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위한 신학 / Missional Church

서론

김영대 목사

미래학자가 전망하는 다음세대의 한국교회는 암담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현실적인 모습에서 다음세대의 주인공인 주일학교와 중고등부가 쇠퇴하고 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앉아 있지만, 잠재적 비그리스도인의 수가 어느 시대보다 높다는 의견도 있다. 대형교회는 점점 더 비대해져 가는 실정이지만, 중, 소형교회는 자립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와 사상을 선도하던 교회는 때때로 사회의 지적을 받는 모습도 보인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미국 사회에 대한 내부적 분석을 통해서 미국이 더 이상 기독교국가가 아니고, 복음전도가 필요한 피선교지의 현상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부분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미국사회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섞인 다원화 사회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때, 미국에서의 파라다임을 바꿀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것이, 바로 Missional Church이다. ‘선교적 교회론’이란 용어 대신 ‘Missional Church’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mission이 선교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말하기 때문이며, 한국적 실상에서의 바른 번역은 ‘사명적 교회’가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Missional Church는 또한 선교학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 현 시대와 상황을 성령 하나님의 조명으로 잘 이해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성도들을 사명자로 세상 가운데 파송해서, 종국에는, 지역사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인 조직신학에서의 교회론은 교회의 그 존재와 자체에 대한 연구이다. Missional Church는 교회를 구성하게 하셨던 삼위하나님과 교회를 구성하는 신자들의 공동체와 그 사역에 집중한다. 여기서, Missional Church의 논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이점들을 살펴보고, 사역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문제가 될 만한 다양한 논의는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Missional Church에 대한 목회자의 이해를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우려와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Missional Church에 대한 기본적인 개요와 사역에서 어떠한 영향력이 있었는가에 대한 실제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Missio Dei에 대한 논의

Missional Church의 가장 중심 되는 신학인, missio Dei인데, 대다수의 개혁주의적, 보수적 입장에서는 이 용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 교회의 사역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설명에 이 용어가 사용되었고, 소위 ‘사회복음’에 대한 주장에서도, 그 배경이 바로 missio Dei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기능을 축소하고, 교회의 그 의미를 흐리게 하여, 자유주의자들이 마음껏 교회를 난도질하도록 만드는 일에,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Missio Dei는 종교개혁가들이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할 때 사용한 용어이다. 성부께서 인생의 구속을 위해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님의 사역의 대리자인 성도들과의 신비적 연합(Mistica Union)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심을 설명할 때 사용되었다. 선교학에서의 Missio Dei는 Karl Hartenstein이 빌링엔(Willingen) 대회에서의 신학적 성과를 자신의 관점에서 요약할 때, 사용한 용어이다. 선교를 구원 받은 전 피조물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려는 포괄적인 목표를 가지고 아들을 보내심, 곧 missio Dei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 Missio Dei는 결국, 세계와 전 우주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일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선교는 교회의 한 프로그램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교회의 활동의 영역,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호켄다이크에 의해, 사회복음의 영역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다. 영혼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류의 ‘샬롬’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선교들을 주장하면서, 교회와 교회의 전통을 배제한 사역까지 포함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Missional Church에서의 Missio Dei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학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타락하여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알 수 없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자기계시와 현현(Theophany)을 통해서, 인간역사에 개입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계속적인 보내심이, 성경과 상황을 해석하는 기초이다. Missional Church에서의 missio Dei는 종교개혁가들이 말한 ‘하나님의 인간 구원을 위한 보내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삼위일체 신학’이라고 칭함이 더 합당하다. 선교 또는 사명의 근원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보내심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며, 보내심을 받은 자의 사랑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로 표현되었다.

Missional Church에서의 missio Dei는 삼위 하나님과 신비적 연합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의 세상 가운데로의 파송, 즉 보내심에 있다. 영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사회를 향해서, 예배자(Worshiper)와 증인(Witness)로 파송되어, 사회의 변혁과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창조하는 사역을 목적으로 한다.

