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본지에 기고되는 나의주장,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는 앞서 본지에 <정교분리 톺아보기>로 졸필을 올렸다. 원론적인 글이었다. 이제 조금 더 각론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가 이념적인 전투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갑자기 대통령이 간첩단에 연루되어 간신히 죽음을 모면한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했다가 북한 정부를 수립하는데 공로를 세우고 고위직을 지낸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고 해서 듣는 국민들은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기총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대통령은 올해 말로 하야하라”는 성명서를 냈고 청와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고 있다. 이 일로 사회나 교계가 매우 시끄럽게 되었고 급기야 기독교 원로들은 전광훈 목사를 비판하며 그러려면 목사직을 내려놓으라 하기에 이르렀다.

원로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소위 말하면 정교분리의 원칙을 깨트렸다는 이유에서다. 정교분리는 과연 기독교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일까? 원로이신 S 교수는 “인권과 정의, 그리고 평화”에는 정치개입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말한 바가 있다. 독재국가에서 두려워서 아무도 말할 수 없을 때는 기독교가 말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필자는 몇 가지를 짚어 보려고 한다.

첫째는 인권과 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교회의 정치개입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과연 성경이 말하는 것이며 그것만이 정치개입의 당위론일까 하는 의문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것을 들고 왕 앞에 나아가 목숨을 걸었을까? 성경은 그런 것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죄의 문제나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게 된다.

정교분리의 원래 취지는 세상적 힘을 가지지 못한 교회의 독특한 영적 영역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가진 정치가 교회의 울타리를 부수고 넘어 오지 못하도록 보호막을 설치한 것이었다. 물론 교회는 정치의 각론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안 된다는 의미도 있다. 만약 그 영역을 침범해 올 때는 교회는 도둑이야 하고 소리 질러야 한다.

즉 정권이 자기들의 인문학적 논리를 가지고 인권을 운운하면서 성 소수자 인권법을 만들겠다고 할 때, 간음을 합법화할 때, 그리고 낙태죄를 폐지함으로 살인을 허용할 때, 그리고 법원이 교회 정치를 아예 싹 무시해 버리고 불신자를 당회장으로 세울 때, 교회는 모든 목소리를 총동원하여 소리 질러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계명을 깨트리는 일을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정교분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전광훈 목사를 공격한 원로들은 얼마나 그런 일에 목소리를 내었는가 하는 것이다. 진실로 소리를 내야 하는 대목에서는 침묵하고 대통령의 잘못들을 짚어서 책망하는 일에는 발 벗고 나서서 정교분리를 소리 지르는 것은 온당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연 정교분리를 오직 교회만 정치를 향하여 소리를 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에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이다. 교회가 잠잠히 기도만 하고 있을 때, 정치는 온갖 더러운 죄악으로 교회를 덮어왔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냥 참고 기다리며 주님의 뜻만 바라고 있으라는 태도는 문제가 없을까?

여기서 너희(교회,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강조하신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빛은 어두운 데를 비추라는 것이고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라는 말씀이다. 정권이 심각하게 잘 못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부수고 들어올 때, 어두움(죄악)으로 복음을 덮으려 할 때(깨트리려 할 때), 교회는 자기를 태워 맞서야 한다. 신사참배가 국가의 의례일 뿐이라고 할 때 이는 명백히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맞섰던 우리 선배들의 정신으로 당당히 맞서 나아가야 한다. 자기를 태우는 촛불은 희생이고 순교 정신이다.

소금 역시 동일한 의미이다. 단순히 맛만 내는 소금이 아니다. 부패를 방지하고 죄악을 몰아내는 역할도 함께 하라는 것이다. 교회는 그 일에 소리 지르는 선지자가 되어야 하고 자신을 녹여내는 희생도 감수하여야 한다.

세 번째는 지금 정교분리를 외치는 자들은 과연 공평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받을 때, 이름 있는 몇몇 목사들이 하야하라고 소리 질렀다. 과연 그럴 때에도 똑같은 잣대로 그들을 이렇게 비판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소위 정교분리라는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말이다.

필자는 그런 말을 들어본 역사가 없다. 왜 그때와 지금은 다른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것인가? 이런 이중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임을 모른다는 것인가? 실로 공평하지 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구의 교회가 성 소수자 인권문제에 소홀히 함으로써 많이 약화된 것을 보면서 이제 한국교회도 그 기반부터 무너뜨리려 하는 이 문제에 대하여 “대세는 기울어졌다.”는 말로 방관하고 있어야 하는가?

한국교회는 지금 위기에 처하였다. 물질문명이 교회를 병들게 하였고 교회를 치고 들어오는 사탄의 음모들에 노출되면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교회 안에서 패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성경적 목사들과 인문학적 목사들의 대결이 심화되고 있고 서로를 겨냥하면서 헐뜯고 물고 먹는 모양새가 되었다.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 내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이는 목소리가 클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작은 신음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환자를 향하여 소리 내지 말라는 것은 그냥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주님이 재림하시려면 세상은 죄악으로 찌들어 숨이 막힌 교회가 주의 재림과 심판밖에는 희망이 없다고 고백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신앙을 고백하며 남은 자들을 위하여 소리 질러야 할 사명이 분명히 교회에 있는 것이다. 살아계신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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