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눌런스( Patrick Nullens) 총장, 고신대학교에서 루터의 소명윤리(Luther on Vocational Ethics) 특강

고신대학교(전광식 총장)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서 2017년 4월 25일(화) 9시부터 11시30분까지 벨기에 루뱅 복음주의 신학대학Evangelical Theological Faculty in Leuven/ 이하 ETF) 총장 패트릭 눌런스( Patrick Nullens) 교수를 모시고, "루터의 소명윤리(Luther on Vocational Ethics)"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월드미션센터 305 강의실에 다수의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들과 한국, 몽골과 필리핀 학생이 모였다. 약 1시간 가까이 ETF 학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연구중심의 신학교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석, 박사 과정에서 수학하고 있으며, 십 만권이 넘는 신학도서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벨기에의 루뱅은 유럽의 중심으로 런던과 파리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네델란드에서 수학하러 오며, Kampen 대학교와도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 ETF는 저렴한 학비와 영어로 석, 박사 과정을 이수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루뱅 복음주의 신학대학원(Evangelical Theological Faculty in Leuven) 전경

이신칭의, 자본주의 윤리 그리고 현대의 윤리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었을 때, 루터의 이신칭의 사상이 어떻게 윤리적인 주제가 되며, 루터의 사상이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를 통해서 어떻게 현대에 적용될 것인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독일 사회학자 막스 웨버(Max Weber)가 말한, 루터의 종교개혁이 유럽의 자본주의 시작이라는 주장과 함께, 자본이 중심된 현대에 어떻게 루터의 주장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설명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으로써의 사랑을 실천해야 함과 몰트만(Jurgen Moltmann)의 희망(Hope)을 통해서 세속화 가운데 있는 현대에 루터의 ‘오직 믿음’을 윤리적으로 적용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중세의 종교개혁가들의 이론을 현대적 입장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사역에 그 가르침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강의였다. 강의하는 동안, 모든 학생들과 청강생들은 숨죽이며, 강의에 매료되었다. 특히, 중교개혁가의 주장이 현대 상황에 적절한 적용과 실천까지 적용하며, ‘오직 믿음’이란 루터의 주장을 윤리학적 접근으로 현대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독특한 강의였다. 아래는 Patrick Nullens 총장의 강의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서술한다.

고신대학교 월드미션센터 305 강의실에 다수의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들과 한국, 몽골과 필리핀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강좌가 열렸다. (고신대학교 월드미션센터 전경)

서론: 과학, 기술,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오직 믿음’의 위치는

종교개혁은 5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이고, 한국은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이다. 종교개혁이 있었던 중세와 현재는 다양한 차이가 있다. 면죄부나 연옥과 같은 내용은 사라진 지 오래고, 유아의 3분의 1이 5세 이전에 죽고, 평균 수명이 48세라는 자료도 현대와 많이 다르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루터의 중심 메시지인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명제가 적절하다면, 지금 다시 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면죄부와 연옥과 같은 것은 사라졌지만, 현대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3가지, 즉 과학, 기술 그리고 자본(STC: Science, Technology and Capitalism)이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 특히, 한국은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나는 루터의 두 가지 사상이 21세기 기독교 윤리에 높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그의 ‘오직 믿음(sola fide)’의 메시지이고, 두 번째는, 그의 특별 소명에 대한 이해(독일어로 Beruf)이다. 이 두 가지가 책임과 희망이라는 실천적인 모습으로 나타남을 설명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유추하기 위해서 본회퍼와 독일 사회학자 웨버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요점은 STC(과학, 기술, 자본)에 의해서 이끌리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기독교인의 윤리적 삶을 실천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1. 교회, 그리고 영적 혁명

종교개혁은 신적인 능력에 의한 민중혁명이다. ‘오직 성경’과 ‘오직 믿음’은 중세의 구조와 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특히, 사회, 교회론 그리고 영성/윤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루터는 특별한 종교적 소명의 거룩함을 거부하고, 일반 직업적 부르심과 동일하게 취급하였다. 농부의 노동이든, 가정주부의 집안일이든, 사제의 일이든, 오직 믿음으로 행함이 중요하며, 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다. 이러한 ‘오직 믿음’은 유럽에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사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직업으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은, 성당을 중심한 제도적 윤리의 종말과 일반 성도중심의 윤리를 고양시키게 되었다. 본회퍼는 루터의 일상의 영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세상 가운데서 중세 수도승과 같은 전적인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일상의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루터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자기 언어로 된 성경읽기를 권했다. 성직자와 평신도에 대한 특별한 구분이 없게 된, 이 사실은 신학적, 정치적(또는 사회적) 혁명이었다. 평신도의 성경읽기를 통해서 개인 영성을 경험하게 되었고, 성직자들의 영적 지배에서 해방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은 개인적 신자들의 위상을 높였고, 로마 카톨릭교회의 약화를 가져 왔다. 영성과 윤리에서도 혁신적이었는데, 종교개혁으로 유럽에서 수도원 운동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토마스 아켐프스(Thomas a Kempis)의 영성에 강조된 영적인 내적 삶과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는 유럽의 도시화 상황에서는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루터의 하나님의 나라로 향한 내적 부르심과 세상에서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외적 부르심으로, 그리스도인은 종교적 거룩한 삶과 세상에서의 일상의 삶에 대한 차이가 없어졌다. 모두가 믿음 안에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막스 웨버에 의하면, 루터의 소명에 대한 주장으로, 유럽에서 부와 자본주의가 시작되었고, 사회적, 신학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고신대학교에서 열강하는 패트릭 눌런스/Patrick Nullens 총장