2. 구약에서의 missio Dei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열정은 끊임없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성경의 처음이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고, 성경의 마지막인 계시록에서 새로운 피조 세계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끝을 맺고 있다. 전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 즉 창조에서 노아 홍수까지와 노아의 기사에서 바벨탑 사건까지의 두 가지 역사적 병행이 나타난다. 이 두 역사를 대조할 때,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아브라함의 부르심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창조 후 아담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과 홍수 후 노아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은 굉장히 비슷하다. 피조물의 번성에 대한 축복(1:22; 8:17), 인간의 생육과 번성에 대한 축복(1:28; 9:1), 다른 피조물을 다스릴 인간(1:28; 9:2), 음식에 대한 말씀(1:29; 9:3), 언약을 맺음(2:17; 9:11), 인간의 타락(3장; 9장), 죄의 영향력으로 타락한 인류, 죄의 관영(6:3; 11:4) 등이다. 전반에서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셨고, 노아의 가족을 통해서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노아 홍수와 병행되는 후반부에서는 심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보게 된다. 이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아브라함의 가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명 받은 이스라엘은, 그들의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복을 통해서 전 세계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선포해야만 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세계의 중심이 애굽으로 복의 실체인 이스라엘 민족을 이주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다.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며, 온 세계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오기를 원하셨다. 출애굽 할 때에는 ‘수많은 잡족’(출12:38)들이 함께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광야 시대의 성막은 애굽사람들에게 받은 보화로 꾸며진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의 시각은 항상 온 세계와 열방을 향해 있었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주적인 통치를 이루시기를 원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자의 사역을 감당해야 했으므로, 모일 때마다 아브라함의 복을 회상해야만 했다. 제사장의 축복에서 이스라엘이 복의 실체가 되기를 간구했다(민 6:24-26). 시편 67편에서, 제사장의 축복을 언급한 후, 이스라엘의 종국적 실체를 설명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7절). 이스라엘은 전 인류의 구원이 이루기까지 복의 실체로 존재하며, 모든 열방과 방백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예배 드리기까지 준비된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자민족 중심주의(Ethnos-centralism)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명을 망각하거나, 힘이 약할 때, 하나님께서 당시의 세계의 중심에 이스라엘을 세워주셨는데, 그것이 애굽으로의 이동과 앗시리아와 바벨론으로의 이동이었다. 이스라엘에 임한 하나님의 복은, 삼위 하나님을 증거되는 방편이었고,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음에 대한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인류 역사에 직접 개입하시게 되었다. 하나님의 열심은 끊임없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자신의 보내심에서 읽을 수 있다.

3. 신약에서의 missio Dei

신약에서의 삼위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구속의 완성을 이루셨다.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완성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그의 교회 위에 부어주셨는데, 삼위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대상으로 사역해 나가신다는 증거가 바로 교회의 설립이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가장 대표적인 missio Dei의 증거이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이 모든 교회 구성원이 체험하게 되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때, 여러 가지의 현상이 있었다. 빽빽한 구름, 바람, 빛, 기이한 소리 그리고 불꽃 등이다. 오순절에 있었던 이 현상은 구약 시내산에서 목격되었던 하나님의 현현과 비견될 수 있다. 하나님의 실재가 각 사람의 머리 위에 각각의 불꽃의 모습으로 임한 모습을 보게 된다.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두 번째로, 오순절의 현상에서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Mistica union)이 이루어졌다.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에는 항상 거리감이 있었다. 오순절의 기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는 신비적 연합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이 신비적 연합의 실체인 성도, 즉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가심을 보여준다. 교회의 사역은 단순히 예배와 친교뿐만 아니라 전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일군으로써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초대교회처럼 인종, 언어, 문화, 지리, 종교의 벽을 넘어 서서 사역해야 하며, 땅 끝까지 하나님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아야 한다.

