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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이야기: 주일학교 운동 250년 짧고도 강렬한 역사

기사승인 2019.11.06  07: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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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일학교(Sunday school)의 시작 : 영국의 산업혁명과 어린이 소외

신용목 전도사는 기독교교육(고신대학교)과 목회학(고려신학대학원 M.Div)을 공부했으며, 지금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교의학 Th.M) 과정 중에 있다. 대전동북장로교회에서 중고등부를 담당하고 있으며, 성경과 교회역사에 뿌리 내린 보편적 교회에 관심이 있다.

1700년대 영국에 산업혁명의 불길이 올랐다. 과학 기술의 변화를 예상치 못한 이들은 일감을 잃고, 도시로 내몰렸다. 산업 도시의 하층민은 온 가족이 매일 15시간 노동을 해야만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노동에 어린이도 예외가 없었다. 어린이도 어른과 똑같이 과한 노동에 시달렸으며, 교육이나 도덕적 훈련을 받을 기회는 없었다. 그러다가 쉬는 날인 주일이 되면,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도시 구석구석에서 이탈 행위를 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싸움은 어린이가 배운 유일한 쉼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부흥 운동과 주일학교(Sunday school) 운동이 꿈틀대었다.

어린이 소외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일학교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 1736-1811)였다. 의외로 레이크스는 목사도, 교사도 아니었다. 평신도 신문기자였다. 그는 신문편집장으로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어린이를 가르침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교회의 한 성도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했던 봉사가 주일학교 운동이었던 것이다.

1780년 레이크스는 잉글랜드 글로스터(Gloucester)의 매러디스(Meredith) 부인의 주방에서 노동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주일학교(Sunday school)를 열었다. 레이크스가 제시한 주일학교 첫 모델은 교회의 교육부서는 아니었다. 사회에서 착취당하는 어린이를 구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주일학교의 주목적은 어린이에게 읽기, 쓰기, 도덕과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영국 산업혁명 어린이

고된 노동에 지친 어린이들을 데리고 교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매러디스 부인은 2년 만에 포기했고, 주일학교는 킹 부인의 부엌으로 옮겼다. 3년 만에 차츰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그리고 1783년 글로스터 주간지에 주일학교의 열매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짧은 기사를 올린다. 이 기사가 전국에 퍼지면서, 주일학교 운동은 크게 주목받는다. 특히 영국의 의식 있는 귀족들이 이 일에 큰 감명을 받았고, 후원으로 동참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관심 속에 주일학교 운동은 사회 구제 운동, 사회 보장 제도의 일환으로 전국으로 퍼졌다.

1780년 90명으로 시작한 주일학교는 7년 후 1787년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약 25만명의 학생이 등록했다. 그리고 50년 후 1835년에는 약 15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주일학교에 등록하였다. 이 중에 절반이 일반학교교육을 받지 못하는 소외 어린이였다. 어린이 소외 문제에 정부와 의회가 미처 반응하지 못했지만, 성도의 봉사인 주일학교 운동이 적절히 응답한 것이었다. 그리고 웨슬리는 영국 부흥운동을 이끌면서, 주일학교 운동에 주목하였고, 감리파 복음 전도와 긴밀하게 연결시켰다. 따라서 감리파와 주일학교 운동은 긴밀하게 통합되었고, 주일학교 운동은 감리파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2. 주일학교의 전개 : 미국의 복음 개척 운동

미국의 주일학교 운동은 영국의 주일학교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영국 주일학교는 노동에 시달리며 거리를 방황하던 어린이들이 자리를 채웠다. 반면 미국 주일 학교는 성경을 배우고자 하는 어린이들이 참석하였다. 1800년대 초반 미국에서 공립학교가 세워지면서, 읽기 쓰기 교육에 대한 필요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일 학교는 성경 교육 중심으로 변했다. 미국에 들어온 주일학교는 복음 전도를 위한 전초 기지의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미국식 주일학교 운동에 크게 헌신한 사람은 스티븐 팍슨(Stephen Paxson, 1808—1881)이었다. 스티븐 팍슨은 ‘미국 주일학교 연합회’가 파송한 선교사였으며, 40년 동안 사역하였다. 그는 미국 전역에 1,300개가 넘는 주일학교를 세웠고, 약 8,3000명의 참석자를 모집했으며, “어린이들의 설교자”, “어린들의 사도”라고 불렸다.

팍슨는 30대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섭리 가운데 그의 딸이 주일학교에 다녔고, 딸이 아버지인 팍슨을 주일학교에 데려왔다. 당시 주일학교에 어른은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팍슨은 딸을 위해서 주일학교에 참석했다. 팍슨이 처음 방문하던 날, 마침 주일학교 남학생반 교사가 결석하여, 팍슨이 남반을 돌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팍슨은 주일학교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한지 4년 만에, 팍슨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한다. 그리고 주일학교에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모자제조업을 그만두고 주일학교 연합회 선교사가 된다.

팍슨은 40년 동안 미국 전역에 주일학교를 세우기 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거리를 여행했다. 그가 사용했던 유일한 교통수단은 말이었고, 재미있게도 그의 말 이름은 ‘로버트 레이크스(영국 주일학교의 창시자)’였다고 한다. 이 말은 주인의 습관을 잘 알았고, 어린이만 보면 멈추었다고 한다.

