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연대 신년 특강 발제문

박종수(前주러공사, (사)박종수경제연구소 이사장)

1. 트럼프 정부 출범의 함의

《트럼푸틴 시대 개막》

첫째, G-2 슈퍼지도자의 국제무대 등장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1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인물로 4년 연속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선정했다. 선정배경으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물론 시리아, 미국 대선에서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계속 얻고 있다”며 “전통적인 국제규범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 그의 영향력은 최근 수년간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미국의 45대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도 2위로 부상했다.

둘째, 트럼프와 푸틴에게는 공통분모가 적지않다. 우선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다. 두 지도자는 민족주의자이면서도 실용주의자이다. 개인적 친분을 중시한다. 추상적인 것 보다는 구체적 성과를 중시한다.

셋째, G-2 지도자는 최대 7년간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다. 트럼프(70세)는 적어도 2021년, 재선할 경우에 2025년까지 미국을 이끌고, 푸틴(64세)은 이변이 없는 한 2018년 대선에 승리, 2024년까지 러시아를 책임진다. 두 지도자는 미국의 대선기간중 상호 호감을 드러내며 역설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와 클린턴 후보를 곤궁에 몰아넣는 공동보조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넷째,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민주당 보다는 공화당 출신 지도자와 더 협조적이었다. 대표적으로 브레즈네프와 닉슨, 고르바초프와 레이건과의 관계다. 트럼프도 순수한 공화당출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당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그 이외에도 트럼프 당선인은 초대 국무장관으로 친(親)러시아의 석유 거물인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낙점했다. 틸러슨은 푸틴과 최소 17년간 인연을 쌓아온 친구로 알려졌다. 2012년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정훈장도 받았다. 특히 틸러슨은 미국의 대(對) 러시아 제재에도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 비영리 공직윤리 감시기구인 퍼블릭 시티즌의 로버트 와이즈먼 대표는 “그가 '엑손모빌 DNA'로 러시아를 바라볼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냉전 이후 최악의 관계에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신(新)밀월시대를 맞을지 주목된다.

 

《국제 역학관계 변화》

첫째, 트럼프 당선인은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다. 선거 과정에서 ‘공세적 개입주의와 자유무역주의’를 강조하는 전통적 공화당의 정책기조와는 달리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입각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제사회 분쟁에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對러시아 경제제재 해제나 우크라이나 지원공약을 검토할 수 있고, 다른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증가하지 않으면 미국은 NATO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감미롭지만 폴란드, 발트국가 등 러시아의 위협일선에 선 국가들에게는 對미 불신을 안겨주게 된다. 이들 신규 NATO회원국들은 그간 미국의 글로벌 안정화 활동에 중요한 파트너들이었다. 과연 후보시절 정책제언을 대통령이 되어서 국가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지, 어느정도 가능한 지는 미지수다.

둘째, 트럼프 당선인은 ‘親러反중’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과거 닉슨 정권때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던 키신저로부터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자문을 받고있다. 키신저는 1970년대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활용하는 외교전략 일환으로 중소 분쟁 이후 중국과의 관개개선을 시도했다. 당시 미·중 사이에서 형성된 공감대는 1971년 미국 탁구선수단이 중국을 방문하는 핑퐁외교로 이어졌다. 닉슨 대통령은 이듬해 키신저와 함께 중국을 방문해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이 요구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마침내 1979년에는 미·중 수교에 이르게 되었다. 키신저는 역사적 방중을 앞둔 닉슨 대통령에게 “20년쯤 뒤 당신의 후계자가 당신만큼 현명하다면 중국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는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키신저의 45년전 예언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재조명 되고 있다.