삼위 하나님의 일군으로써의 성도는 경험적, 세상적 그리고 인간적 기준과 잣대가 아닌,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영성(Spirituality)이 필요하다. 두 가지의 영성을 항상 가져야 하는데, 첫째는 예전적 영성(Liturgical Spirituality)으로 예배자(Worshiper)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는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존재와 실체는 하나님으로 기인됨을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사역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 이유가 삼위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선교적 영성(Missiological Spirituality)으로 증인(Witness)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명은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역에서 그분의 사역을 계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영혼구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가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드러나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 통치 영역에 미쳐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를 통한 사역의 이유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10장과 11장은 종말의 시대에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다. 마지막 심판을 앞둔 시점에 10장과 11장이 위치한다. 최종적 심판 전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의 교회에게 교훈을 주신다. 순교적 사명으로 다시 세상 가운데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교훈이시다.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10:11). 그리스도인은 순교의 제물로 목숨을 잃을지라도(11장) 끝까지 하나님의 통치의 도구로 사명을 다해야 한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세워지기까지 사역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 온(계21:2)다. Missional church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역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이 변혁되어,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피조하신 이 땅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기까지 사역해야 함을 교훈한다. Missional Church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은 전 우주이며, 온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초점을 둔다. 이 사역의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역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4. Missional Church로써의 선교학

1) 비평적 해석학(Critical Hermeneutics)

2 천 년 전에 기술된 성경은 당시와 지금의 시대적 간격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학적 기술이 필요하다. 비평적 해석학은 또 하나의 해석학적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해석학적 도구 위에 하나를 더 첨가하는 것으로, 성령 하나님의 조명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존의 해석학적 진술은 외부자 관점(a view from the outside)이었다면, 비평적 해석학은 내부자 관점(a view from the inside)을 가지는 것이다. David Bosch는 그의 책 Transforming Mission에서 성경 인물의 성령 하나님을 통한 자기정의(Self-definitions)가, 말씀을 해석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도록 성령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그리고 관습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선교에 기초한 자기 정체성을 가졌다. 성령 하나님의 조명으로 새로운 존재로써의 자기 정체성은 유대주의, 바리새인과 종교인들의 세계관을 넘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보게 만들었다. 자기존재에 대한 재인식은 새로운 실체로써의 자기발견이 뒤따르게 되고, 성령 하나님의 도구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비평적 해석학은 초대교회 성도에게 임하였던 동일한 성령 하나님의 조명으로, missio Dei에 바탕한 성경해석과, 세계 가운데 건설되는 영광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역자로써의 자기인식, 그리고 시대와 현상을 읽는 능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 비평적 해석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비적 연합으로 인한 성령 하나님의 조명으로 인한 자기인식으로,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2) 역사이해

대부분의 기독교인의 역사이해는 어거스틴의 두 왕국이 기초하고 있다. 410년에 Goths족의 로마 침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독교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어거스틴의 이 작품을 통해서,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왕국의 대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기까지 계속 지속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 뿐만 아니라 오리겐 또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교회로 국한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Missional Church에서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의 장이며,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바탕이 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주적이며, 제한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 가시고,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더 깊이 보여주신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사건에 수동적, 또는 종속되어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에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 주어진 이 시간은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이고, 개발해 나가야 할 부분들이다. 역사적 사건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문화를 창조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기인된 아름다운 사역들로 채워야 한다. 오늘 이 시간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세상 가운데 드러나야 한다. 역사는 연속적인 하나님의 사역을 진행해 나가시는 사역의 현장이며, 각 시대마다 존재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이어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과 발로 존재해야 한다. 각 시대마다, 자기인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어지는 사역의 의미와 범주를 알게 된다.

3) 해석학적 주체로써의 교회 공동체: Living Document

로마 가톨릭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위를 소수의 사람으로 제한하였다. 개신교에서는 로마 가톨릭만큼의 배타적이지 않지만, 목회자의 고유한 영역이다. Missional Church에서 말하는 해석학적 주체는, 성경을 해석하는 부분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을 분석하는 영역을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시대의 징조와 현상을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으로 분석과 해석을 하며,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의 해석적 공동체(The community of hermeneutics)라고 말했다.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들의 바른 정체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으로써의 성도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닮은 꼴(The Reality of Christ-like)임을 자각하며, 사회의 각 부분에서 증인의 사역을 감당한다. 하나님의 백성, 그 자체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The Living Document)이 되어야 하며, 성령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진행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자신의 삶의 범주에서 영광의 나라를 개척해 나가는 사명을 가진다. 고려신학대학원의 박영돈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월요 강단’이 있는데, 성령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자가 되고, 자신이 위치한 사회에서 영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4) 지역사회에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

