의 진리를 자유롭게 전하는 것에 대해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 표현 또는 인권 침해 등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도록 돕는 보도를 많이 내세우고 있는 추세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유명 언론사인 ‘경향신문’에선 2019년 9월 27일부로 <성교육, 이젠 젠더교육이다>라는 시리즈로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자료 출처: “경향신문>사회>성교육, 이젠 젠더교육이다”2)

이에 대해 많은 부가적 설명을 하진 않겠지만, 교회와 국가 내로 들어온 ‘젠더 이데올로기’는 정치적, 사상적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침투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이러한 기사를 접할 때 건강한 부정과 무조건적인 수용을 피할 수 있는 것인데,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전제 삼는 바른 세계관 없이 유명 언론의 보도라는 점에 있어 무분별한 수용의 자세를 취하며 세속적 가르침에 대하여 수용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무관심하고 안일한 자세로 수용하는 것 또한 암묵적 동의이며 동의 된 지식 체계로 자녀 교육과 교회교육을 일삼을 때, 교회는 자연스레 교회의 교회 됨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 방송, 기독교 출판사, 기독교 언론"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독교 방송과 출판사, 언론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수용의 자세를 취할 수 있는가?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근 기독교 언론사라고 불리는 언론 또한 결코 신뢰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길 바란다.

유명 기독교 언론으로 알려진 ‘뉴스앤조이’에선 최근 지속적으로 동성애, 퀴어신학에 관련된 옹호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현 사회에 동성애와 동성혼, 퀴어신학의 문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일 수는 있지만, 과연 기독교 언론임을 내세우는 이들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어긋난 죄의 모습을 미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결코 기독교 언론이 취할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자료 출처: 뉴스앤조이3)

뉴스앤조이는 교단 총회들의 뉴스앤조이를 향한 ‘반기독교’라는 표현과 결의에 대하여 오히려 교단 총회들이 “하나님을 반만 따르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갑니다. 기독교의 모습은 갖추었지만, 그 내용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포용보다는 돈과 권력이 보입니다”라며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교계와 사회를 혼란에 빠지고 있게 하는 자신들에 대한 반성과 돌이킴에 대한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4) 마치 동성애와 퀴어신학의 문제를 교단별로 다르게 정립하는 신학적 문제로 해석하며 그것이 성경에 어긋나는 가르침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측의 주장에 따르면 동성애와 퀴어신학에 대하여 문제를 지적하고 죄를 죄라고 선포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랑과 포용에 있어 어긋나는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나 과연 죄를 단순하게 포용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많은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의 가르침은 죄에 대한 단순한 포용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용서하고 포용만 하신다? 성경은 이에 부정한다.

하나님은 분명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또한 함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와 함께하실 수 없는 본질과 속성을 지니신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실 때, 자녀들이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부합하지 않는 죄악 된 길로 향한다면 과연 그들의 필요와 요구를 다 들으시고 채우시며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훈계하지 않으실까? 필자는 이에 대해 강력히 부정한다.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사랑하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포용하는 분이 아니시다. 죄에 대하여서 분명하게 훈계하시며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성적 범죄를 용납하시며 죄가 아니라고 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런 점에서 개혁주의 조직신학 내의 구원의 서정(구원의 논리적 순서)은 구원에 있어 ‘칭의’ 교리 이후 ‘양자’ 교리가 뒤따른다고 가르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않으면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양자 교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속성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바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돌이키게 하는 사랑이라는 점을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한다.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는 사회와 문화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며 성도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교리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겐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바른 전제를 삼고 세상을 바라보는 참된 기독교 세계관이 요구되며 대중매체에 대한 맹신과 무조건적 수용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요구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정리하면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 바른 교리의 회복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세계관과 바른 신앙은 바른 신학, 즉 성경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바른 교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바른 교리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바른 교리를 상실한 교회의 역사를 중세 시대가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듯 한국교회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겐 다시금 바른 교리의 회복이 요구되고 있다. 바른 교리의 회복만이 바른 전제의 회복이며 바른 세계관의 회복이다.

둘째, 단순히 사회는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사고에 치우치지 않길 요구한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더 악을 사랑하고 악을 향해 치우치는 세상을 보며 마치 사회와 문화는 무조건적으로 악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이 또한 올바른 자세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사회와 문화는 언제까지나 바른 전제를 상실한 채 악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그 사회와 문화 또한 섭리 가운데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사회와 문화 가운데 부름 받은 성도들은 ‘소명’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진리의 수호자 역할을 감당하길 필자는 간곡히 부탁하며 요구하는 바이다.

 

▽미주

1) Herman Bavinck, Philosophy of Revelation, 박재은 편역, 『계시 철학』 (군포: 도서출판 다함), 471.

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s243

3) http://www.newsnjoy.or.kr

4)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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