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성 교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생명목회 담론

고려신학대학원(원장 신원하 박사)은 “21세기 교회와 도전받는 종교개혁”이라는 주제로 지난 10월 24일(화)부터 31일(화)까지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네덜란드 아펠도른신학대학의 마리스(J.W.Maris) 은퇴교수가 루터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노예된 자들?”, 고려신학대학원의 김순성 교수가 “공동체적, 생태적 영성과 성화를 지향하는 생명목회 담론과 전망”, 유해무 교수가 “장로교 정치제도의 장단점”, 박영돈 교수가 “도전받는 종교개혁의 칭의론”, 고신대학교의 이상규 교수가 “교회개혁운동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논평자로는 안영호 목사(환희교회), 제인호 목사(가음정교회) 그리고 황신기 목사(강서교회)가 나섰다.

고신대학교의 이상규 교수가 “교회개혁운동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장희종 목사가 논평했다.

특별히 김순성 교수는 “21세기 한국교회 위기극복의 대안으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생명목회 담론”의 개혁주의신학적 적용 가능성을 제안해 참석자들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었다. 김 교수는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를 위기에 처한 21세기 목회 생태계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짐으로 "신학함"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다음은 김순성 교수의 강의 요약이다.

고려신학대학원의 김순성 교수(우)가 “공동체적, 생태적 영성과 성화를 지향하는 생명목회 담론과 전망”을 주제로 발표하고 제인호 목사(가음정교회)가 논평했다.

공동체적, 생태적 영성과 성화를 지향하는

생명목회 담론과 전망

 

김 순성 교수(실천신학)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주창된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는 학문적 관심에서가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를 향한 실천적, 목회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신칭의는 주로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되었고, 교회라는 범주 내에서 논의되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주는 목회적, 상황적 의의는 무엇인가? 21세기 한국교회는 지난 100여 년간 유지되어온 목회 생태계가 파괴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목회 생태계의 근본적인 붕괴현상은 130년 한국기독교 선교역사 초유의 위기상황이다.

생명목회 담론과 미래목회 방향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오늘의 목회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 포스트모더니즘, 정보화와 과학기술 혁명, 2000년 서구교회의 몰락, 환경오염과 지구생태계의 파괴라는 세계적, 세기적(世紀的), 종말적 쓰나미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목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본 논문에서는 21세기 한국교회 위기극복의 대안으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생명목회 담론에 주목하면서 종교개혁 운동의 현대적 의미와 적용을 통해 미래목회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개혁자들이 주창한 이신칭의와 성화 교리를 공동체적, 생태적 영성과 성화의 관점에서 오늘의 생명목회 담론에 적용, 평가하고 나아가 미래목회 방향을 실천신학적으로 전망하고자 한다.

21세기 반(反)생명적, 생태적 위기상황

21세기 반(反)생명적, 생태적 위기상황은 먼저 “지구촌과 급변하는 목회환경”이다. 정보화와 과학기술 혁명,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 그리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으로 21세기의 목회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또한 생태적 위기상황이 21세기를 엄습하고 있다. 21세기 목회 생태계를 파괴하는 현상들로는 저출산과 노령화로 인한 세대 간 불균형, 교회의 양극화, 목회자 과잉배출로 인한 생태계 교란과 교회의 사유화와 공공성 결여 등이다.이러한 상황 가운데 생태정의(eco-justice)가 파괴되고 이에 따라 목회 생태계도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생태계 회복을 지향하는 생명목회론

생명목회라는 용어는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에 새롭게 대두된 용어이다.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 폭력, 자살, 가치관 붕괴의 붕괴와 함께 먹거리 위기, 질병 등 한국사회와 전 지구공동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반(反)생명적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생명이라는 단어가 인간의 삶의 본질적, 총체적 차원을 내포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생명목회 담론은 21세기 목회현장이 당면한 위기의 절박성과 심각성을 보여준다.