현재의 트럼프와 푸틴이 만든 미·러 밀월구도에서 중국은 러시아에게 제시할만한 카드가 별로 없어 보인다. 親러 성향의 트럼프는 인도까지 對중 압박의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이를 타계할 묘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영토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언제든 무력충돌로 비화될 수 있는 문제다. 인도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과는 반대로 러시아와는 오랜 우의를 다져온 관계다. 2000년대로 진입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해 양국 사이 전략적 동반자관계 선언을 발표했으며, 방산과 원자력 분야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소련 무기기술을 토대로 인도는 무기 능력 고도화에 꾸준히 힘을 쏟고 있는 등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셋째, 트럼프 당선인은 다자외교보다 지도자간 일대일 회담을 선호할 것이다. 역대 공화당 대통령의 전례를 답습해 아이젠하워-흐루시초프, 닉슨-마오쩌둥(毛澤東), 레이건-고르바초프 관계처럼 협상을 통해 국제관계를 풀어나갈 것이다. 한편, 혹자는 트럼프 당선자의 대외정책을 헨리 키신저와 앤드루 잭슨의 접점에서 찾기도 한다. 키신저는 소련의 팽창을 중국과의 데탕트를 통해 억제한다는 구상을 만들어낸 전략가였고, 잭슨은 미국의 제7대 대통령으로서 장군 출신다운 저돌성으로 협상보다는 무력을 즐겨 사용했던 장본인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밀월관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구사하면서 테러단체나 국지적 도발에 대해서는 먼저 쏘고 나중에 얘기하는 스타일로 대처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크라이나 개입, 시리아 개입, 전략무기 현대화, 인권침해 등 “러시아의 행동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 의회, 공화당, 군부,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다수 인사들이 제동을 걸 수도 있다. 플린 국가안보보좌관과 틸러슨 국무장관을 제외하면 외교안보 내정자 다수가 과거에 강력한 對러시아 불신을 피력해 왔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 변화》

첫째, 한반도 주변 4강의 지도자가 모두 ‘스트롱맨(Strong man)’이다. 미국의 트럼프와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일본의 아베는 공통적으로 민주적 절차 보다는 힘을 과시하는 이른바 ‘스트롱맨(Strong man) 리더쉽’의 표본들이다. 이들은 외부의 적을 통해 내부를 결속시키고 국제기구가 아닌 맨투맨 외교를 선호하며 민족주의 선동을 통해 대중들의 추종을 끌어 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향후 동북아를 비롯한 국제정세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예측불허의 정글과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 한복판에 한반도가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나, 중국에 대한 통상압력, 대만과의 새로운 관계 탐색, 러시아에 대한 과거와 다른 인식과 관계강화 시사,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폐기 등 향후 다룰 수 있는 카드들을 선보이고 있다. 미·중 및 미·러 관계의 ‘리셋’과 더불어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한·미·일 군사 협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는 동북아 안보 딜레마의 심화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문제를 놓고 미북간 갈등이 노정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16년에는 수소탄 실험과 핵폭탄 소형화에도 성공했다면서 이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완성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이는 국제사회에 대한 군사적 도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직 ICBM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무척 대화하고 싶다는 점을 강조한 북한식 표현이라도 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의 ICBM 보유에 대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선거기간 내내 김정은을 ‘미치광이’로 부르면서 김정일 보다 더 불안정한 인물로 규정했다. 또한 “북한 문제는 중국이 풀어야 한다. 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고 언급했다. 이는 중국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본격적으로 이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는 초기에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있지만,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인정해 달라는 주장을 계속할 경우 고강도 검증을 전제로 북한 핵폐기를 위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이념을 강조했던 전직 대통령과는 달리 비즈니스 방식으로 외교를 바라볼 트럼프 당선자에겐 북한 인권보다 북핵 해결을 위한 비용과 북핵 동결을 통한 이득 사이의 손익계산이 앞설 것이다.