스티븐 팍슨의 어린이 전도

팍슨은 로버트 레이크스(말)를 타고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난 시골, 깊은 골짜기 마을까지 방문했다. 한 마을에 도착하면 모든 사람들과 접촉하였고, 주일학교 세우기를 독려했다. 그리고 마을에 주일학교가 모일 수 있는 정당한 장소를 확보하고, 선생님을 한두 사람 모집한 후, 주일학교 연합회의 후원금을 받아 100권 이상 책을 비치한 도서관을 기증하였다. 그렇게 주일학교가 세워지면, 각 집을 다니면서 부모들을 설득하여 어린이들을 주일학교에 등록하게 하였다. 그의 설득은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대부분 부모가 자녀들을 주일학교에 보냈다. 그리고서 몇 년 후면, 부모도 자연스럽게 교회에 출석하였다. 이렇게 한 마을에 주일학교가 자리 잡게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또 주일학교를 세웠다. 이러한 헌신으로 미국 전역에 주일학교가 세워졌다.

미국에서 주일학교 운동은 척박한 땅에 뿌려진 복음의 첫 씨앗 역할을 감당했다. 한 마을에 주일학교가 세워지면, 어린이들이 주일학교에 등록하였다. 주일학교의 성경 교육을 통해서 어린이들은 복음을 접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주일학교에 데리고 왔고, 결국 아이와 부모가 모두 교회로 연결되었다. 이렇게 주일학교는 잃어버린 영혼을 모으는 교회의 팔이자, 복음 전파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로버트 레이크스 기념 동상

 

3. 주일학교의 절정 :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부흥과 주일학교 감소

이러한 주일학교 운동은 한국교회에서 절정의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0년도 장로교 통계에서는 주일학교 수가 장년 수보다 더 많았고, 1970년대 이전까지 주일학교 학생수와 장년수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1970-80년대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 기초에는 주일학교가 있었다. 심지어 1986년 세계 단일 교회 최대 주일학교가 한국에 있었다. 백영희 목사가 시무했던 서부교회이다. 여름 성경학교에 1만 3천명 어린이가 모였고, 매주 8천 5백명 어린이들이 주일학교로 모였다. 백영희 목사는 “어린이들이 성경으로 중무장되어 있어 환난이 닥치면 제일 먼저 순교할 사람이 어린이들일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주일학교가 한국교회에서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요인들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다. 탁월한 목회자의 리더십, 평신도들의 헌신, 성령께서 주도하신 운동 등등이다. 이에 더하여 앞에 서술한 영국과 미국 주일학교 이야기를 비추어 보자면, 영국식 주일학교와 미국식 주일학교의 절묘한 만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에서 주일학교는 1960-70년대 급속한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 복지가 되었고,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교회의 팔로써 전도의 전초기지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절묘한 시대 상황이 주일학교가 한국에서 절정으로 꽃피울 수 있었던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분석할 수 있겠다.

 

4. 우리에게 주는 교훈 _ 주일학교(Sunday School)를 본래 자리로

한국교회에서 만개했던 주일학교 운동은 점점 시들어졌다. 최근 각 교회 주일학교는 어린이가 없어 문을 닫고 있다. 10-20년 전 몇백 명 주일학교를 자랑하던 교회들도, 지금은 50-60명 선을 겨우 유지할 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교육원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고신 교회 주일학교 인원이 약 30%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일학교의 옛 영광을 어떻게 다시 살릴 수 있을까? 필자는 주일학교 역사 속에서 그 해결 방안을 찾고자 한다.

주일학교 역사 이야기를 요약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어린이 복지와 전도이다. 역사적으로 주일학교 운동은 성도의 교회 밖 사회 운동이었으며, 동시에 복음 확장을 위한 교회의 팔(도구)이었다. 즉, 주일학교(Sunday School)는 자신의 고유의 자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일학교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주일학교가 자신의 고유의 자리인 복지와 전도로 돌아가야 한다.

복지와 전도로 돌아간 주일학교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으나, 한 가지만 말한다면 교육대상자이다. 주일학교의 최우선 교육대상은 소외 어린이 그리고 불신어린이(혹은 유아세례 받지 않은 어린이)이다. 산업혁명시대와 같이, 오늘날은 온가정이 노동에 나서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이다. 심지어 어린이도 노동시장에 냉혹한 평가를 위해서 공부노동에 매달린다. 그리고 보편화된 맞벌이 가정, 다문화 가정, 탈북 어린이, 상처 입은 난민 가정, 점점 낮아지는 비행 연령 등등 소외 어린이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이들에게 적절한 응답으로써 주일학교(Sunday School)가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외 어린이에 대한 적절한 응답으로써 주일학교는 곧 복음전도와 연결되어야 한다. 주일학교는 먼저 소외 어린이를 돕고, 어린이를 통하여 온가정이 교회로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당장 숫자를 늘리는데 비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소수일지라도 정말 도움이 필요한 소외 가정과 복음이 필요한 불신 가정이 돌봄을 받는다면, 그것이 주일학교의 참 영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영국, 미국 주일학교 역사는 웨슬리 윌리스의 책을 그대로 참고/요약하였습니다.

Willis, W R(웨슬리 윌리스). 󰡔주일학교 200년사󰡕. 유화자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1.

 

한국교회 통계와 서부교회 주일학교 역사는 다음을 참고하였습니다.

이국희. “교회교육 전환에 담임목사 목회 철학 변화 가장 시급합니다:총회교육원, ‘다음 세대 성장대안 마련 연구보고서’통해 제안”. 고신뉴스 KNC. 2017년 10월 11일 : http://www.kosinnews.com/news/view.html?section=2&category=10&no=9395

고현종. “다음세대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 희망 없다”. 당당뉴스. 2016년 12월 08일 :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668

박재한. “부산서부교회 세계최대규모의 어린이 천국잔치”. 크리스챤라이프. 통원 219호(8월) 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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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genius96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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