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7:9-14 주해와 설교구성

◇ 단위본문 결정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17장 1-8절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서 이스마엘의 방식이 아닌 길로 하나님이 번성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9-14절은 약속과 언약의 보증으로 할례를 규정하신다. 15절 이하는 사래가 사라가 되어 그녀의 태를 통해 낳은 자가 약속을 성취할 것을 말씀하시고, 23절은 할례를 실제로 행한다. 따라서 할례의 규정과 실천 사이에 구체적인 방식으로 사라의 태를 여실 것을 말씀하시는 구조이다. 9-27절까지 전체가 한 단락이 되어도 좋고, 세분할 경우 세 단락으로(9-14, 15-22, 23-27) 나누어서 다루어도 좋겠다. 9-14절을 한 단락으로 보고 할례의 규정을 중심으로 살핀다.

 

◇ 번역과 본문비평

MT(마소라 사본 번역)

9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네 뒤에 오는 너의 후손은 대대로 내 언약을 지켜라.

(미완료형이지만 강한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다)

10절 이것은 나와 너 그리고 너 뒤의 너희 후손 사이에서 너희가 지켜야 할 나의 언약이다. 너희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아라.

(부정사 절대형으로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다)

11절 너희는 너희 양피의 살을 베어라. 그러면 그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증거가 될 것이다.

(베어라 명령번역도 원래 미완료형을 강한 명령으로 이해한 번역이다)

12절 태어나서 팔일에 너희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아라. 너희 대대로 집에서 난 자나 너희 자손이 아니고 이방인 가운데 은으로 산 자 모두 (할례를 받아라). (역시 미완료형을 강한 명령형으로 번역한다)

13절 너의 집의 아이들과 네가 돈으로 산 자들은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내 언약이 너희들의 살에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14절 그리고 자신의 양피의 살을 베지 않은 할례받지 않은 남자는 그 생명이 그 백성들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 그가 내 언약을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11절에 하야동사가 삼인칭 남성단수가(היה)아니라 여성단수형태로(היתה) 된 히브리사본과 사마리아 오경이 있다. 남성일 경우 앞에 살(כשר)을 받고, 여성일 경우 양피를( ערלתם) 받는다. 어느 것을 받든 의미에 변화가 없다.

14절의 경우 "제8일에"라는 표현이 lxx와 사마리아 오경에 첨가 되었다. 이미 12절에 제8일이란 표현이 나왔기에 여기에 반복되는 것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LXX(칠십인역 번역)

9절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언약을 지킬 것이다. 너와 너 뒤의 너의 후손 대대로.

10절 그리고 이것은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너희 뒤에 너의 후손 사이에 그들 대대로 지켜야 할 언약이다. 너희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을 것이다.

11절 그리고 너희 양피의 살을 베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증거가 될 것이다.

12절 그리고 너희 세대에 있어 8일이 된 모든 남자 아이는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의 자녀가 아닌 이방인의 모든 자녀들로부터 돈으로 산자든지 할례를 받을 것이다.

13절 너의 집에서 난 자든지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반드시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언약이 너희의 살에 영원한 언약으로 있을 것이다.

14절 제 팔일에 그의 양피의 살을 베지 않은 할례받지 않은 모든 남자는 그의 생명이 자신의 세대로부터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언약을 그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사전에는 거절보다는 해체하다(disband)의 의미가 강하다, διεσκέδασεν, 거절하다(reject)로 번역한 것은 S.Brayford, Genesis(Septuagint Commentary) 2007, p.77 번역참고했음. 개정개역의 배반하였다는 번역이 어쩌면 더 정확한지 모르겠다).

 

ΜT와 Lxx의 차이점

1. MT 미완료형을 강한 명령형으로 번역했지만, Lxx의 경우는 미래 수동형으로 그대로 번역을 했다.

2. 앞서 MT의 본문 비평에서도 언급했듯이 Lxx은 14절에 제 8일에 양피를 베지 않은 할례하지 않은 남자로 번역을 했다.

3. 전반적인 내용의 차이가 거의 없다.

