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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으로 점철된 역사관의 빈약한 근거들

기사승인 2019.08.27  07: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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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역사 품지 못한 홍정길 목사의 설교"에 대한 반론

대구서교회 정성호 부목사

광복절을 앞둔 주일에 선포된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원로목사의 설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에 들어서 친중·친북의 성격이 짙어지고 반일정서를 고조시킴으로 국민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 목사는 이런 상황을 우려한 마음을 담은 설교를 했다.

이 설교의 핵심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한국 근대사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역사관을 벗어나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사는 기적의 역사다. 한국전쟁에 16개국이 참전한 것도, 전후의 처참한 상황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도,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것도 기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현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기도이며,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할 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임을 전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이시며,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도 굴곡진 과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끌어 주셨음을 고백하며 나눈 것이다. 이런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교회 개혁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좌경화된 한 인터넷 교계 언론이 본래의 의도를 왜곡하며, 아주 엉성한 신학적 관점을 가지고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전면에 싣고 있다. 과연 그 비판이 정당한 것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는 어떠한 한계점을 가졌는지, 성경적 관점에서 어떻게 시대를 바라봐야 하는지 이 기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이들의 비판은 복음을 구속사적인 관점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복음’을 선포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를 ‘복음’의 보존과 전파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인간의 역사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신약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게 계시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시다. 마치 구약에서 바로를 사용하시고,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던 것처럼, 신약에서는 로마를 복음 전파의 통로로 삼으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역사를 사용하신다. 역사의 동력은 ‘아래에서부터, 해방과 혁명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홍 목사의 설교를 비판한 그 관점은 철저히 역사 내재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그것도 소위 한국 정치적 좌파의 역사 인식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 사상의 영향으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혁명을 통한 역사의 진전을 주장한다. 하지만 실상 시간이 지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사람들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난 수정된 마르크스주의(네오 막시즘)의 입장을 따르고 있기에 이는 잘못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복음, 구속사를 통하여 초월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념(그마저도 수정된)에 근거하여 정치적 취향에 따라 논리를 펼치고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둘째, 복음의 총체성과 통전성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나타난다.

인간은 속죄를 통하지 않고서는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마1:2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며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기 위함(마20:28) 이라고 하셨지, 자유와 정의를 향한 ‘투쟁’을 위해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행보는 일차적으로 복음 전파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억압된 자들의 정치적 해방을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속죄’는 복음의 총체성이다. ‘속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선포 된 하나님 나라는 통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통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파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분리되지 않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 사상적 이념에 근거하여 바라보는 투쟁과 혁명은 하나님 나라의 통전성을 외면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대한민국의 역사로 국한되거나, 근대사의 혁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투쟁과 혁명의 역사가 아니라 비록 많은 아픔과 왜곡이 있기는 하였지만, 역사의 흐름 가운데 계속 흘러온 복음의 역사다. 하지만 정치적 취향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에 서게 되면 역사를 친일과 반일, 진보와 보수, 반공과 종북,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등의 이분법으로 보게 된다. 이는 복음의 총체성은 물론이요. 하나님 나라의 통전성도 깨닫지 못한 관점이다.

셋째, 기도에 대한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를 믿는 신앙인이요, 복음의 총체성과 하나님 나라의 통전성을 알고 있는 자라면, 절대 기도를 소홀히 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겠는가? 기도를 소홀히 하고 기도의 세계에 대해서 무지한 자라면 어떻게 복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물론 기존의 보수적 입장을 가진 일부 기독교인들이 복음의 실천적 부분이 약하기에, 기도보다는 실천에 비중을 두라는 의미로 이런 말을 했다면 그나마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홍 목사가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면 이런 맥락에서 기도에 대한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홍 목사는 남북 나눔 운동, 장애인 사역 등 사회선교도 앞장섰고, “행함 없이 말씀만 있다면 사기이며, 사랑과 섬김 없는 한국교회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서슴지 않았던 분이다. 심지어 박 대통령 탄핵 정국에 “하야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사죄하라”는 공개편지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실천을 위해 힘썼던 분이셨기에 지금 그를 비판하고 있는 인터넷 언론사도 자주 인터뷰를 통해 기사를 작성했다. 이념적으로 점철된 복음에 사로잡혀 기도의 능력도 부인하는 자가 신학적 개념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논리적 비약과 단정이 많은 상태로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구약 시내산 율법을 거룩한 사회를 지속할 법적 체계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신약의 은혜는 거룩을 강조하지 않고, 구약의 율법만 거룩을 강조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율법의 완성으로 복음을 이해하게 될 때, 복음의 한 가운데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가 있다는 것도 잘못된 주장이다.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복음은 고아와 과부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강도가 나오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의 완성인 복음은 구약의 율법과 규례의 속박으로부터 자유 함을 주되, 율법의 정신을 완성시킨 것으로서의 복음이다. 우리가 어떠한 율법적 행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요8:32)이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복음이다.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과 돌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복음의 양면성, 곧 실천과 섬김의 문제지 그것이 복음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룩한 나라는 현실 사회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특정한 나라 안에서 성취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아주 편협하고 몰 신학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홍정길 원로목사의 설교에는 보수적 관점에서 볼 때, 진보적이며 실천적으로 복음의 삶을 살아낸 교회의 원로가 비(非)이성적으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념의 대결을 넘어서 이 민족사에 임한 하나님의 총체적 은혜로 한국사를 이해하자는 말씀을 비합리적인 논리에 근거해 통째로 부인하고 있다.

이념으로 점철된 역사관을 분별하라

복음을 민중사적 논리에 함몰되어 이해하게 될 때, 자신의 이념과 진영의 선(先) 이해로 복음과 성경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념으로 복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자들이 인간 역사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부정하며, 역사를 뒤엎으려고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기존의 질서와 교리에 도전해야 신(新)지식인이요,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몰지각한 자들이라는 프레임을 이미 구축해버렸다. 이로 인해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침묵하고 있다. 침묵하는 이유는 철학과 사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요,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인간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노력의 부재이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하라’(롬12:2)고 권했던 바울의 권면을 깊이 새겨서,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고 복음의 총체성과 하나님 나라의 통전성의 관점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교회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정성호 peripateo@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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