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구 목사(서울영동교회 담임)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자 하나님과의 씨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사귀는 기도도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문제의 세상에 선포하는 씨름의 기도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이를 위한 기도, 다른 이의 일을 두고 드리는 기도도 있습니다. 이를 중 보기도, 혹은 도고 기도라고 합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이가 죄를 범했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을 조용히 찾아가서 권고합니다. 이때 권고를 쉽게 받아들이면 좋지만 잘못을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또 다른 한 사람과 같이 다시 찾아가서 정중하게 권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여전히 잘못을 부인한다면 대부분 어떻게 합니까? 그 사람에 대해 큰 실망을 보이면서, 그 일을 외부에 공개하고 재판정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그는 응당 의 심판을 받게 되겠지만, 그 한 사람이 다시 재기하기 어렵게 되고, 공동체 안에는 큰 아픔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것과 다른 길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먼 저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예수님은 죄를 지은 한 형제를 고발하려고 했던 두 사람이 법정으로 가기 전에 기도하도록 가르칩 니다. 그리고 그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무엇이든지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먼저 갖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사랑의 기도는 어떤 방식으로 응답이 되었을까요? 기도실로 가서 형제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던 두 사람은 처음에는 실족한 형제의 죄만 보다가, 죄를 지은 그 형제란 사람, 그의 입장과 형편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형제에게 대했던 자기들의 교만한 태도도 발견하고 회개했을 수 있습니다. 이후 그들은 긍휼과 이해의 마음을 가지고 다시 그를 찾아갑니다. 그러자 죄를 지었던 형제가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죄를 지었던 한 사람과 그 사람을 정죄하려고 했던 두 사람이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기도는 사랑입니다. 고난 당하는 자를 위해 함께 울어주고, 오해 받고 있는 형제의 곁에서 위로해주고, 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마음을 담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것은 서로를 위한 사랑의 기도를 위한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의 기도를 매일 드린다면 너 무나 축복된 일이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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