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본지에 기고되는 나의주장,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15세기 이후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기 이전 수천 년의 시대는 대체로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말대로 왕조 국가였다. 루이 14세가 말하는 왕국은 그의 교육 담당자인 신학자 보쉬가 ‘왕의 절대 권력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다.“라는 가르침에 있었다.

이스라엘 나라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가정으로 올라가 보자. 아브라함의 신앙이 온 집의 신앙이었고 그의 모든 가족은 아브라함의 다스림(정치) 속에 살았다. 국가는 그것이 확대된 형태이다. 이집트로 가면 바로 왕이 이집트의 정치요 종교였다. 당시는 정교일치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15세기 경 일어난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개인의 인간성(휴머니즘)이 재조명되고 사유가 활발하게 되었는데, 이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넘어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저마다의 목소리가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곧 인간과 자유라는 논제가 중심에 서게 된다. 당시 인기 있는 나라는 베네치아공화국이었다.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면서 전성기를 맞은 베네치아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였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화혁명은 결국 자유민주주의 시대를 예고하였으며 점차 국왕은 상징적인 인물로 남게 되고 시민들에 의한 정치가 시작된다.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든 자유민주주의 정치에서 종교는 그 위치가 애매하게 되었다. 중세시대의 종교(기독교)는 정교일치와 가까운 행태를 보여 왔다. 기독교는 최대한 국가 권력에 머물고자 했다.

그럴 즈음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르네상스의 사상에 간접적 지원을 받은 종교개혁이 성공한다. 그러나 단번에 정착하지 못하고 나라마다 핍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절 에스파냐 왕실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억한 퓨리턴은 미대륙으로 건너가게 되고 이들의 소식은 많은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독립전쟁 등을 거친 후 나라를 세우게 된다.

미국이 헌법을 만들 때 정교분리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국가에서 종교를 어떤 위치에 두느냐가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 미국의 헌법은 국교를 부인하는 것으로 정교분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정교분리는 자유의 원리이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 용어의 개념은 원래 미국 헌법 수정 1조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말로 처음 사용됨으로써 이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어 갔다. 하지만 서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교회 –국가의 분리라는 말보다 ‘정교분리’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정교분리란 추상적으로 국가는 국민의 세속적 , 현세적 생활에만 관여할 수 있고 내면적, 신앙적 생활은 국민의 자율에 맡겨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 내지 비종교성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그 개념이 지닌 추상성 때문에 ‘정교분리’는 ‘정치의 종교에 대한 불간섭’에서 ‘교회의 정치에 대한 불간섭’으로도 이해되는 경향이 강해 졌다.

정교분리(政敎分離)는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정치와 종교, 제도론적으로는 국가(정부)와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 교의 일치에서 정, 교가 분리된다는 선언이었는데, 정치는 종교에 대해 간여 할 수 없다는 의미가 강하였다.

정교분리를 좀 더 구체화하면 국가는 종교 활동이나 특정 종교단체를 지지해서는 안 되며 종교단체도 정치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러한 정교분리의 근거에 대하여서는 대체로 정교 각각의 특질에서 도출(導出)된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에게 현세적(現世的) 행복을 부여하는 것이나 종교의 목적은 국민에게 영적(靈的)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그 특질이다. 양자는 각자의 본질에 따라서 명확하게 구별되고 또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교분리가 국가와 교회(사원)가 절대적으로, 또는 완전히 분리되는 것까지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구체적인 인간생활이 단순히 내면적인 것도 아니고, 또 단순히 외면적인 것도 아니기에 당연한 것이다. 셸러(Max Scheler, 1874-1928, 독일의 철학자)는 인간의 내면적 생활과 외면적 생활과는 밀접한 공속성(共屬性)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의 정교분리

