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교수, 칼빈 중심 이신칭의 교리를 가장 균형있게 주장하는 학자

정주채 목사(발행인)

필자는 복수의 노회들에서 총회에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질의와 청원이 있다고 해서 반색하였었다. “와아 역시 목회자들이라 이신칭의 교리에 새삼 관심을 갖는구나.”라는 반가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교리가 오남용 되어 한국교회의 타락을 심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교리의 성경적 정당성을 확인하고, 아울러 목회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일이야 말로 종교개혁500주년을 기념하는 이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필자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였다. 믿음만이 아니라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들에 대해 비판적인 뜻으로 이 안건들이 제출되었다는 것을 알고 매우 크게 놀랐다. 역시 고신 목회자들의 수준도 어떤 교파의 목회자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매우 실망하였다. 그것도 미래교회포럼(대표 박은조)의 세미나 강사들 가운데서 가장 균형 있게 강의했던 박영돈 교수의 발표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참에 신대원 교수들 개개인의 입장까지 확인해달라고 청원한 것은 참으로 몽매함의 수준에 가깝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미래교회포럼은 2016년 12월 5,6일 서울연동교회에서 “이신칭의, 이 시대의 면죄부인가?”라는 슬로건을 걸고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그때 놀랍게도 3-400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했었다. 미래교회포럼이 이 문제를 다룬 취지는 복음이 값싼 은혜로 전락하고 있는 오늘날 교회현장에서 이를 반성하며, 이신칭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해보자는 의도였다. 여기에 김세윤 교수, 최갑종 교수, 박영돈 교수가 각각 논문을 발표하였었다.

김 교수는 구원의 문제에서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는 그 여부를 온전히 알 수는 없다는 소위 유보론(자신은 이런 용어를 반대함)을 주장하였고, 최 교수는 성경을 이론화해서 교리로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으로 논란이 일어나면 논리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본문 그대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박 교수는 세 교수들 중에서 가장 균형 있는 주장을 폈다. 그는 주로 칼빈주의 입장에서 주장을 폈다.

그는 “성령 안에서 성화가 진행되는 증거와 열매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도 믿기만 하면 이미 구원받은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것은 교인들을 무서운 자기기만과 방종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이어 “칼빈의 공헌은 칭의의 선물적인 특성을 조금도 약화시키지 않고 칭의를 성화에 근거시키지 않으면서도 성화를 구원의 구성요소로 체계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에 따르면, 성화 없는 구원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런 박 교수의 주장이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신학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전도자들의 주장 같아서 참으로 답답하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에서 “오직”을 배타적인 의미로만 이해해서 믿음이 있으면 행위는 뒤따르지 않아도 구원여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상당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심지어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고, 행위로는 상급을 받는 것이라며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복음은 누구든지 예수 믿겠다고 손들고 일어서면 받는 천국티켓처럼 만들어버렸다. 답답하지만 이것이 한국교회 복음주의 혹은 보수주의권의 현실이다. 고신은 이러지 않았다. 우리의 선진들은 바리새파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까지 - 어느 정도는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한 내용들도 있었지만 -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모토로 내세우며 말씀대로의 순종을 항상 강조하였다. 순교신앙의 원조인 손양원 목사나 한상동 목사는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산 사람들이다.

지금은 500년 전과 다르다. 그때는 개혁자들이 로마교와 싸우며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을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의 의와 공도가 무너져버린 지금 이 세대에는 신자들의 책임 있는 행위와 삶을 강조할 때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교리로 비판할 것인가?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상식 아닌가.

타락한 유대교는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을 때 자신들의 교리와 전통에 맞지 않는다며 그를 죽여 버렸다. 지금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란 법이 없다.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재림하신 예수님을 밀폐된 감옥에다 가두어버리자는 결의를 하는 단편소설을 쓴 어느 작가의 생각처럼 그리스도가 밀폐된 교회와 그들이 믿는 교리적 독단론 속에 갇혀 계신지도 모른다.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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