셋째,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과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방위비 분담 문제는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전시작전권 전환, 사드 한반도 배치, 그리고 핵무장과 연관되어 있다. 2011년부터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한국의 경제가 세계 10위권에 들어왔으니, 경제력에 걸맞은 비용을 분담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에 방위분담금 증액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 간의 분담금 재협상은 2018년에 시작될 것이므로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한편 주한미군 철수와 전작권 조기 전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패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과 중국 견제를 위해 주한(주일) 미군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으며, 전작권 전환을 조기에 이양할 가능성이 높지않다. 같은 맥락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철회할 가능성도 낮다고 판단된다. 또한 한국(일본)의 핵무장도 비/반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용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브렉시트(Brexit)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자국의 국내문제 우선해결과 국익중심의 새로운 고립주의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어 지역질서와 국제질서에 새로운 변화를 야기시키게 될 것이며,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과 과제를 제시할 것이다.

 

2. 러시아의 대외정책 기조

첫째, 푸틴 대통령은 적어도 트럼프 당선전까지 미국의 단일패권을 강하게 비난해 왔다. 포스트소비에트 공간 내 친미정권 수립은 푸틴 정부가 미국과 서방측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계기가 되었다. 푸틴 3기에도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은 지속되었고, NATO의 체코와 폴란드 MD 배치 계획을 놓고 미러간 갈등이 폭발하였다. 2011년말 푸틴 행정부를 뒤흔든 모스크바내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배후로 미국이 지목되었고, 2012년 미국이 러시아내 인권문제를 놓고 마그니츠키 법을 제정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수준높고 지속적인 공세는 푸틴 정부에 중대한 위협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미국의 대러 공세 배경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공동전선으로 미국과 맞서는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라시아내 패권적 지위에 있는 중러 양국이 서로 갈등관계에 있거나 아니면 러시아가 서구적 가치관과 경제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희망했다. 러시아의 친서구적 편입은 기존 푸틴체제의 붕괴를 상정한다. 그래서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적 고립과 압박정책으로 러시아의 국내정치 변동을 유도했다. 2014년 서방진영은 크림병합과 우크라이나내전 개입을 명분삼아 對러시아 경제제재 조치를 강행했다. 그 결과 러시아의 루블화가 폭락하고 국제유가도 지속 하락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점점 악화되었다.

둘째, 탈서구화의 일환으로 푸틴의 신동방정책과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출범시키다. 2014년 3월 18일 크림병합 후 발표된 푸틴의 新외교독트린은 이후 전개되는 러시아의 외교적 군사적 행보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新독트린의 주요내용은 러시아가 더이상 유럽의 일부가 아니고, 소위 서구가 주장하는 보편적 가치들은 러시아에 적용되기 어려우며, 기존의 국제기구와 국제법에 상관없이 러시아가 강대국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포스트소비에트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력을 재확인한 것으로, 이를 위해 2015년 1월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출범시켰다. 세계 패권구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수세적 세계전략이 공세적으로 바뀐 것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전통적 유럽 위주의 외교와 국가정책에서 선회하여 아시아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남북한-러 삼각협력 추진과 러일 경제협력 강화 등으로 일컬어지는 신동방정책이 추진되었다. 러시아는 동방포럼 정례화, 블라디보스톡 자유항법, 선도개발구역 지정 및 토지무상공급 헥타르법 등을 제정하여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셋째, 푸틴 행정부는 최근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한발 물러섰다. 푸틴 대통령은 2016년 11월 30일 IMEMO 창립 60주년을 맞아 출범한 ‘프리마코프 리딩’ 포럼에서 자신의 세계관과 국제정세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소련 해체의 후폭풍으로 전세계에 몰아닥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에 대해 경고하고 다극 체제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시리아를 의식한 듯 중동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옹호했다. 특히 냉전 종식 후 일극주의에 맞서 ‘러시아․중국․인도’ 3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프리마코프의 견해가 초기의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BRICS로 승화되면서 국제사회에서 중요하게 기능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미국 중심주의와 일극주의, 중동사태 등에 대한 개입, 국제법과 국제규범 문제, 나토 확대, 나토-러시아 관계의 미래, 대미 관계와 對유럽 관계 재설정 등에 대한 희망과 진단을 피력했다. 푸틴의 연설은 2007년 2월 뮌헨 안보포럼에서 내놓은 서구와 러시아의 관계 재설정 필요성을 강조한 연설과 비슷하면서도 대비됐다. 그당시 푸틴은 나토의 확대, 유엔 안보리와 상관없는 미국 주도의 일방주의적 서방동맹의 군사행동 등에 대해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프리마코프 리딩’ 포럼 연설은 미국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과 설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공세보다는 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푸틴은 “현재 세계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들은 미국과 러시아 간의 진지한 협력이 없이는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면서 최근 트럼프 당선인과의 전화 통화를 상기하며 “우리는 현재 불만족스러운 양국 관계의 개선을 위해 무엇인가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가 서방과 미국의 고립 시도에 갇히지 않을 것이며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원칙을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3. 트럼프 출범이후 러시아의 對한반도 정책

