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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이야기: 존 낙스는 여왕을 혐오했는가?

기사승인 2019.09.27  07: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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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낙스는 누구인가?

강희현 강도사는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한다. 역사 속에 개혁주의 교회 모델들을 연구하고, 원리적이며 세상에 호소력 있는 교회를 세우는 데에 관심이 많다. 현재 부천에 있는 참사랑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만일 독자가 장로교회의 교인이라면, 존 낙스(John Knox, 1514~1572년)는 꼭 기억할만한 인물이다. 낙스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로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맹렬하게 저항했던 신앙의 투사였다. 그는 과거 스코틀랜드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갤리선의 노예로 끌려갔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일절 신앙의 타협은 없었다. 당시 선원들은 낙스에게 마리아상에 입 맞출 것을 강요했다. 그러자, 낙스는 그 마리아상을 강물에 던지며, “이제 마리아가 알아서 목숨을 구할 거요, 몸무게도 가벼우니 수영하는 법이나 배우게 놔두시오.”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낙스의 이러한 직설적인 화법, 단호한 태도는 그의 설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어떤 청년은 낙스의 설교를 “저는 저의 양심이 너무 찔려서 펜을 잡고 필기할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또한, 엘리자베스의 전령 토마스 랜돌프는 “5백 개의 나팔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들 속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라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훗날 그는 5명의 목사, 36명의 장로와 함께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미국을 거쳐, 오늘날 한국까지 전해졌다.

존 낙스(John Knox, 1514~1572)

2. 여성들의 괴물 같은 통치에 대항하는 나팔의 첫 폭발1)

(The First Blast of the Trumpet Against the Monstrous Regiment of Women)

낙스의 화려한 업적과 일화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큰 논란을 일으킨 저작이 있다면, 그것은 1557년, 낙스가 프랑스 디에프(Dieppe)에서 작성한 “여성들의 괴물 같은 통치에 대항하는 나팔의 첫 폭발”(The First Blast of the Trumpet Against the Monstrous Regiment of Women)이다. 아마 이름만 들어도 오싹한데, 사실 내용상으로도 그렇다. 서두의 한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여성에게 국가, 도시, 어떤 왕국보다 위에 있는 제국을 지배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자연을 위배하는 것이다.”2) 따라서, 이 내용을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마치 여성은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정치인”이 되거나, 사장, 혹은 기업가(CEO)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3. 당시 영국의 여왕들

만일 누군가 무작정 이 저작을 읽는다면, 이렇게 오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의 정치적 정황을 고려한다면,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는 모두 여왕이 다스렸기 때문이다. “아니, 여성이 다스리는 게 뭐가 문제인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당시 여왕들은 모두 아래와 같이 반-종교개혁을 원했다.

4. 존 낙스와 엘리자베스 1세

이와 같은 여왕들의 반-종교개혁적인 통치 속에서 낙스는 “나팔의 첫 폭발”(The First Blast)을 기록했다. 본래 낙스는 이 저서를 메리의 통치 기간에 기록했고, 어디까지나 사악한 잉글랜드의 메리 여왕을 겨냥한 것이었다.3) 또한, 그는 이 저작을 1558년 익명으로 출판했다. 그러나, 자신이 기록했다는 사실을 흔쾌히 시인했으며, 만일 누군가 그 안에 있는 주장을 반증한다면, 그는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것이라고 말했다.4) 그런데, 참으로 기묘한 사실은 1558년에 출판한 시기와 맞물려, 잉글랜드 여왕 메리가 죽고 엘리자베스 1세가 새롭게 여왕으로 즉위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와 정반대로 종교개혁에 아주 호의적이었다. 또한, 낙스가 투철한 종교개혁자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위 저작이 메리 여왕을 겨냥했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같은 여왕으로서 그녀는 “나팔의 첫 폭발”로 낙스에게 큰 거부감을 느꼈다. 역사학자 조지 쿡(Goerge Cook)의 말처럼,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왕위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는 남자를 자신의 지배권으로 인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5) 어쩌면, 이것이 잉글랜드의 완전한 종교개혁을 가로막았던 엘리자베스의 중도 정책에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5. 우리에게 주는 교훈

그러므로,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훗날 낙스가 죽고 약 50년이 흐른 뒤, 그의 후배들은 오늘날까지 장로교회의 표준문서로 권위를 갖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만일 교회(총회, 노회)가 국가에 호소해야 한다면, “겸허하게 청원하는 형식”(31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선배 낙스의 다소 “거친 형식”에 대한 반성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형식으로 진리를 전달해야 할까? 우리는 이웃이나 가정, 혹은 다양한 영역에서 진리와 관련된 문제로 충돌하게 된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거친 형식보다, 부드럽고 온화한 형식으로 전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처사가 아닐까?

※미주

1) “Monstrous”는 라틴어로 “부자연스러운”(unnatural)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2) P. Hume Brown, John Knox: A Biography, (London: Adam and Charles Black, 1895), 1:231.

3) John J. Murray, John Knox, (Darlington, England; Carlisle, PA: Evangelical Press, 2011), 83.

4) ibid.

5) George Cook, History of the Reformation in Scotland, Second Edition., (Edinburgh; London: Archibald Constable and Co.; Peter Hill and Co.; Hurst, Robinson, and Co., 1819), 2:77–78.

 
 

강희현 zealot2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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