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다시 리셋(reset) 시키시는...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작금(昨今)의 대한민국 사회는 급진적인 변화의 시점에 와 있다. 가히 3차 대전이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 북한 체제의 붕괴 임박, 트럼프에 의한 세계 정치의 보수화 등은 대한민국을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부패와 불경건과 죄악으로 가득한 대한민국을 다시 리셋(reset)시키고 있다고 본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의 때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기대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세계 역사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기독교의 역사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우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종교개혁의 역사를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16세기 유럽에서 마틴 루터에 의하여 촉발(觸發)된 종교개혁(1517년)은 단순한 종교만의 개혁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이 충격적인 사건은 로마 가톨릭의 영향 하에 주도되었던 모든 문명의 전반적인 개혁이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처럼 당시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도 종교의 범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 예술, 교육의 전 영역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이 스며들어 있었다. 따라서 루터에 의해 시작된 개혁이 결코 종교의 영역만 개혁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종교의 개혁은 그 자체로 이제까지 가톨릭의 교리 관점으로 바라보던 모든 영역을 프로테스탄트의 교리적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만드는 개혁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종교를 떠나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때문에 루터로 시작된 개혁은 유럽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은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를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와 경제의 변화였다. 과거 개혁 이전 시대에는 유럽 전체의 정치 구조는 봉건시대였다. 그러나 개혁으로 말미암아 봉건시대는 점차 막을 내리고 자유민주주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또 경제에 대해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엔 귀족이나 지주들에 의해 노동력이 착취되던 전통적 자본주의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변모했다. 자유민주주의를 통해서는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근대 자본주의를 통해서는 만성적인 기아와 가난이 종족을 감추게 되었다. 이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에서는 루터와 칼빈을 알지 못하면 유럽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개혁을 단지 ‘종교개혁’이라 칭(稱)하는 것은 유럽 전체 개혁의 큰 흐름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표현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종교개혁’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종교적인 영역 이외의 영역에 목소리 내는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본다. 종교가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의 영역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공격한다. 종교는 종교의 영역에만 충실하면, 본연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과연 기독교는 종교의 영역에만 충실하고 삶의 영역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야 거룩한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성경은 종교적 금욕만 하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도외시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것일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또 만인 제사장이라는 교리는 또 어디로 내팽개친 것인가?

이런 타당성 없는 주장은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영역주권설’을 통해서 정면으로 반박되었다. 영역주권설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종교의 영역만 창조하신 창조주가 아니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이런 차원에서 기독교가 종교의 영역과 삶(세속)의 영역을 나눈다는 것은 플라톤주의 원론을 따르는 불교나 천주교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라 철학적 기독교, 이방종교적 기독교가 되는 지름길이다.

카이퍼의 등장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엄청난 혁명의 파도가 온 세상을 피비린내로 진동시키던 시절이었다. 프랑스에서 촉발된 혁명의 파도는 금세라도 네덜란드를 덮칠 기세였다. 이런 가운데 네덜란드가 끔찍한 혁명의 파도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의 힘이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기독교 정신으로 이끌었던 반혁명당에 의해 네덜란드는 평화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같은 시기에 영국도 프랑스 혁명의 파괴력이 마수를 뻗고 있었던 때였다. 이 당시에 영국의 정치는 극도로 끔찍한 부패의 상황이었다. 당시를 J. C. 라일(J. C. Ryle/1816-1900)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고위층에는 부정과 부패, 인사 청탁, 방만한 운영 등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어느 영역이라고 할 것 없이 총체적인 부패와 무능함이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도시 자치제 법이 여전히 유효했으며 비국도가 된다는 것은 반역자가 되는 것과 거의 진배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부패한 자치 시(市)들이 넘쳐나고 있었으며 뇌물은 모든 사회 계층에서 공공연한 것이 되어 버렸고, 수치스러움도 느끼지 못할 만큼 죄에 대해서는 둔감해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국도 사회 전체가 총체적인 위기에 놓여 있었다. 당시의 영국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만한 자정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조지 휫필드와 요한 웨슬리에 의한 영적 각성 운동으로 교회가 각성하자, 각성한 기독교인들이 회개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전반을 개혁했다.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의 개혁은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으로 나타났다. 이 개혁은 단순히 도덕적인 개혁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가정과 사회와 정치의 전반적인 운영 방식과 원리에 대한 성경적 통찰력을 회복하는 개혁이었다. 영국 전체를 새롭게 리셋(reset)하는 것이었다.

다음 칼럼에는 이 놀라운 개혁이 가능하도록 했던 기독교의 교리가 무엇이었는지, 또 그 교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회의 영역을 개혁하는 데 일조를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 교리가 우리의 일상과 아무런 관련 없는 따분한 지식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교리를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과 가정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녹여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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