Missional Church로써의 사역을 위한 방법론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질문이다. 성도 한 사람이 흩어진 교회로써 사역을 감당할 때, 많은 한계와 어려움이 있다. 지역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건설하고자 할 때, 처음에는 막연하고 암담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교회들의 연합사역이다. 먼저는 사역현장인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Social Research가 필요하다. 사역현장을 세분화하는데, 각 구획들의 인구분포, 교육정도, 범죄율, 종교현황, 소외계층, 교육시설과 행정기관 존재유무 등을 조사한다. 이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필요와 시급한 과제 등을 조사하고, 정서적, 심리적 상황에 대해서도 조사한다. 종합한 자료를 가지고, 지역사회에서의 교회사역 범주를 설정하며, 우선적 사역에 대해서 의논한다. 지역사회에 위치한 각 교회들이 당장에 할 수 있는 사역과 장기적으로 시행할 사역을 구분 짓고, 종합적 사역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교회들의 협력을 도출한다. 적극적인 사역으로, 소외계층과 가난한 자를 섬기는 사역이 있고, 범죄율과 이혼률을 떨어뜨릴 방법을 간구한다. 이러한 사역의 목적은, 교회들의 연합 사역으로 지역사회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나라 건설되도록 하는 것이다. 교회마다 재정, 사역할 인적 자원과 사역의 범주가 다르다. 그래서 연합해서 실행할 사역과 개교회가 실시할 수 있는 사역을 구분해서, 달란트를 쫓아 사역을 실시한다. 그래서 이웃교회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사역의 동지로써 협력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대형교회는 지역사회에 정착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문화에 초점을 맞춘 사역을 추진해서, 그리스도의 임재가 머문 지역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지역사회에 꼭 필요로 하는 시설이나 기관은 공적 지역사회의 기관이나 정부의 공적자원을 투자 받는 것을 고려한다. 교회가 소속된 지역사회는 영광의 하나님 나라의 터전이다. 하나님 백성의 사역을 통해서 기독교 문화에 기초한 지역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삼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한다.

5. 짐바브웨한인교회의 패러다임 변화와 지역사회의 변천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남중부지역에 위치한 나라이다. 영국으로부터 1980년에 독립해서 한 명의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독재국가이다. 아프리카에 남은 영국인들은 주로 농장을 경영하는데, 군부의 힘으로 이들이 소유한 농장을 탈취하려다, 서구로부터 무역규제를 받고 있다. 2009년, 콜레라가 창궐해서 2,500명이 사망할 정도로, 모든 면이 낙후된 나라이다. 그 나라에 100여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으며, 한국 대사관이 있는데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그리고 보츠와나를 담당하고 있다.

2009년, 짐바브웨한인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 콜레라의 여파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공용화폐를 미국 달러로 바뀐 직후라 상황이 조금 개선된 시점이었다. 한인교회는 전임 목사가 떠난 후, 교회가 해산된 상태였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의 정은일 목사님과 황재길 장로님께서 설득해서 예배 모임을 가지기로 하고, 3가정이 목사를 청빙했다. 한인사회도 교회만큼 파벌이 심했고, 대사관에서는 교회에는 가지 말 것을 권할 정도로 이미지가 좋지 못했다.