 

◇ 본문에 대한 질문들

1. 할례는 언약의 표징이라고 했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내용과 할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2. 왜 할례는 아브라함의 자손뿐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들도 팔일만에 할례를 받도록 하는가? 할례가 아브라함의 혈통과 이방에서 들어온 자들과의 구별을 폐기하는 근거가 되는가?

3. 할례를 받지 않는 자가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 할례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언약을 배반 혹은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약이 무엇인가?

 

◇ 본문의 문맥

아브람과 사래는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임의대로 해석하여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 13년을 침묵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전능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보이셨다(창17:1). 그리고 이런 사실을 확인하는 언약을 맺으신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시키고 여러 민족의 조상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신다. 이제 이런 약속을 언약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할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 본문 주해

9절 내 언약이 무엇인가? 17:2, 4, 7절에도 반복되어 나오는 표현이다. 언약은 약속과 다르다. 언약은 약속을 보장하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맺음이다. 17:4-8절을 보자.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어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4). 6절은 이것을 번성이라는 약속이다. 8절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는 약속이다. 6,8절 사이에 7절에 언약이 있다. 4a는 4b와 5-6절 약속과 연결된 언약이다. 언약은 약속을 보장하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 보장은 약속을 주신 분과의 특별한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언약은 약속을 보장하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내 언약을 너와 네 후손이 지키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힘을 쓰라는 말이다.

지키라는 말은 사람이 에덴을 경작하고 지키라는(창2:15) 말씀과 연결된다. 경작하여 추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먹지 않아야 할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이 지키는 행위였다. 번성이라는 약속의 성취 과정속에 지켜야 할 것이 있음을 언약이 말해준다.

10절 할례를 행하는 것이 바로 내 언약이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의 표피를 제거하는 것이다. 번성이란 약속과 함께 지켜야 할 과제가 할례이다. 할례가 없어도 생식기가 있으면 남녀의 관계에 의해서 번성한다. 세상의 많은 나라들과 민족들이 그렇게 번성해서 세상나라를 이루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나라는 이러한 세상적인 번성만이 약속의 내용이 아니다. 이스마엘을 거절하시면서(17:1의 99세), 전능한 하나님(엘 샤따이)으로 등장하신 것은 자연적인 번성만으로는 아브라함의 나라가 서는 것이 아니고, 전능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세워짐을 말한다.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전능한 하나님(번성하게 하시는 엘샤따이)을 통해서 번성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번성이란 약속이 엘샤따이와의 관계로 보장되는 것임을 할례로 확인한다.

11절 할례의 구체적인 방식은 생식기의 표피를 베는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 언약 관계의 증거를 삼는다. 할례가 언약이라면, 표피를 베는 것이 언약의 증거이다. 생식기에 흔적을 남김으로 일반적인 남녀 관계에서 번성하는 것이 아니고 전능한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번성을 할례가 말한다.

12절 할례를 행하는 일은 아브라함의 집안 사람뿐 아니라 이방인들중에서 아브라함의 집에 들어온 자도 태어나서 팔일이 되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럼으로 아브라함의 집에 들어온 자 모두는 번성이란 약속의 성취를 담지하게 된다. 할례를 받는 행위를 통해 전능한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서 번성의 방편으로 아브라함의 집에 편입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혈통만을 주장할 근거가 무너진다. 이방인이라도 아브라함 집에서 할례를 받으면 전능한 하나님이 하시는 번성의 역사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13절 이방인도 할례를 받음으로 (번성한다는)약속을 보장하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인 언약에 참여할 수 있다. 할례가 언약의 증거 혹은 표징으로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몸에 담아놓게 된다.

14절 할례를 받지 않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번성의 약속을 성취하는 무리(백성)에게서 끊어진다. 언약을 배반 혹은 파괴했기 때문이다. 전능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면서 번성이란 약속의 성취에 참여한다면 세상 나라의 번성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 참고: 할례와 바울에 대한 이해

