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하나님의 약속만이 우리를 새롭게 출발하게 합니다

기사승인 2019.09.10  07:15:08

공유
default_news_ad2

- 창17:1-8절에 대한 주해와 설교적 적용

하나님의 약속만이 우리를 새롭게 출발하게 합니다.

창17:1-8절에 대한 주해와 설교적 적용

본문 창17:1-8

 

◇본문 번역

1.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엘-샤따이이다. 네가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완전하여라(흠이 없도록 해라)"

2. 그리고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둘 것이고, 내가 너를 아주 크게 번성하게 할 것이다.

3.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4. 자! 내가 내 언약을 너와 (세울 것인데), 그래서 너는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될 것이다.

5. 그리고 너의 이름이 다시는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너의 이름이 아브라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울 것이다.

6. 그리고 내가 너를 아주 크게 번성하게 할 것이고, 내가 너를 민족들을 허락할 것이고, 너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이다.

7. 그리고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내 언약을 세울 것이며, 너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세워서 너와 네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8. 그리고 내가 너와 너 뒤에 오는 네 자손이 거주할 땅을 줄 것인데, 가나안의 모든 땅이 영원히 소유할 것이고,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사본 상의 차이가 거의 없는 부분이다. 일부 사마리아 오경과의 차이가 있지만(1절 완전하여라 에서 하야 동사 형태, 그리고 5절에 너의 이름이란 단어가 없다) 전체적인 의미의 변화를 줄 만큼 중요하지 않다.

 

◇본문에 대한 질문들

1절과 관련해서

1) 17:1절에 왜 99세를 기록하였는가? 바로 앞 절인 16:27절에 이스마엘이 탄생한 때가 86세라고 기록되었다. 둘 사이의 상관성이 있는가?

아브람의 나이 기록은 창12:4절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75세라고 기록되고, 이후 백 세에 아이를 낳고(21:5), 사라가 127세를 살다 죽었고(23:1),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다고 기록된다(25:6). 나이의 기록에는 의미가 있다. 왜 99세를 적었는가?

 

2) 엘 샤따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을 출6:3절과 비교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엘 샤따이 나오는 창세기의 본문은 이삭이 야곱을 받단아람으로 보내면서(28:3), 야곱이 벧엘로 돌아왔을 때(창35:11), 그리고 야곱이 요셉에게로 베냐민을 보낼 때(43:14)이다. 참고로 야곱의 12 아들에 대한 예언에서 전능자가 나오는데, 이는 엘은 빠지고 샤따이만 나온다(49:25). 엘 샤따이와 여호와와의 의미상의 차이를 출6:3절이 밝히고 있다.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3) 내 앞에서 행하라는 말과 완전하게 행하라는 말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것이 99세에 나타나신 엘 샤따이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2절과 관련해서

왜 언약을 언급하는가? 15장에 언약이 언급되었다. 다시 언약을 갱신하는가? 언약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기능을 본문에서 하는가? 언약은 약속의 확인인가? 번성이란 약속과 언약을 연결시킨다. 왜? 앞의 1절의 의미들과 어떻게 연결될까?

 

4-6절과 관련해서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말은 무엇인가? 왜 여러 민족인가? 그렇다면 이스마엘과 후처를 통한 여러 자손들과 아브라함과 어떻게 연결을 맺어야 하는가? 이스라엘만 연결하려는 노력이 정당한가?

5절과 6절은 4절의 선언에 대한 보충 설명과 같다. 언약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고 있다. 그리고 여러 민족과 왕들이 나온다고 한다. 여러 나라의 조상이 된다.

 

7.8절과 관련해서

1) 후손이 누구인가? 여러 민족이 아니고 오직 이스라엘 민족만을 말하는가? 갈 4장은 후손은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하고, 그를 믿는 자는 모두 그의 자손이 된다는 신약적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에게만 독점점인 지위를 허락하지 않는다. 후손과 이스마엘 그리고 그두라의 자식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언약적 초대를 거절한 것과 언약적 초대 자체가 없다고 하는 것과의 차이가 크다.

2)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혹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소위 언약 공식의 일부인데, 이것을 통해서 확증하시는 내용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주신 약속과의 관계는?