푸틴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의 기본은 러시아의 국익 추구와 영향력 강화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지경학적․지전략적 요소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 러시아의 입장이다. 남한과는 경제협력 요인, 북한과는 군사안보 요인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다.

 

《러시아의 대북관계》

첫째, 러북간 경협에 있어서 최대 장애요소가 제거되었다. 즉, 소련 붕괴 이후 약 20년간 답보상태에 있었던 북한의 대러 채무문제가 해결되었다. 북한측은 채무총액의 90%까지 탕감받았고 잔여액 10억 달러도 무이자로 장기상환하는 실속을 챙겼다. 러시아측으로서는 소련 당시의 사회주의 국가에 제공했던 1,100억 달러 채권을 대부분 탕감해 주었듯이, 북한에게도 탕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탕감조건으로 대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확보했다. 다만 서방의 對러 경제제재 조치 및 UN안보리의 대북 제재조치가 양측에 공통적인 장애요인이다.

북러간 경제협력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감지되는 북한측의 긍정적 신호는, 1) 북한은 더 이상 폐쇄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문을 닫으면 나라가 망하고, 문을 열면 김정은 정권이 망한다’는 김정은 이복형 김정남의 지적은 북한경제의 현주소를 대변해 준다. 다수 인민들은 정부의 배급제 보다는 장마당 거래를 통한 자구책에 의존하고 있다. 소련의 말기상황과 유사하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한계에 이미 이르렀다. 2) 어차피 개혁개방을 해야할 상황에서 북한이 택할 수 있는 모델은 푸틴식 모델이다. 2001년 8월 김정일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북한의 경제방향을 서구식이 아닌 러시아식으로 선회시키겠다.’ ‘러시아식이 비록 질적으로는 열악할지 모르지만 비용이 덜 들고 북한의 조건에 접목시키는데 용이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푸틴과의 비공식 크렘린 오찬에서도 ‘개혁은 북한의 실정에 맞아야 하고, 전쟁이나 유혈없이 모든 것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합리적이어야 한다’며 러시아의 개혁방식을 선호모델로 인식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경제개혁 화두라고 할 수 있다.

북한측은 러시아에 경협강화 등 교류를 지속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내 자국 인력송출 숫자를 늘려줄 것을 지속 요구하고 있으며, 러시아 관광객의 북한 유치에도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자전거 관광과 의료 관광, 스포츠∙산악 관광을 위한 다양한 여행 코스, 태권도 교습 기회 제공, 비자발급 간소화 및 북한 신관광상품 개발을 적극 홍보하면서 러시아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이다.

둘째, 북한의 중러 등거리외교에도 불구, 최근 러시아가 대북 영향력에 우위를 점하는 추세다. 북한의 대외무역은 여전히 절대적인 대중국 편중현상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탈중국화 시도는 여러 분야에서 감지되고 있다.