1) 한인교회의 패러다임 변화

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교회가 한 목적을 목표로 재정립되었다. 자기 의를 내세웠던 지난 시절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성경 공부를 시작했는데, 모임 시간과 모일 때의 관계의 어색함이 있어서, 매일 저녁마다 한 가정씩 방문해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눔 시간은 주변사람들을 향한 성토의 장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말씀과 은혜로운 삶을 나누게 되었다. 성령 안에서 자기 실체에 대한 재정립(self-definition)이 있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기점으로 새로운 삶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성령 하나님 안에서의 개인의 정체성의 발견은 삶의 변화로 나타났다. 짐바브웨 한인사회의 복음화를 위해서, 각 성도 한 가정이 믿지 않는 한 가정을 섬기기로 했다. 식사대접과 문안인사, 선물 등으로 교류를 하면서, 섬김의 가정을 늘려갔다.

교회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던 대사관에서 시행하는 행사에 협조했고, 목사가 선관위 위원으로 섬겼으며, 한국정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도 적극 섬겼다. 대사님과 참사관님을 포함해서 다수의 대사관 직원들이 예배에 출석하게 되었다.

아프리카미래재단(Africa Future Foundation)에서 아프리카에 Teaching Hospital을 세우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방문했다. 짐바브웨에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서 대사관, 한인회와 협력해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AFF가 짐바브웨에서 사역을 시작하기로 한 후, 한인사회에서의 교회의 위상은 높아졌다. 연 2회의 의료선교팀을 섬겼고, 주변에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을 섬기는 교회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흩어진 하나님의 성소로써의 사역을 시작했다. 현지 직원들을 전도하기 시작했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 늘어났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는 부분을 영적으로 정리해 나갔고, 섬김과 사랑의 예표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었지만, 매월 500달러를 사역하는 선교사님께 헌금한 집사님도 있었고, 사비로 현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더 이상의 분쟁과 다툼은 없었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드려진 삶을 실천했다.

2) 지역사회의 변화

한인공동체 안에 한인도서관과 한글학교가 있었다. 한인도서관이 있던 한인 카페가 문을 닫게 되자, 도서관을 목사관 별체로 옮겼다. 자연스럽게 한인들과 교제하며 섬길 수 있는 장이 열리게 되었다. 한글학교도 적극 협조해서, 목사가 교사부터 시작해서 교장으로 섬기기도 했다. 학생들을 섬기면서 자연스럽게 학부모와의 교류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인행사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글학교와 한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중국식당이나 호텔의 컨퍼런스 홀을 빌려서 행사를 했었다. 예배와 지역사회를 섬기는 센터로써의 교회를 구상했고, 교회건축을 위한 부지를 매입하였다. 예배당 건축에 교회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의 건축헌금도 있었다.

좀 더 지역사회를 잘 섬기기 위해서 전 교민을 대상으로, 한 달에 2-3회의 식탁 코이노니아가 목사관에서 있었다. 처음에는 참석 인원이 교회성도의 숫자였지만, 점점 늘어나서 거의 모든 교민들이 참석하게 되었다. 물론, 목사관의 별채에서는 음주를 하시는 분들의 2부 모임이 있었지만, 담배를 소지하고도 많은 분들이 주일예배의 자리로 나왔다. 짐바브웨 한인사회의 구성원의 80% 정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되었을 때, 한인회 행사에서 대사님의 축사와 한인교회의 목사의 기도로 시작하게 되었다. 한글학교는 예배부터 드리게 되었다. 작은 공동체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선포하고 있으며, 한인을 넘어 아프리카에 있는 모든 족속까지 이르는 사역을 기대한다.

6. 결론

Missional Church는 아직도 계속 논의 중인 주제이다. 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신, 인류 구원을 위한 열정에 기초하고 있으며,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건설을 위한 하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임을 천명한다. 하나님 백성으로써의 성도는 성령 하나님의 충만함에 기초해서 예배자와 증인으로 세움을 입으며, 흩어진 교회의 개체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함을 목적으로 한다. 정적이고 불변하는 정체성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삶과 변혁하는 제자(Radical Disciple)의 사명을 가지고, 시대를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나라를 세우는데 뜻을 두고 있다. 사역을 실천하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신비적 연합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실체임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하게 되는 진정한 성전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암울한 시대적 현상으로 점점 더 피폐해져 가는 고국교회에 Missional Church의 영성을 가진 많은 사역자들로 이 땅에 다시 한 번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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