2. 이신칭의: 개신교 윤리는 칭의의 선물에 의한 도덕성이다

기존의 전통적이고 철학적 윤리학에 비해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에 의한 종교개혁의 윤리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철학적 윤리학은 실천 되어져야 할 목표에 의해서 규정되지만, 개신교 윤리는 칭의의 선물에 의한 도덕성이다. 개신교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오직 믿음’은 오직 구원에만 작용하는 신적 선언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루터신학의 가장 핵심은 믿음자체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이신칭의는 믿음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지칭해야만 한다. 그래서 믿음은 반드시 임재(Participation)라는 말로 설명되어져야 하며, Theosis(하나님과 연합), 또는, Mystica Union(신비적 연합)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에 의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고, 믿음 속에 존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속성이신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믿음은 사랑을 통한 우리 삶에 역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중심이며, 구원으로 이끄는 믿음이다. ‘오직 믿음’은 세상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한다. ‘오직 믿음’은 임재(Participation)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설명된다.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이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3. 루터의 소명

루터는 두 왕국에 대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곳이고, 다른 하나는 비기독교인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두 왕국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서 소명의 중요성은, 그리스도인은 타자를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 부름을 받았으며, 이 세상에서 사랑 안에서 바른 교제를 위한 존재로 세움을 입었다. 우리 이웃의 큰 유익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함축된 소명을 통해서 그 두 왕국은 연결된다. 도성인신이 이를 가장 잘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핵심 동기는 바로 사랑이고, 소명은 믿음으로 행해지는 이웃을 향한 사역이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하고, 병든 자와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향한 헌신을 위해 부름 받은 존재이다.

4. 직업적 책임감

책임에 대해 본회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강조하는, 기독 중심적 접근을 선호한다. 소명은 그리스도의 부심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지며, 우리가 처한 사회에서의 책임은 신학적, 이성적, 인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소명에서 찾아야 한다. 본회퍼에 의하면, 소명은 우리의 사회적 삶에서 책임의 근거로 정의한다. “소명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현장에서 반응하는 것이고, 삶을 통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본헤퍼의 기독중심주의는 우리의 직업이나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 닮기(imitation Christi)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실체의 임재(Participation)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실체를 경험하고, 세상의 실체 또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헌신된 삶으로 타자를 위한 삶(Being-there-for-man)이 되어야 한다.

5. 루터의 소명과 희망의 신학

우리의 소명과 윤리는 희망으로 가득 차야 한다. 희망의 신학과 윤리는 몰트만(jurgen Moltmann)에 의해서 설명되었다. “현실주의는 무엇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실존에 대한 인식을 가르치지만, 희망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잠재성에 대한 인식을 일깨운다.” 몰트만의 사상 전반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지만, 책임은 희망, 변화 그리고 잠재성을 수반한다. 예측할 수 없고, 복잡한 상황에서 책임을 다하려고 할 때, 우리는 희망을 말해야 한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소망 없는 현재의 상황에 가져와야 하며, 그 영광을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신앙하는 궁극적 나라에 이러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특별한 상황 가운데 희망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결론: 오직 믿음은 타자를 위한 소명이다

종교개혁이 있은 지, 500년이 지났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서 그들의 부르심을 자각하고 일하고 있다. 그들은 STC(과학, 기술, 자본)의 세계의 한 부분에서 책임과 희망을 찾고 추구하고 있다. ‘오직 믿음’을 강조한 루터의 부르짖음을 통해, 중세의 사회적, 교회적 그리고 영적인 변혁을 일으킨 그 영향력이, 오늘 우리의 삶에도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오직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고, 그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도하심을 설명한다. ‘오직 믿음’은 세속적 세상에서, 이 세상을 변혁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특수한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의와 사랑을 실천하도록, 특별한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이신칭의를 통해 본회퍼가 강조한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의 소명에 나타난다. ‘오직 믿음’으로 성도들은 일상 속에서 타자를 위한 존재(Being-there-for-the-other)로 살아가야 한다.

이 기사는 영어로 진행된 특강 현장에 김영대 목사가 참석해서 작성했다. 김영대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스텔렌보쉬대학에서 선교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남아공 자유대학에서 선교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그는 짐바브웨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섬겼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인도 선교사로 헌신하다가 인도 정부에 의해 추방되었다. - 편집장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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