북한은 2017년 푸틴의 신년사를 시진핑 신년사보다 먼저, 그리고 비중있게 보도했다. 즉 푸틴 신년사는 1월 3일자 노동신문에 게재했고 중앙방송에는 485자 분량으로 소개했다. 반면 시진핑 신년사는 1월 4일 중앙방송에서 태국․미얀마․남아공 등 다른나라 정상들과 묶어서 보도했고 보도분량도 178자로 푸틴의 절반 수준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에게 연하장을 보낸 각국 지도자들을 소개하는 기사에서도 지난 2015년부터 3년 연속으로 러시아를 중국보다 먼저 호명하고 있다.

북한 주재 외교관 숫자도 중국은 줄이고 러시아는 늘렸다.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수는 2013년 11명에서 2016년말 17명으로 늘었다. 반면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 직원수는 2015년 46명에서 2016년 7월에 38명으로 줄었다.

셋째, 러북 양측은 정부 차원에서 원만한 협력을 진행중이다. 러시아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식량계획(WFP)의 대북 사업에 미화 3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중국도 2013년부터 3년간 100만 달러를 지원했으나 2016년에는 수해 지원 이외에는 지원하지 않다가 2017년 대북 영양 지원사업에 50만 달러를 지원했다. 또한 2010-2015년간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규모는 약 2천800만 달러로 동 기간중 러시아가 외국에 제공한 지원액의 10.3%(약 2억7천만 달러)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말 북한과 ‘수형자 이송 조약’ 체결을 지시했다. 수형자 이송 조약은 사법공조 조약의 하나로 한 국가에서 복역 중인 타국 수형자를 출신국으로 이송하기 위한 법적 문서다. 러시아가 자국내 불법 탈북난민에 대해 하시라도 북한 본국에 송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북러간 방산협력은 예의주시해야할 분야이다. 방산협력은 공식 교역량에 포함되지 않지만, 성격상 대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측이 러시아 군함의 나진항 입항권을 부여했다는 사실과 2014년 4월 27일 중국신화사가 위성 촬영한 북한 순천기지내 MIG-29, SU-25, MIG-21BS, MIG-19 등 러시아제 항공기 존재 등이 이를 반증한다.

넷째,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관련 국제 공조체제에 협력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6년 12월 30일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제재결의 2270호 이행을 위한 대통령령 729호에 서명했다. 30쪽 분량의 대통령령 729호는 핵과 미사일 개발이나 군 작전능력을 직접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과 기술, 장비의 이전과 판매 금지 등 세부 항목 및 개인화기 등 총기류 수출 금지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합의에 준하여 철저히 대북 제재를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와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러북 양국간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이후 러시아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순기능적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중국으로 하여금 대북 압력을 행사토록 공조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면 푸틴은 평소 ‘중국이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의 대북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으로 미러간 공조 가능성도 예상된다.

 

《러시아의 對남한 관계》

첫째, 러시아는 러․한 양자 및 남북한-러 3자경협 활성화에 진력한다.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 개발에 전략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지역의 인구가 지속 감소하고 있고 중국과의 접경 등 국가안보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러시아 정부는 2009년 12월에 ‘극동․자바이칼지역 사회·경제발전전략 2025’와 2010년에 ‘2050년 극동·태평양지역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2년 제3기 집권과 동시에 동방정책 발표 및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신동방정책 선언 등으로 기존의 유럽 중심에서 아시아쪽으로 좀더 과감하게 선회했다.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동방경제포럼을 정례화하며, 블라디보스톡 자유항법․선도개발구역 지정 및 토지 무상공여의 1헥타르법 등 투자환경을 대폭 개선했다.

이는 이 지역의 낙후된 인프라를 개발하고 소득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동북아 인근 국가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다. 푸틴 정부는 신동방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인프라 구축에도 관심을 경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TKR-TSR 연결 및 가스관 설치 등 남북한-러 3각 협력사업이다. 지정학적 여건상 북한의 동의 없이는 한발자국도 못나간다. 러시아는 주변 경쟁국으로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보다는 한국과의 경협을 절실히 원한다. 더욱이 한국과는 경제적으로 상호보완관계이다.