양현혜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부)는 올해 봄학기 홍성강좌에서 ‘3.1운동과 조선·미국·일본 개신교의 반응과 신학’이라는 주제로 조선 개신교인들의 3.1독립운동 참여 논리와, 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개신교계에서 보인 반응과 논리를 분석했는데, 크리스천투데이의 보도를 인용하면 “기독교와 조선 통치를 다리 놓으려는 일본 개신교인들의 ‘종교 보국의 열정’은 이어졌다. 개신교인 시라토리(白鳥健)는 ‘조선의 교우에게’라는 글에서 일본의 ‘국체’와 기독교를 양립시키고 로마서 13장을 동원해 3.1운동에 참가한 조선 개신교인들을 비판했다. 와타세(渡瀬常吉)를 중심으로 한 조합교회(組合敎會)도 시라토리와 같은 논리로 ‘조선전도부’를 통해 당시 식민지 조선에 입국해 활동했다.”고 하였다.

일본은 이를 토대로 정교분리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한국의 교회가 정치에 간여하는 길을 봉쇄하였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과 신사참배반대운동을 한다는 등의 의심에서 출발한 것이고 이를 막고자 함에 있었다.

원래의 정교분리는 정치가 종교에 대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는데, 일제는 오히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뒤집은 것이다. 이러한 일제 잔상은 오늘날 교회에서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사회발전연구원(이사장 조일래 목사)은 ‘종교와 국가의 바람직한 관계’라는 주제로 제6차 세미나를 14일 오후 2시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개최하였다. 이 세미나를 정리한 6월 14일 자 뉴스파워의 기사에 의하면 정태식 교수(경북대학교 교수, 정치종교사회학)는 “종교와 정치의 긴장 관계는 일차적으로 종교의 원칙에 비추어 또는 신의 뜻에 비추어(in light of)보아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종교가 세상을 비판하면서 생겨난다.”면서 대표적인 예로 구약에 나오는 아모스 등의 예언자들을 꼽았다.

이정훈 교수(울산대학교 교수, 법학과)는 “정교분리는 국가의 특정 종교에 대한 우대와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며, 정치와 종교의 사실상의 완전한 관계차단이 정교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정교분리 위반의 판단 기준은 권력과 특정 종교의 사실상의 협력 관계 또는 관련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교회와 정치가 분리된다는 왜곡된 정교분리 논리를 수용하여 정치적 문제에 교회가 침묵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며 “정교분리는 특정 종교 단체와 공권력의 정책적 유착을 금지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을 헌법이 배제할 수 없으며 교회는 사회와 정치의 소금 역할을 하여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종교는 무조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리고 ‘정치에 관여하는 목사는 목사직을 그만 두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과연 목사의 신분으로는 말할 수 없는가? 기독교단체는 정치적인 문제에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온다.

모든 사람이 양심을 가졌듯이 목사도 또한 양심을 가졌다. 보통 사람보다 한 차원 높은 신앙양심을 가졌다. 그 신앙양심의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신앙양심은 말씀에서 벗어날 때 분명한 경고음을 들려준다. 그리고 교회나 국가가 잘못 갈 때, 그 소리는 더욱 분명해 진다.

정권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트릴 때, 계명에 반하는 법안을 만들려고 할 때, 교회 안에서만 그것은 죄라고 하며 목소리를 제한하고 있어야 하는가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에 대해 잠잠하지 않았다. 그들은 생명을 걸고 왕 앞에 나아가 소리쳐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사사건건 왕을 간섭한 것은 아니었다.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크게 벗어날 때 그리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양심에 주신 소리가 울릴 때 자명종같이 정확하게 반응하였던 것이다.

목사를 위시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어둡게 하는 세력에 대해 소리 지르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의 사명을 하여야 한다. 오늘날의 동성애 문제, 낙태문제, 간통 문제 등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일이니 이를 행하고자 하는 정부를 향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가가 종교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다는 것은 종교가 엄격히 지키고자 하는 것을 깨트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권의 행하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일은 종교가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종교는 오직 정권이 종교를 침해하는 일, 신앙양심을 깨트리는 일을 할 때는 분명한 소리를 내야한다. 그것이 곧 빛과 소금의 역할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참배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우리의 선배들 같이 목숨을 내 던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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