 

◇본문의 문맥

아브람은 75세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렀다(12:4). 그리고 조카 롯이 떠나고, 종이었던 다메섹 엘리에셀이 상속자로 거부된다(15:4)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는(15:4) 말씀에 의지해서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때가 바로 아브람 86세이다(16:16).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13년 후에 나타나신다. 그래서 본문은 99세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으로 시작한다(17:1). 미완료형 와우 계속법이 17:1절 첫 단어로 등장하는 것은 이야기 형식의 글에서 이야기가 연속되고 있음을 밝힌다. 참고로 아브람이 하란 땅에서 부름을 받고 가나안 땅에 이른 것이 75세이다. 이스마엘을 낳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그런데 그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 99세에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그리고 자녀의 번성을 약속하신다. 이 13년의 기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것이 이 단락을 풀어가는 문맥의 핵심 열쇠 중 하나이다.

 

◇주해

1. 왜 하나님이 아브람의 나이 99세 때에 엘샤따이로 나타나셨는가?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이다. 13년의 공백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동안에 하나님의 계시가 전혀 없었는가? 무를 해석하는 것은 다양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된 대로 13년을 뛰는 현상 그것만을 다룰 것이다.

여기서 이스마엘의 탄생과 13년의 공백기는 연결이 된다. 현재의 본문과 연결된 사건으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통해서 아이를 낳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17:16). 이스마엘의 탄생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스마엘은 조카 롯과 아브람이 헤어졌을 때, 아브람이 기르던 종 다메섹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지명하려고 한다. 이때 하나님이 이를 거절하신다(15:4). 그리고 네 몸에서 날짜를 약속하신다(15:4). 이것을 아브람 부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래를 배제하고 여종 하갈을 통해서 상속자를 낳는 것으로 이해하고 합의한다(16:1-2). 그래서 동침하여 낳은 아이가 이스마엘이다(16:11).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였다(16:16).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다.

13년의 공백과 함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번성의 언약을 확인하는 증표로서 할례를 제정하시고, 구체적으로 사라를 통해 자손을 주실 것을 계속해서 보이신다. 이것은 이스마엘의 탄생과 번성이란 언약의 성취와 관련이 없음을 말한다. 부름을 받고 와서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기까지 11년의 기간을 뛰어넘는 기간의 공백기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나타나심이다. 부름을 따라 왔기에 인간적 방식을 따라서 약속을 성취시키는 방식을 거절하시고, 하나님만이 이루게 하시는 길을 따라서 성취가 되도록 다시 시작하신다. 이후 언약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언약의 갱신 즉 다시 시작함의 의미가 있다.

99세에 나타나신 이유는 이스마엘을 언약을 성취하는 인간적 방식을 거절하심의 표이다.

그리고 엘샤따이로 나타나신 것은 이스마엘의 거절 대신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언약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엘은 보통의 하나님 신명이라고 할 수 있고, 샤따이는 산의 하나님, 멸망의 하나님, 혹은 젖무덤 혹은 들의 하나님이란 뜻을 가진다. Lxx은 "나의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고, 불가타로부터 "전능한 하나님"이 등장한다. 필자는 "하나님은 나의 젖무덤이시다"라는 뜻을 선호한다. 이는 어린아이 생명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이의 태어남과 함께 준비된 어머니의 젖은 아이 생명의 상징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번성을 이룰 생명의 주인임을 나타낸다. 엘 샤따이가 나타나는 창세기의 모든 장면이 약속의 자손을 이어가는 문맥에서 등장한다.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손을 이어가게 하시는 대목이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를 통해서 약속의 씨를 이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등장하시는 것이 엘 샤따이이다.

 

내 앞에서 행하여라, 완전하도록 해라.

이스마엘의 탄생에서 행한 아브람과 사래의 행위와 비교되는 것이다. 번성의 약속을 하나님이 주셨다. 네 몸에서 날 자라는 약속(15:4)은 하갈을 통해서 나는 인간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를 통해서 이루게 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 필요했다.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완전하도록 해라. 완전함이란 오점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적 방식으로 세우는 후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방식이 동원되어 이루는 자녀를 기다리라는 말씀이다. 약속을 하나님이 하셨기에 이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믿음은 인간적 방식의 삶을 거절하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죄를 물리침과 더불어 의를 기대하는 삶이다. 하나님은 약속만 던지고 인간이 해결하도록 숨어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약속을 이루도록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약속을 담아내는 믿음과 인내를 완전이라고 부른다. 엘 샤따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말한다.

 

2절에서 언약을 왜 언급하는가?