할례를 받지 않고도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는 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녔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갈6:17). 할례가 아브라함의 자녀와 이방인들을 묶어주는 보이는 표시임이 틀림없지만, 할례는 전능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믿음을 표시하며 약속을 성취하는 보장이다. 할례를 했다고 하는 것이 육체의 자랑으로 전락할 수 있고, 다른 민족과의 구별과 배타성으로 나아가고 말았다. 할례의 강조점은 인간적인 요소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번성하게 하시는 생명력이다. 본단락 넘어 창17:15절 이후에 사라의 태를 열어서 자녀를 주신다는 전능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아니라 할례를 행했다는 사실 자체의 특별함에 매몰된 이스라엘이 할례로 그들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것은 할례의 본래의 의도가 아니다. 할례는 처음부터 인종적인 관점을 극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바울 당시 할례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인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인종적인 장벽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으로서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나라를 이루는 참된 성취라고 보았다. 죄의 장벽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아브라함과 구약 시대에 할례에 담겼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의 장벽을 넘어 자기 백성을 모으시는 길을 여셨다. 그래서 온전한 죄로부터의 구원의 길인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된다.

 

◇ 주해로부터 설교적 구성

할례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장하는 도구일뿐이다.

서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는 번성은 이스마엘을 통해서 구현되지 않는다. 이스마엘은 인간적인 나라를 이룬 방식이기 때문이다. 전능한 하나님만이 이루시는 새로운 길을 통해서 번성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된다. 약속은 하나님의 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1. 언약의 증거로서 할례

이스마엘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적으로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였다(17:4-5). 언약은 약속의 성취를 보장하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맺음이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언약적 방식으로 번성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면서 여러 민족과 왕들이 나는 번성을 이루실 것이다. 이런 보장의 구체적인 방식이 할례이다. 할례는 생식기에 한 언약의 표시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식기를 통해서 번성하게 하신다. 그런데 단순한 번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번성하게 하시는 일이 전능한 하나님의 과제이다. 세상의 방식은 죄와 악을 답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할례를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부르시는 백성들을 주신다. 물론 결과물인 이삭이나 인간들이 타락한 인간들이지만, 이삭을 낳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가 반영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인간 스스로는 가능하지 않지만(생식 자체) 죽음을 일으키는 부활의 능력으로 번성하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할례는 인간적인 생식만으로 번성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가능함을 보인다.

 

2. 할례는 아브라함의 자손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는 수단

할례는 생식기에 흔적을 가지게 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혈통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혈통도 해야만 한다. 물론 아브라함이 돈을 주고 산 아브라함의 식구일때 적용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7:12-3절에 이방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할례를 해야만 한다고 한다. 이는 아브라함의 가족들과 동등한 조건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을 폐하는 것이 원래 할례의 기본 정신이다. 그런데 반대로 역사 속에서 적용된 것이다. 오히려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의 표시가 되었다. 타락한 정신의 정신이 된 것이다. 할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전능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만이 죽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표시이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가 같은 정신이다.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된다면 이것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산물이고, 약속의 성취라고 본다.

 

3. 할례는 자랑의 근거가 아니고 은혜의 근거이다.

할례가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을 폐기하는 원래의 목표는 역사를 흐르면서 전도되었다. 오히려 양자 사이를 구별하는 표시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찬송하는 고백의 표시가 아니라 인간적인 자랑의 근거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구체적인 표시들을 우상화 한 것과 같다. 기드온이 만든 에봇이 음란하게 위하는 물건이 되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된 것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바울은 할례나 율법을 민족적이거나 육체의 자랑의 근거로 전락된 현실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이 온전하게 드러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얻는 길을 힘있게 갈라디아와 로마서에서 전했다. 원래는 복음이었던 할례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을 극복하는 길이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담는 그릇이었지만 자랑의 근거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길인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된 것이다. 복음은 언제나 누구든지 받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아브라함 시대의 할례는 오늘 우리 시대에 온전한 성취의 복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잊지 말자.

◇ 설교 본문 선택을 위한 조언

할례가 이방인 선교와 관련해서 바울에게서 중요한 주제가 된다. 특히 갈라디아서가 이를 깊이 다루고 있다. 그래서 갈라디아의 본문을 함께 선택하면 좋을 것 같고, 바울의 논지를 함께 다루면 좋겠다(위의 참고를 보라). 갈5:2-12절도 좋고, 그 앞에 논증하는 과정중에서 선택하여도 좋겠다. 샬롬

 

# 이 본문은 2019년 10월 6일(월) 아침 7시에서 9시 30분까지 "본문에서 설교로"란 모임에서 다룬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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