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차이는 없고 직무의 차이는 있다

제21회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회 세미나가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한국교회의 개혁과제를 이야기한다”는 주제로 13일부터 14일까지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교회협력센터(새문안홀)에서 열렸다.

세미나 현장

임국희 교수(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장)는 이번 세미나는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한국교회의 개혁과제로 ‘만인제사장’, ‘교회의 정치제도와 직제’, 그리고 ‘교회의 사회적 신뢰회복’이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첫째 날 여는 예배에서 이장호 목사(바른교회아카데미 원장/ 높은뜻광성교회 담임)는 베드로전서2:4-5의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교회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프로젝트나 조직도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강조한 이 목사는 모퉁이돌 이신 예수 안에 산돌로 지어져 가는 살아있는 교회의 비전을 함께 품자고 설교했다.

바른교회아카데미 이사장 정주채 목사가 이장호 목사의 원장 취임을 축하하고 있다.

정주채 목사(바른교회아카데미 이사장/ 향상교회 은퇴)는 이사회를 통해 바른교회아카데미 원장이었던 김동호 목사의 후임으로 이장호 목사를 선임했음을 밝히면서, 학자이면서 목회자인 이장호 목사가 바른교회아카데미를 더욱 발전시킬 적임자라고 전했다. 예배 후에 첫째 날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만인제사장론은 신학무용론이 아니다

발제하는 김판임 교수

김판임 교수(세종대)는 “루터의 만인제사장론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첫 번째 발표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만인제사장론에 대한 한국교회의 오해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 ‘목사 없이도 교회할 수 있다.’ ‘목사가 아닌 장로도 노회장 총회장이 되어 교회를 대표할 수 있다.’ ‘가나안 교인들 교회가지 않아도 믿음을 지키며 신앙생활 할 수 있다.’ 등과 같은 만인제사장론에 대한 오해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런 오해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서 만인제사장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즉 만인제사장론이란 신학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사제가 된 사람만이 아니라, 세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도 성경을 직접 읽고, 성경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루터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제, 특히 로마 교황청의 오류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그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야 할 과제가 비사제인 세속적 권력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주지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교회 안에서 같은 일을 맡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만인제사장론에 대한 오해이다.

평신도를 사제직으로 끌어올려 만인제사장설을 유지하라!

홍지훈 교수(호남신대, 종교개혁사)는 “마르틴 루터와 요한 칼빈의 <만인제사장론>”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홍 교수도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에 대한 오해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루터는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고함』에서 포로가 되어 사막 한 가운데 고립된 경건한 크리스천 무리가 자기들 중의 한 사람을 택하여, 세례와 성찬과 사죄선언과 설교의 직무를 맡긴다면, 이것은 교황이나 주교가 서품한 사제와 똑같다고 말한다. 루터가 말하는 만인사제직은 사제와 세례교인이 언제나 똑같이 사제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 사막 한 복판과 같은 "불가피한 경우에는"(in der Not) 어떤 사람이라도 세례를 베풀고 사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발제하는 홍지훈 교수

홍 교수는 로마교회를 비판한 루터 주장의 핵심은 “‘제후이건, 일반 신도이건 크리스천 신분에 관한 차이는 전혀 없으므로, 영적 계급이 세속적 계급 보다 우월하다는 로마교회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이며, 따라서 크리스천 ‘신분’(Stand)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직무’(Amt 혹은 Werk)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루터의 논문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인용하면서, 모든 사람이 사제라는 의미를 “첫째,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둘째, 다른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자격을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홍 교수는 루터는 신분에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똑 같은 사제임을 일관되게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사역(dienen)하거나, 직책을 수행(verwalten)하거나, 설교(predigen)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칼빈의 만인제사장론도 루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가면이라고 부른다. 칼빈이 세상의 하나님의 연극 극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그리스도인의 얼굴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뜻이며, 만인제사장설의 기본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결코 목회자를 사제직의 위치에서 끌어내려 만인사제직을 완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를 사제직으로 끌어올려 만인제사장설을 유지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해야 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설교자라고 하였다. 강단에서 누구나 설교직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복음을 삶속에서 전하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설교자라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만인제사장론의 현대적 수용은 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이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실제적인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있었다는 점도 아울러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종교인구 1위, 한 방에 훅가는 말기 단계 일 수 있다

지형은 목사는 “만인제사장론과 21세기의 목회 상황”을 제목으로 발표하며, 만인제사장론으로 권위주의 병폐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섬긴다는 헬라어 ‘디아코네인, 디아코니아’는 노예와 연관하여 쓰인 말이었다.”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자세가 권위주의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님의 충격 요법이라고 했다.

발제하는 지형은 목사

지 목사에 의하면, 예수님의 섬김은 “오늘날로 말하면 총회장, 지방회장, 노회장을 ‘총회종, 지방회종, 노회종’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같다. 신학대학 안의 총장, 대학원장, 교무처장 등을 ‘가장낮은종, 대학원종, 교무처종’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같다.”

지 목사는 만인제사장론의 현대적 적용으로 한국교회의 ‘말씀묵상’ 운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또한 “만인제사장론과 연관된 한국 교회의 사역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제자 훈련이라고 지적하며,” ‘사랑의교회 사태’로 제자 훈련이란 단어는 한국 교회의 암초가 되었지만 어느 특정한 방식의 제자 훈련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본질적 의미의 제자 훈련은 늘 중요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목회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가 주님의 제자며 사역자라는 자각과 실천에 한국 교회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했다.

특히 지 목사는 2015년의 정부 인구센서스 통계로 기독교 인구가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종교인구 1위가 된 사건이 한 종교의 말기적 현상일 수 도 있다고 진단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기독교의 찬란한 정점에 있었던 러시아가 혁명으로 한 방에 가버렸던 역사를 지적하며, “교회와 신학이 사회와 역사 변동의 주변부에서 안주한다면 종교 인구 1위는 속된 말로 기독교가 ‘한 방에 훅 가는’ 말기적 단계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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