언약을 이미 15장에서 언급하였다. 상속자로 기대했던 조카 롯과 헤어지고, 종이었던 다메섹 엘리에셀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그래서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 대신에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를 말씀하셨다. 그가 약속의 땅을 상속할 것을 확인하는 의식이 언약 체결이다(15:18). 그런데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은 13년을 침묵하신 후에 다시 약속하신다. 그리고 번성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엘 샤따이로 나타나시면서, 언약을 갱신하신다. 다시 번성과 약속의 땅을 주심을 갱신하신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2절에서 언약의 재등장은 이미 있었던 언약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과정이고, 결국은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확신이다.

 

4~6절의 여러 민족의 조상 됨에 대해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주신 약속은 번성이고, 세상의 모든 민족들의 복이 된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태어날 이삭뿐 아니라 이미 이스마엘도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자손들이 있게 된다(창25:1-4). 이들 모두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이 기억된다. 아브람이란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꾼 것이다.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되고, 그들에게 각기 통치자들이 나오기도 한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의 본질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바벨로 인해서 흩어진 인간들의 나라가 아니다. 자손의 번성, 땅, 그리고 이름(권세)의 창대는 나라를 구성함이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통해서 여러 나라들이 서고, 또한 세상의 많은 나라들을 위해서 복이 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런 복의 전달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 이삭을 통해서 가능함이 밝혀질 것이다.

 

7-8절에서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다고 하셨다. 먼저 자손이 누구인가? 그리고 영원한 언약이란 말이 무엇인가?

네 자손은 이스마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후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자식을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담아내는 자식을 말한다.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태어나는 자녀이다. 그를 통해서 성취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나머지 아브라함의 육체적 자손들이나 그 나라들이, 그리고 나아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그 약속의 자녀를 통해서 복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그를 거절하거나 저주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이다.

인간의 방식과 달리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것이 모든 형제들과 나라들에게 미치는 복이 될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언약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효력을 가지는 것이기에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를 통해서 다른 모든 인간들이 복을 받는 방식을 바울은 성육신하신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서 온 세상의 구원이 임한다고 보았다(갈3:16, 22). 그래서 후일에 이삭의 탄생과 그리스도의 탄생이 동일한 믿음의 내용으로 이해된다.

※참고 창세기 족장들에 대한 역사의 흐름

창세기의 족장들의 역사는 번성과 연결된다. 아브라함의 역사는 이삭을 얻는 과정이고, 이삭의 역사는 야곱과 에서를 얻는 과정이며, 야곱의 역사는 12 아들을 통해서 애굽에서 번성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이런 번성의 과정의 고비 고비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이 엘 샤따이이다.

 

◇주해적 정리를 통한 설교 구성

1. 인간적인 방식으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갈 수 없다.

약속의 성취가 주는 결과가 인간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세우고, 창조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인간적인 과정만으로 세워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13년의 공백기와 행하여 완전하라. 엘 샤따이 등 1절의 모든 요소는 이스마엘이 아니고 새로운 방식의 성취가 시작되어야 함을 말한다.

 

2. 새로운 번성의 방식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내 언약이다.

창15장에 확인된 하나님의 언약이 갱신되고 있다. 언약은 약속을 확인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새언약의 표로서 성찬에 참여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자이고, 그분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의 회복을 이루시는 구원자이심을 매번 언약적 갱신을 하는 것이 예배이고 성찬이다. 언약에는 옛것을 버리고(이스마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이스마엘을 통해서 이루려는 아브라함의 생각과 태도),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믿음이 요구된다.

 

3. 새로운 번성의 구체적인 방식은 너의 자손을 통해서이다.

이스마엘은 약속을 이룰 자손이 아니고, 약속의 은혜를 함께 누릴 자손일 뿐이다. 이제 새로운 자손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손이다. 영원한 언약이 되는 자손이다. 시대를 두고두고 하나님이 이루셨다는 증거가 되는 자손이 필요하다. 바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의 태를 열어서 부활의 방식으로 주어진 이삭이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언약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식이다.

전체 단락의 중심은 하나님의 약속만이 우리를 항상 새롭게 출발하게 한다.

 

# 참고로 이 본문은 2019년 9월 2일(월) 아침 7시에서 9시 30분까지 "본문에서 설교로"란 모임에서 다룬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https://www.facebook.com/groups/489839067860805/ 관련 페북 페이지이다.

 

 

이세령 leesr624@gmail.com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