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연구원 현안진단 제 191 호 2018년 7월 8일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선언(4.27)과 북미 정상 간의 싱가포르 공동선언(6.12)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전망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실행한 조치는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발사실험 중지 결정(4.20, 노동당 전원회의)과 외신기자에게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장면을 보여준 것(5.24)이 전부다.

오히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에는 비핵화의 구체적 시간표가 나온 것도 없고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가 시행된 것도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구두 약속한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도 아직 말뿐이다.

싱가포르 회담은 북한이 핵무장을 했기에 가능했으며(2017.11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화성-15호 시험발사 성공 직후 핵무장 완성 선언) 사력을 다해 추구한 병진 노선(2016.5, 7차 당 대회)이 주효한 것으로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남한 내 핵무기 공개와 주한미군 철수 선포 등 5개 항 요구(2016.7, 북한 정부대변인 성명)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확보한 셈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국내외 여론은 싱가포르 합의 자체가 가지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무게를 긍정하는 입장에서 그 합의를 구체화하고 실행하려는 한미동맹과 북한 간의 협상을 인내를 가지고 성원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국제무대에서 특히 긴박한 안보문제에 대해 미국 정상이 직접 담판에 나서 합의를 도출한 것은 드문 사례다.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5년 ‘9.19 합의’는 차관(보)급의 합의이고, 2015년 ‘이란 핵 합의’는 장관급 합의였다는 점에 비추어 이번 합의는 과거 어느 합의보다 정치적인 이행 담보 능력이 크다고 본다.

현재 남·북·미 3국의 정상 간 잦은 회담과 전화통화, 특사급 고위인사나 친서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실험 중지 선언이 지켜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싱가포르 합의 이행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가질 필요는 없다.

비핵화 진정성의 확인과 기술적 전문성의 한계

지금 내외의 최대 관심은 과연 비핵화 완료 시한과 구체 이행조치 시간표가 언제 어떻게 나올 것이며 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에 쏠려 있다.

현재는 이 시간표가 조속히 나오길 바라는 여론이 높지만, 막상 시간표가 나온다 해도 그때부터는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보다 구체적 형태로 따라 나오면서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비핵화를 위한 구체화 노력이 오히려 의심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는 비핵화 범위와 대상 그리고 검증과 관련하여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정의(definition)와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핵무장과 관련된 모든 것은 폐기되어야 하지만 핵무기와 핵물질, 시설장비, 핵기술, 핵전략과 제도, 기술자와 지식, 이런 분야로 전용될 수 있는 물질과 장비, 인력 등 도대체 어디까지를 포함해야 ‘완전한’ 비핵화인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어떻게 정해져도 이견과 의심은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대상 범위를 확대하여 완전함을 기하려 할수록 비핵화 소요 기간과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며, 수십 년이 걸려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북한이 고의나 과실로 비핵화 대상을 누락시키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신고와 검증에 임한다고 해도 그 성격상 기술적 전문적 차원의 완전성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검증 단계에서는 이것이 모든 변수를 통제한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방된 환경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서 측정오류와 오차, 고려하지 못한 변수의 작용과 해석의 차이 등이 나올 수 있다. 과학수사라도 한계가 있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명할 수는 없다. 이렇게 되면 시간표 자체가 또 하나의 족쇄가 될 우려가 크다.

둘째는 비핵화 조치는 대북 안전보장과 상호 연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비핵화와 대북안전보장은 수레의 두 바퀴다. 비핵화가 급하다고 한쪽 바퀴만 돌리면 수레가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만 뱅뱅 돈다.

비핵화를 진전시키려면 대북 안전보장 조치도 함께 움직여 주어야 하는데 이는 미북 간에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대북안전보장과 관련된 군사 조치는 한미동맹 내부논의와 남북협상에 연계된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상응 조치가 늦으면 북한에 비핵화 조치를 재촉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실험 중지 조치에 대응하여 한미동맹 측은 한미군사연습의 일시중지 결정을 한 바 있으나 추가적인 조치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직 없다. 북한이 미사일 엔진시험장을 폐쇄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나온 지 오래지만, 아직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북한과 한미동맹 측의 조치가 상호주의적으로 연계된 것이라면 북한의 추가조치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추가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 추가조치가 상응성과 상당성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북한이 브레이크를 걸 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안보문제와 관련하여 내재되어 있는 색깔론의 부활로 연결되기가 십상이다.

상호 조치들의 교환이 서로 맞물리면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어느 순간에 멈칫거릴 경우 잘못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나쁜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정상의 리더십과 정치적 차원의 진정성 검증

결국, 북한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 해소를 기술적 전문가 그룹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끌어낸 정상들의 리더십이 계속적으로 주도하면서 비핵화 합의의 진정성 역시 기술적 차원을 넘는 정치적 차원의 검증과 확인(또는 증명)이 비핵화 합의 이행의 동력을 붙잡아 주어야 한다.

정상 간의 소통과 협력이 유지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미동맹 내부의 회의론자들에게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하라고 강요하지는 못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들이 하는 판단을 신뢰하자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북한의 핵무장을 초래했다. 그렇기에 북한이 변하여 우리에게 신뢰를 주기만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뢰를 만들어 나가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한미 정상의 판단에 신뢰를 보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현재 단계에서 비핵화 합의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조치보다 정치적 조치가 더욱 강하게 요청된다.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보인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정치적 신뢰를 깔아줄 필요가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한미 측에 정치적 신뢰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북한이 싱가포르 합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의무의 주체를 미국과 북한 양자가 아닌 ‘북한’이라는 단독 주어에 합의한 상황에서는, 핵보유국을 명시한 헌법(2012.4 최고인민회의에서 수정보충)을 수정하고 ‘핵보유국지위법’(2013.4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을 폐지하는 것이 위력한 조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북한의 헌법 수정과 ‘핵보유국지위법’의 폐지는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외부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동시에 북한 내부적으로도 핵포기 방침이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임을 확인하는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이것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대북제재 완화나 안전보장조치를 협의할 수 있는 정치력을 강화시켜주어 싱가포르 공동선언 이행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다.

올가을 평양에서 북한은 큰 정치행사를 앞두고 있다. 공화국창건 70주년 행사도 있지만, 최고인민회의 13기 7차 회의를 소집하여 헌법과 ‘핵보유국지위법’을 개정하고 폐지할 것인지도 주목해 보아야 할 포인트이다. 그 시기에 추가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도 예정되어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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