영적 생명과 생태적 생명

목회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사람들로 하여금 소유하고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목회의 본질이며 생명을 살리는 것이 목회의 핵심과제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한 생명이란 어떤 생명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종종 ‘영생’이란 단어로 표현되는데 헬라어로 ‘조에 아이오니오스(ζωὴ αἰώνιος)'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은 신적(divine)이며, 영원하며(eternal), 우주적이고(cosmic), 종말론적인(eschatological) 생명이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ζωὴ)이 창조세계와 관련된 우주적 차원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 속의 인간과 사회, 자연 나아가 우주적 생명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명목회 담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생명은 그 출발점이 성경이 말하는 조에(ζωὴ)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진보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생태신학적 논의에 기초한 생태적 생명이다.

생명과 삶의 양식(樣式)로서의 영성

기독교적 생명과 삶은 영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영성이란 신자 개인과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조에(ζωὴ)로서의 영적 생명(life)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삶(life)의 양식이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이란 관계, 사회, 개인 세 영역이 서로 밀접한 관련 속에서 부분적으로 겹치면서 존재하는 생명 형태이며, 인간의 삶에서 윤리와 영성이 경험되는 본래적 영역은 개인이나 사회적 영역들에 앞선 ‘관계적’ 영역에서 일어난다. 즉, 상호 관계성 속에서 인간의 의식과 윤리적 활동이 일어나며 하나님 체험으로서의 영성이 일어난다. 기독교 영성이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 경건에 머물지 않고, ‘너와 나’의 바른 관계에 기초한 윤리성(사랑, 화해, 화목, 용서, 정의 등)을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른 영성은 바른 윤리를 동반하며, 윤리성이 동반되지 않는 영성은 기독교적 영성이 아니다. Bonhoeffer에 따르면 교회는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다. 성령 안에서 너와 나의 하나 됨이라는 독특한 관계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ζωὴ)과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구원공동체가 교회이다.

목회의 본질로서의 공동체 영성의 구현

성령 안에서 공동체적 관계성을 특징으로 하는 기독교 영성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차원의 존재와 삶의 양식으로 나타난다. 이 새 차원의 삶의 양식이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성과 존재양식을 가리킨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관계적 삼위일체, 곧 사랑의 공동체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상호간 “자기내어줌(giving himself to the others)”이라는 독특한 관계성 속에서 상호 의존적이고 타자중심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간의 경계를 뚫는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는 모습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성과 존재 양식의 특징이다.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 서로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계의 영”으로서 신자로 하여금 성자가 성부와 누리는 그 사랑, 즉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적 코이노니아를 누릴 수 있게 하시며, 교회와 개인 신자는 이 생명의 수혜자로서 이 생명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존재이다. 구원이란 바로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생명의 새로운 차원의 패러다임에 참여하고 누리게 됨을 뜻한다. 이 삶은 하나님의 본질을 반영하는 “관계성 속의 삶” 또는 “공동체 안에서의 삶”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개인과 공동체, 피조세계에서 인간과 자연, 현세와 내세를 통전적으로 포괄하는 삶(생명)의 총체성이 관여된다. 이 생명에 참여한 공동체가 교회이며. 목회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적 영성을 교회를 통해 이 땅에 구현하는 것이다.

개인중심적 영성이해의 목회적 한계와 문제점

성경에서 약속한 구원이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적 영성에 기초한 삶(생명)의 총체적 차원을 포괄하는 것임에 비추어볼 때 한국교회의 영성이해는 치명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영성이 주로 개인의 관점에서 이해되면서 그 주된 관심사가 신자 ‘개인’의 하나님 체험에 집중되어 있다. 영성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접근하게 될 경우, 성경이 약속한 삶의 총체성으로서의 구원과 영성의 의미를 축소, 환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 결과 삶에 대한 강조가 교회중심의 개인적 차원의 경건과 구원, 도덕적 행위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시대적 위기상황과 불의한 제도나 구조악에 교회가 무관심하거나 무력하게 굴복하고 순응하며 스스로 쇠락의 길을 걷을 수밖에 없다.

이신칭의 교리의 공동체적 생태적 차원

그렇다면, 생태계 파괴와 함께 폭력, 자살, 강간, 낙태, 테러, 학살, 핵위협 등 반(反)생명적인 죽음의 문화가 창궐하는 이 시대에 이신칭의 교리가 오늘의 목회현장에 주는 실천신학적 의의는 무엇인가?

