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하나교회 담임목사)

열흘간 비행기를 열두 번 탔습니다. (한국)서울 - (중국)상해 -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 (인도)벵갈루루-델리 - (네팔)카트만두-포카라의 순으로 갔다가 그대로 돌아와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1차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음 비행기를 탈 때까지 대부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상해에서 쿠알라룸푸르에 갈 때는 근 10시간을, 쿠알라룸푸르에서 벵갈루루로 갈 때는 14시간을, 델리에서 카트만두로 갈 때는 15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하루 밤을 자고 떠나야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행은 기다림입니다. 비행기 출발 두 세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수화물을 붙이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고, 검색대 앞에서 기다리고, 출국수속심사를 위해 기다리고, 탑승구 앞에서 또 기다리고, 비행기에 타서도 이륙을 기다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또 입국심사를 위해 기다리고,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환승을 위해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고... 기다림을 못하면 여행이 고역이 됩니다. 기다리면서 일행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서 폰을 보는 사람도 있고, 막간을 이용해 책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지루하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Flying Photo by Sacha Verheij on Unsplash

나는 다음 비행을 위해 제법 오래 기다려야 할 때마다 그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연락하여 그들을 만났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경치를 보기도 하고, 시내에 들어가 쇼핑을 하는 것도 즐겁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더욱 유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해에서는 친구와 함께 후배목사를 만났고, 쿠알라룸푸르와 델리와 카트만두에서는 그곳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들을 만났습니다. 또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성도님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하며 교제를 나누고, 그들의 형편을 듣고 격려하며 기도하고, 선교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며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문득 내 인생의 ‘다음 비행(飛行)’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현역으로 목회를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계획, 하나교회설립20주년 이후의 목회에 대한 계획, 요한복음설교가 끝나고 난 다음의 주일설교에 대한 계획 등입니다. 은퇴가 끝이 아니고, 20주년이 끝이 아니고, 요한복음설교가 끝이 아니고, 다음 비행이 있음을 기억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앙의 여정도 그렇습니다. 처음 교회에 오면 외적으로는 원입교인이 됩니다. 그리고 학습교인이 되고 세례교인이 됩니다. 물론 유아세례를 받은 이는 다음에 입교교인이 됩니다. 그리고 보통 서리집사가 되고 그 다음에 항존 직분자가 됩니다. 내적으로는 예수님을 믿으면 ‘칭의’를 얻고 그때부터 ‘성화’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결국 ‘영화’에 이르게 됩니다. 신앙여정에 있어서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고, 다음 비행의 목적지가 어디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것임을 생각하면서 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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