둘째, 러시아는 북핵문제와 함께 남한의 사드배치 문제에 대해 신경과민이다. 북핵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일관된 입장은 평화적 해결방안이다. 2003년 1월 10일 러시아가 제시한 일괄타결안(пакетная инициатив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한반도의 비핵화를 보장한다. 2) 북한의 정권안전을 보장한다. 3) 인도적․경제적 대북 지원 프로그램을 재개한다. 즉 북한의 완전한 핵개발 포기와 서방의 대북 안전보장․경제 지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측은 시일이 경과할 수록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후 15년이 지나면서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되고 지금은 장거리 발사체인 ICBM까지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국무부 부장관으로 유력한 트럼프의 외교책사 리처드 하스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북핵관련 4가지 선택을 제시했다. 1)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처럼 사실상 핵을 인정하는 방법인데 이는 핵의 비확산 체제를 어기고 타국가들의 연쇄 핵개발을 유발할 수 있다. 2) 제재를 병행하는 추가적인 외교적 노력이다. 이것은 오바마 체제의 국제사회 접근방식과 유사하며 아무런 진전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3)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다. 이것은 핵무기 사용․확산이 임박한 상태에서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 핵탄두 미사일을 미리 타격해 제거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4)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이다. 이것은 임박한 위협이 없더라도 핵시설 등을 사전에 제거 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 도달하는 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기술을 개발 중인 북한은 선제타격의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오바마의 협상방식(peace by engagement)과는 달리, 힘을 통한 해결(peace by strength)이 될 수 있다. 푸틴은 트럼프와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푸틴은 중국이 적지않는 대북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을 지적해 왔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對중국 압력에 트럼프와 공조체제를 구축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사드 배치가 본격화될 경우에 러시아는 레토릭 차원 이상의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사드가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의 일환이며 한국이 미국의 MD체계에 편입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극동지역에 새로운 타격부대를 배치하는 등 군사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북러관계의 밀착을 추동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아마도 북핵 및 사드배치 문제는 푸틴과 트럼프간 신뢰구축의 정도에 좌우될 것이다.

 

4. 결론

3일 뒤에는 트럼푸틴 시대가 개막된다. 미국․중국의 G-2가 아니라 트럼프․푸틴의 G-2 리더시대는 최대 7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 사적 친분을 중시하는 두 지도자를 주축으로 한반도는 중국 시진핑․일본 아베와 함께 소위 스트롱맨(Strong Man)으로 애워쌓이게 된다. 맨투맨 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親러反중의 입장을 노골화하고 있어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의 단일패권을 강도높게 비난해온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정부 출범에 앞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협력할 수 있다는 유화적 태도로 한발 물러섰다. 이에 화답하듯 트럼프도 최근 서방의 對러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해서 취임후 미․러관계 복원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서방의 제재로 경제적 곤궁에 처한 러시아에게는 고무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脫유럽화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신동방정책과 유라시아경제연합(EEU)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의 TSR-TKR 연결사업 등 남북한-러 3각 프로젝트 추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미․러간 이견이 어떻게 조율될지 주목된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면서 UN 안보리의 대북제제 결의에 동참하고 있지만 무력에 의한 북핵문제 해결에는 극력 반대하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은 남한내 사드배치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전에 대한 예방적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중․러를 겨냥한 MD설치의 전단계로 인식하고 있다. 미․러간 상이한 접근방법이 노정되는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을 압박한 북핵문제 해결을 시사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도 수차에 걸쳐 ‘중국이 북한에 적지않는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도 핵개발을 저지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질타한 바 있다. 따라서 트럼프와 푸틴이 북핵미사일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공조하면서도 대중 압력을 행사하는 양동작전을 전개할 개연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여하튼 트럼푸틴 G-2 슈퍼리더 등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요인 보다 기회 요인이 더 많은 新밀월시대를 구가할 가능성을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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