루터와 칼빈에게 칭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기초하고 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이루어 누리는 이중적 구원의 은혜가 칭의와 성화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의 연합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본질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주시는 띠"이며 우리를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로 묶으신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연합이 지니는 구원의 공동체적 차원이다. 신자 개개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 밖에서 이루어진 의로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연합하게 된다.”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공동체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를 담는 저장소이다. 개인의 구원과 성화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바른 관계가 맺어지는 이 공동체 속에서 가능해진다. 나아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를 통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준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며 구원의 은혜와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이 점에서 21세기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공동체성의 붕괴와 상실이다. 교회의 관심이 오로지 개인의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교회는 개인의 신앙성장을 위한 방편으로 이해될 뿐 아니라, 교회 자체가 자기유익과 자기 확장을 추구하는 내향적 집단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 결과 공동체적 성화가 사라진 교회, ‘우리들끼리’의 교회, ‘그리스도 없는’ 교회가 되고 있다.

구원의 생태적 차원과 성화

구원과 성화의 공동체적 차원은 자연 및 피조세계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칼빈은 성령을 생명의 원천으로 보며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세계에 현존하는 것으로 본다. “성령은 온 우주에 편재하여 하늘과 땅 위에 있는 만물을 유지하고 그것들을 자라게 하며 그것들을 살게 한다.” 이를 근거로 Moltman은 구원과 성화의 영인 성령의 사역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한다. 하나님은 초월하시면서 동시에 모든 피조계 안에 거하시며 자신의 활동방식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신다. 또한 성령은 창조세계 속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고유의 방법으로 서로 교제하도록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그리고 그들 상호간에 사귐을 창조한다. 이 때문에 성령은 피조물들을 자기와 하나로 결합하며 피조물의 고통과 신음에 참여한다(롬8:19-22). 이러한 사귐의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와 동료와 친구로서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 서로의 안에서 모든 것을 나누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이다.

삶의 원리와 방식으로서의 십자가의 중심성

하나님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는 원리이자 방식이다. 십자가 없이 하나님의 생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십자가는 한마디로 자아죽음을 뜻한다. 이것은 죄악적인 자아의 생각과 뜻(ψυχῇ)을 지속적으로 부정하고, 하나님의 의를 위한 고난과 희생과 죽음의 대가를 기꺼이 수용하는 순종적 신앙행위이다.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에게 자기부인과 십자가는 지속적인 회개의 삶으로 표현되며 여기에 성화가 수반된다. 여기에는 개인적 회개만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의 회개와 함께 생태적 회개도 포함되어야 한다.

생명목회의 실천적 대안으로는 생태적 예배와 생명살림의 말씀선포, 생명 나눔으로서의 코이노니아, 건강한 작은교회 운동과 자발적 교회분립, 지역사회와의 대안적 생명망 형성, 농어촌교회 살리기 운동 등이 있다.

결론:21세기 미래목회 패러다임으로서의 생명목회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 교리는 구원의 총체적 차원을 함의하고 있다. 개인적, 공동체적 차원뿐만 아니라, 생태적 차원의 구원과 성화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 당시 상황에서 이신칭의 교리는 주로 개인 구원을 중심으로 해석되었고, 그 범위도 교회중심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해석적 관점은 지난 500년 동안 한국교회 안에 그대로 이어져 왔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목회현장에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개인중심적, 교회중심적 이해와 관점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초래한 폐해이다. 산업화, 근대화와 함께 성장지상주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개교회주의와 대교회주의를 낳았고, 복음의 영향력 상실로 인해 목회생태계가 파괴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경제화로 인해 자연 생태계가 파괴됨으로써 전 지구공동체가 생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극복의 대안으로서 대두된 생명목회 담론은 실천신학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이해를 생명망의 관점에서 자연을 포함한 전체 생태계로 확대하고, 인간과 피조계의 조화와 공존 공생으로서의 생명회복을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 생명에 대한 논의는 본질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 영성에 기초해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공동체적 생태적 차원의 영성과 성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 점에서 21세기 미래목회 패러다임으로서의 생명목회는 기존의 전통 패러다임을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개인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교회중심에서 세상과의 연대로, 구원론과 함께 창조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무엇보다도 생명목회를 향한 이 모든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신칭의 교리의 공동체적, 생태적 차원의 영성과 성화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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